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인생의 짐을 지는 새로운 방식 (마11:28~30) 2021.08.29

다이나마이트2 2021. 8. 29. 17:49

인생의 짐을 지는 새로운 방식 (마11:28~3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 말씀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정보로 받아드리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은 은혜와 축복을 얻게 됩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인격이 나옵니다.

①하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격”이 나오고,

②또 다른 인격은 “그들을 초청하는 예수님”이 보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을 초청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이 능동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 자기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고,

그러다 보니까 때로는 죄 가운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 짐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고난의 짐이고, 죄의 굴레에서 인생의 짐에 눌려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탈출구를 찾고 있지만, 미로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을 예수님이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마 11:28)

 

여기서 예수님은 “네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중보자 되시는 분이니까, 중간에 어떤 중보자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중간에 어떤 사람도 개입시키지 말고, 바로 예수님에게 나가도 됩니다.

 

여기서 “다 네게로 오라.”는 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믿지 않는 분들 중에는 ”내가 이 상태로는 나갈 수 없으니, 좀 나아지고, 내가 성숙해 지면 나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의사를 언제 찾아 갑니까? 몸이 아플 때 찾아갑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라.“고 초청하십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마음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면,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기에, 자신이 결정하고, 움직인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인격적인 결단으로“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니면 어떤 느낌을 받고서,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때, 주시는 약속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 그대로 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안식가운데 들어가면,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만,

예수님께 올 때는 ”그 짐을 그대로 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나에게 오면, 쉼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로 풀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여행으로 고통을 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각을 떨어뜨릴 뿐, 그 고통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준다.”는 쉼은 무엇입니까?

(1) 첫째로, 그것은 “죄로 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인생의 짐이 억누르는 것은 죄로부터 나옵니다.

육체적인 무게 보다도 마음의 고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게로 와서, “십자가로 나가라.”고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려고 오신 분이니까, 옛 사람을 버리고, 예수와 함께 하면, 죄에서 자유를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항상 마음에 짐이 되었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마음에 쉼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예수님이 주신다.“는 쉼은 ”양심의 평화“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넣어 준 양심이 있기에“,

그 양심에 평화가 와야, 진짜로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양심이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에, ”그 양심에 평안이 와야, 우리가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왜곡된 양심이 마음에 있으면, 마음의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양심으로부터 “마음에 평화”를 얻게 되면, 그때서야 평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은 짐을 덜기 위해, 그 양심을 “덮어 버림으로” 잊으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 마음이 무거워지고,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양심을 묻어 버리는 평화는 오래가지도 않고, 쉼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얼른 죄에서 자유케 되어야 하고,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유를 찾아야” 합니다.

 

(3) 셋째로, 예수님이 주는 쉼은 “예수님의 임재”가 나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인생에서의 진짜 쉼은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여, ”내가 그분 안에 거해야”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내 안에 있어야”, 내가 편안해 집니다.

 

누군가에게 위로의 말을 전할 때, “그 사람의 인격이 나와 함께 해야” 위로가 됩니다.

각각 마음이 따로 있으면,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같은 마음이 되어야, “나의 무거운 짐이 나누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럴 때, 쉼을 주기 위해, 우리에게 주는 명령이 있습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11장 29-30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내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메기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11:29-30)

 

▶예수님이 약속한 쉼을 얻기 위해, 무엇을 알려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멍에라는 도구입니다.

 

멍에는 과거 농경시대에 “밭을 갈게 하는 도구”입니다.

멍에는 소의 어께에 얹어 놓는 도구인데, 힘이 없는 소와 큰 힘을 가진 두 마리의 소를 함께 묶어,

힘을 합치도록 만든 도구입니다.

 

경험이 많은 소가 경험이 없는 소를 이끌어서, 함께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짐을 분산하여, 다르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설명하는 이 방법은 문제 해결의 새로운 방법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은 예수님과의 동행을 설명하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정에 오면, 처음에는 환영을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속해서 같이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싫어한다.”고 비유로 말씀을 하십니다.

 

요즘 사람들은 예수님은 교회에서 가끔 만나면 되지, 함께 살기를 싫어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활이 노출되는 것이 불편하고, 거북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예수님이 나 만이 아는 공간(벽장)을 열려고 하면,

그럴 때는 “자꾸 이러시면, 우리가 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라고 깜짝 놀랍니다.

 

예수님을 그냥 거주자로 여길 뿐, 주관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참된 신앙인이라면,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살기 힘이 듭니까?

그것은 “믿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예수님을 주관자로 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십자가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대로 살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예수님을 배우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에 나오는 해답입니다.

 

▶무엇을 배우며,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배우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언제나 마음에 평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쉼을 주기 위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것은 겸손과 온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겸손이란, 자기를 낮추는 것이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 안에 거하는 것”이고, “그분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하나요?

그것은 그분이 [나의 주인]이 되기 때문에, “그분의 멍에를 내가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새로운 삶을 사는 방식”입니다.

 

그분과 동행하는 사람은 “자기의 개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새로운 삶을 사는 방식”이 되는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예수님과 동행하므로,

예수님과 함께 자유함을 얻고, 참다운 쉼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거부하는 사람은 참다운 쉼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과 함께 참다운 자유를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