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받는 성령의 약속 (갈3:1~14) 말씀: 이재훈 목사님
▶바른 복음은 어떤 복음입니까?
바른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는 소식”을 말합니다.
바른 복음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죽음으로써,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연합된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 옛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이 모든 과정을 연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①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②하나님께서 우리의 옛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 넘겨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하며,
③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심을 믿음으로 주장하고 믿을 때, 그것이 사실로 체험되고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믿음 만으로 부족하고, 율법의 행위를 더하여야 한다.“는 거짓된 가르침은
참된 복음의 능력을 가로 막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으로만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을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해야, 무엇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 바울은 거짓된 믿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을 “8개의 질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질문의 핵심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제 와서 육체로 마치려고 합니까?”인데,
여기서 육체라는 단어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가르치는 명칭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기에 그 무엇인가를 더하려고 하는 것은 육체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 육체는 성령에 대적하고, 성령을 통하여 행하심을 방해하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후반에는 “이 육체가 어떻게 성령을 대적하는가?“를 설명합니다.
①첫째는 육체의 소욕이 죄를 범함으로써 성령을 대적하고,
②둘째는 육체가 스스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행하려 할 때, 성령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육체 스스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타락한 본성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의 의와 교만에 빠져서, 성령을 대적했던 사람들이 바리세인이었습니다.
사탄은 이를 잘 알고 있고, 육체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죄를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거짓으로 속이려고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육체가 성령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모습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때는 성령의 삶을 살았던 모습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육체를 따르는 삶“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령 충만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의 의를 주장하고,
종교적 행위를 더해가면서 율법적인 신앙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육체를 신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성령으로 시작했는데, 육체로 살게 되나요?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를 통해서 의롭게 됨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지나면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약속된 성령의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그분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도록 역사하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는 성령으로 섬길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와 능력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9절을 보면,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성령을 주시지 않았던 것은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요 07:39)
▶여기서 그때는 언제 입니까?
그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고,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을 주심을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2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①첫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십자가게 못 박힌 예수님을 뜻하고 있습니다.
②두 번째는 우리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소개를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지만, 높이 올리셔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기 위함 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부활을 통하여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우리에게 부어 주시기 위함 입니다 .
▶사도 바울은 3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으로만 되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더하는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복음의 훼손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되는데, 성령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육체를 다시 믿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음으로써,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연결되는 믿음으로 나가야 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그리스도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의 행위를 더하는 것은 그 믿음을 끊는 행위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되는 거듭남과,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의 세례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를 의지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 세례가 필요 없다.“는 것으로 여기게 함으로,
이것은 성령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예를 들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의 인생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입니다.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약속하시고, 별과 같이 많아지고 창대하게 되는 약속을 주시고,
약속을 믿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었습니다.
이것의 절정은 창세기 22장에 나온 사건입니다.
그것은 ”독자 이삭을 죽음에 넘기라.”는 말씀인데, 아브라함은 믿고, 순종했습니다.
이삭을 통해서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런 이삭을 죽음에 넘기라.”는 말씀은 다시 살리시는 길 밖에 없습니다. 즉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을 죽음으로 넘길 때,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역사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으로 임할 때, 나타는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통해서, 복음을 먼저 전하셨습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받게 될 복을 미리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케 된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함께 받는 복은 무엇입니까?
①첫째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며,
②둘째는 믿음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고,
우리도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함 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은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 율법의 행위 입니다.
이를 의지하는 것은 약속하신 성령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롭게 하셨는데,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그리스도이시고,
이를 믿는다면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를 중단한다면, 육체를 믿는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 육체 스스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고, 예배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그리스도임을 믿을 때,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 약속하신 성령의 임재 가운데, 그리스도와 연합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축복을 느끼며,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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