2021/2022 새벽기도회 16일차 “사람보다 하나님” 이재훈 목사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2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때는 위선자들처럼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 불며 떠들지 말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상을 이미 다 받았다.
3 너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래서 네 착한 행실을 아무도 모르게 하여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1~4, 우리말 성경)
네팔에서 주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져어머시 !
우리의 숙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주되신 주를 찬양하고… 이전보다 더 주님을 사랑합니다.
불행한 일, 원치않는 일이 벌어지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주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그것이 “져어머시”입니다.
어떠한 형편 속에서도 주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거울 앞에서 우리 겉모습을 돌아 봅니다. 그러나 영혼의 거울 앞에 서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더러운 것들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행실을 하면서도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선한 행실도 나쁜 동기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주님은 지적하십니다.
또한 나쁜 동기로 선한 행실을 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하여 선한 것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의 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육은 감각에 치우쳐 욕구가 이끄는데로 살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 때 분열된 우리 영혼이 하나가 됩니다.
선한 행실을 하면서도 우리가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십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하는 행동 속에서도 우리는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선한 영역의 일들인데 우리가 외식을 통해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는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사는 영혼은 사람으로부터 영광을 구하는 죄악을 범할 수 있습니다,
죄란 잘못된 행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죄인은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떨어져 있기에 영광에 대한 굶주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경쟁 사회를 이루고 사는 것은 영광에 대한 굶주림 때문입니다,
오직 인간만 영광에 대한 곪주림이 있으며, 그 굶주림을 만족 시키려고 피흘리며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통해 좌절을 느끼며, 좌절을 느끼는 것은 영광에 대한 굶주림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 어떤 것으로 그것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 영광의 굶주림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그분의 자녀가 되고, 그분의 일꾼으로 사용될 때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때도 나팔을 불어 사람들에게 알림으로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으려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온누리 교회가 사랑의 통로가 되어 사용 되는 것을 잘 압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은밀한 삶에 죄가 숨어 있다면 그 뿌리가 썩어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뿌리는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고 있는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런 삶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교회 안의 봉사와 헌신도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려고 할 때 위험한 독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봉사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하고,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속이 모르게 하라!
자신도 모르게 하라는 말을 어떻게 이룰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하는 일도 아무 일이 아닌 듯 잊어 버리며 섬기라는 것입니다.
어떤 선한 일을 할지라도 우리가 스스로 선한 행실이라는 의식을 하지 않고 감당하여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식하고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도 실패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 입니다.
성령을 속이고 자신을 과시했던 일입니다.
바나바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도 헌신하고자하는 그 마음 가운데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거짓을 드러내셨고 그들을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에 대한 경고를 주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여야 합니다. 자신도 의식하지 않는 헌신을 우리가 감당하여야 합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은 초대교회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만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으로 더욱 가까이 가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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