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킹덤 파이오니어 (행11:19~26) (창립36주년 10.03)

다이나마이트2 2021. 10. 3. 12:39

킹덤 파이오니어 (행11:19~2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은 온누리교회 창립 36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교회의 위기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교회 스스로 만든 장벽 때문에, 위기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외부의 핍박은 오히려 교회를 더 튼튼하고,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협박을 했으니까,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핍박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강해졌고, 성령 충만하게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적도 더 강하게 나타났고,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생명력을 가로막는 것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부에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갖고 있는 “전통적인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말을 하면, 유대인의 중심적인 “율법적인 세계관“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런 환상을 받아드리기 어려웠고, 당시 지도자들도 복음이 확산되는 이방인 선교를 받아 드리지 않았고, 교회는 스스로의 장벽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장벽은 왜 생겼을까요?

그것은 ①역사가 오래 지속 되면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장벽이고,

②공동체의 크기가 자꾸 커지면서 생기는 장벽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이즈가 커지면서 발생하는 장벽은 해결할 수 있지만,

문제는 역사가 오래되면서 생기는 장벽은 고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비전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습관과 경험에 묶이다 보니,

마치 그것이 전통이 되어, 교회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가 그런 것입니다.

스테반 집사의 순교로 시작하여, 핍박으로 인하여 서로가 흩어지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주님이 주신 말씀과 같이, ”가서 복음을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떠나야“합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했다면, 자발적으로 흩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의 공동체를 떠나려고 하지 않았고,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킹덤 파이오니아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 사명을 잊어버리고, 자발적으로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핍박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로 자연히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치적으로는 핍박을 피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평양대 부흥회 이후에, 공산당의 출현으로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었어요.

 

그 때부터 전국으로 흩어져서, 자연스럽게 복음이 확산되는 계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얼마나 모이는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흩어지는가?”도 중요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미국에서 목회할 때, 하용조 목사님은 “얼마나 많은 성도가 앉아서 예배를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파송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온누리교회는 36년 동안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것은 킹덤 파이오니아의 비전을 이룬 결과입니다.

이런 정신이 다음 세대에도 이어나가야 합니다.

 

19절을 보면, ”그 무렵 스데반의 일로 인해, 핍박을 받아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페니키아와 키프로스

그리고 안디옥까지 건너가 유대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행 11:19)

 

거기에는 언어의 장벽도 있었겠지만, 그들의 ”습관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동족끼리만“ 예배를 드리는 모습에서도 나타납니다.

 

물론, 초기에는 그렇게 모이지만, 10년, 20년,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한인교회로 존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진정한 교회가 되려면, ”한인교회”라는 단어를 떼고,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 적인 모습“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타 민족에게도 문호를 열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이 말씀을 우리나라에 적용해 보면, 현재 250만 명의 이주민이 들어와 있는데,

10년이 지나면 아마도 400만 명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저 출산 국가이므로, 당연히 그들을 받아 드려야 나라가 유지되므로,

이제는 한국인만 모이면 안 됩니다.

 

온누리교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외국인 예배가 다양하게 드려지고 있습니다.

20절을 보면, ”그런데 그 가운데 키프러스와 구레네 출신인 몇 사람은 안디옥으로 들어가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행 19:20)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때, 소수의 성도들이 ”그리스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말씀으로, “사도행전적인 노력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시로 보면, 아주 파격적인 조치입니다.

그 당시에, 온누리교회가 M센터에 이주민 쎈터를 세울 때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처음 시작 할 때는 엄청난 결심이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들어 온 이주민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나?”를 그 당시에는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당시에 안디옥지역은 50만 명이 거주하는 국제도시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인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거기서 “헬라인(그리스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렇게 안디옥교회가 보여 준 모델이 우리 교회가 이룩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국제적인 다 민족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니, 우리도 시대적인 변화와 함께, 선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끼리 모여서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외국인 들을 함께 포용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2-24절을 보면,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전해지자, 그들은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도착해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온 마음을 다해,

주께 끝까지 충성하라고 그들 모두를 격려했습니다.“(행11:22-23)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바나바는 타 민족에 대한 이해가 많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크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부족함이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더 크게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나바는 더 나아가서 바울을 초청하여 함께 동역했습니다.

그로부터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시작된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동역하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그들이 안디옥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가르칠 때, 그들에게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현재의 모습을 보지 말고, 마지막 종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불이 타고 있지 않으면 불꽃이 아닌 것으로 보이듯이,

”교회가 선교하지 않으면, 교회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온누리교회는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는 하목사님의 비전에 따라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길이 “올바르고 제대로 걸어 왔다.“고 스스로 자부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은 예배와 선교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선교를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교회 내부의 필요를 충족하고, 남는 것으로 선교하는 것이 아니고,

예배와 선교적인 사명을 동시에 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온누리교회는 이미 선교적인 사명을 완수했고, 또한 계속해서 이루어 가면서,

”그리스도에 속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온누리교회가 창립 36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킹덤 파이오니아로써,

“선교적인 파이오니아”라고 평가받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