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갈1:1~12)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부터 갈라디아서 강해 말씀을 금년 말까지 전하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작은 로마서“라고 부를 정도로, 로마서와 내용이 비슷합니다.
이 서신은 ”십자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으며, 율법과 복음에 관해 일관성 있게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좋은 것이지만, ”율법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완전한 것 같지만, ”율법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법“이지만, ”율법을 완벽히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 앞에서 우리 인간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따라서 율법으로는 인간이 구원받을 수 없고,
값없이 그냥 베풀어 주는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교회를 공격할 때에, 언제나 양쪽에서 공격을 합니다.
①좌측에서는 핍박과 박해가 있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악에 사로잡힌 경우일수록 교회를 더욱 핍박합니다.
②또 한편, 우측에서는 ”복음을 변질 시키는 공격“을 합니다.
이것은 핍박보다도 복음을 변질시키는 공격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더 많이 행해지고 있는 방법입니다.
▶”복음을 공격하는 것“은 사도 시대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3가지 흐름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①그 첫 번째의 흐름은 율법주의라고 부르며,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많은 타 종교도 이것을 율법주의라고 하는데, 이것을 근거로 쓰여 진 책이 로마서입니다.
②두 번째의 흐름은 정 반대로 쓰여 진 것으로, 모든 것이 은혜이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든 상관이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 야고보서 입니다.
③세 번째의 흐름은 갈라디아 주의라고 부르는 것인데, 신 율법주의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라는 것으로는 조금 부족하고,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완성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흐름을 갈라디아 주의라고 부르는데, 갈라디아 교회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은 흑해 연안에서 지중해 지역으로, 지금의 터키지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공의회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방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짧은 서신이지만, 로마서와 함께, 교회 역사에 아주 큰 영향력을 끼쳤고,
16세기 교회의 상황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갈라디아서의 주제 중에서 5장 1절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은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5:1)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이 갈라디아를 떠난 이후에,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두 가지 태도로 대합니다.
(1) 첫째로,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에게 따라서 난 것”이 아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계시로 받은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내가 사도가 된 것도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나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그 내용보다도, “누가 말을 전했느냐?가 중요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에게서 직접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2) 둘째로, 바울은 복음 이외의 것을 전하는 것은 혼란스러우니까, ”매우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편지는 그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변질시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른 복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주장하는 복음 속에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복음 비슷한 말에 삐져 들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속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되,(=예수를 믿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하여, 사람들을 현혹하여,
거짓 선지자에게 쉽게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할례와 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보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옛날대로 유대교로 회귀시키려고 하니까, 결국은 “유대교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부추기니까,
문제가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6-9절을 읽으십시오.
”그리스도의 은혜로 여러분을 부르신 분을 여러분이 그렇게 쉽게 떠나, 다른 복음을 쫓는 것에 대해,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을 혼란에 빠뜨려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든, 하늘에서 온 천사든,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 이외의 것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우리가 전에도 말한 것처럼, 내가 지금 다시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여러분이 받은 복음 이외의 것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갈1:6~9)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믿음뿐 만이 아니라,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 교회(로마 카토릭)도 이런 갈라디아 주의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거기에 ”행위가 더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핵심은 “오직 믿음으로, 행위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로마 카토릭과 충돌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말씀으로”이지만,
로마 카토릭은 교황의 권위를 더하여, “행위를 더해야 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왜, 믿음만으로는 부족할까요?
실제로 의로움이 없는데, “의롭다고 여겨지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 의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기준을 바꾸어서”,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기준을 바꾸는 예를 하나 들어 보면, “동성애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동성애의 기준도 생물학적인 기준을 바꾸어서, 남자와 여자만 존재해야 하는데,
“또 하나의 다른 성이 있다.”고 주장하여, 그것은 “자신이 선택해서, 내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억지 주장을 합니다.
내 몸은 여성이지만, 내가 남자로 바꾸어서, 자기 스스로 “당당하게 너 자신을 표현하라.”고 주장을 하면서,
엄청 난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자신의 의로움을 추구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면, ”우리가 죄인 된 상태에서도 의롭게 된다.”는 것이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4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런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려고, 우리 죄를 대신해 자신의 몸을 내 주셨습니다.”(갈1:4)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복음을 상기 시켰습니다.
쉽게 다시 설명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런 악한 세상에서 구원하시려고,
우리 죄를 위해 자기를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자기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죄가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여, “그냥 없앨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죄는 어떤 것으로도 씻어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죄로부터 해방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 죄에서 해방하는 길은 “예수님이 죄 값을 대신 치름으로, 우리기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몸을 던지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셨고, 또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서,
악한 곳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땅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비전이라는 말도 “현재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말”이지만,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미래에서 현재를 바라 볼 수 있는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안에서 놀라운 자유를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에서, 자유하게 되었기에, ”땅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땅을 바라보는 영혼”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종교는 “무엇인가를 하라”고 하지만, = DO
기독교가 표방하는 것은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 DONE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강하게 책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바울의 그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갈라디아서 1장 6절을 함께 읽으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여러분을 부르신 분을 여러분이 그렇게 쉽게 떠나,
다른 복음을 쫓는 것에 대해,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을 그처럼 쉽게 저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르다니, 저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가 믿음으로 얻었다면,
”혹시 우리에게도 다른 복음을 쫓는 모습은 없었을까?”를 반성하면서, 주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참다운 자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자기 스스로 의로움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만입니다.
이런 자만을 스스로 내려놓고, 메마른 땅이 단비를 기다리듯이, ”값을 치루지 않고,
은혜로 주시는 “의로움을 덧입는 것“이 참다운 자유를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자만을 내려놓고, 믿음을 바로 세우고,
”값없이 주시는 의로움을 덧입혀서“ 복음 안에서 참다운 자유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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