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분열을 극복하는 신앙 (마22:34~4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의 삶이 불행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내면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분열되어 있어서, 우리의 의무를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고,
내면의 분열된 삶을 그대로 유지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중요한 원리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공식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한 법칙은 “사람들의 마음에 갈망을 채워 주어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와 사상들은 마음에 갈망을 채워 주기 위해 노력을 하고,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보게 하고, 자신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아닌 것은 탈레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에 문제가 되는 탈레반은 어떤 집단입니까?
원래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은 아주 순박한 사람들인데, 정규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이슬람 사원 안에서 율법주의로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우두머리가 하라”는 대로,
행동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슬람 원리주의를 따르고, 그것에 매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의 주장이 일방적이고, 편협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리가 있다.“고 주장을 하지만, 그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혹시 ”부분적으로 옳다“고 해도, 세계에서 인정받지를 못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복음의 진리 위에 기초한 것“이어야 사회가 평등해 지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어떤 공식을 바라지만, 이 세상의 많은 종교와 사상들은 그것을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의 요구도 그런 요구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6절의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선생님, 율법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생명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좋게 보면,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갈망”과 같지만, 사실은 예수님을 공격하려고 하는 악한 의도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이런 질문에 자기 스스로 “정답을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것이다“라고 말을 했다면, 그때부터 그것에 대한 공격을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랑을 강조하다가 [이웃]이라는 말이 빠졌다면, 그때부터 그것에 대해 공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질문에 넘어가지 않고, 예기치 않는 방법으로 대응하셨습니다.
그것은 한 가지 계명이 아니고, 모든 계명을 요약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38-40절의 말씀을 보면,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되는 계명이다. 그리고 둘째 계명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마 22-38-40)라고 대답하십니다.
그것은 어느 한 가지 계명이 아니고, 모든 계명을 요약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①첫째는, 신명기에 나오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말씀을 얘기했고,
②둘째로는, 이웃 사랑에 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가 될 때,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는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고, 분열을 시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분열시킵니다.
이것을 저는 오늘, “자기 내면의 분열이라“고 제목을 삼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말로는 ”이렇게 하겠다.“고 하지만, 행동이 쉽게 따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착한 생각을 했다“고 착한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행동은 좋은데, 마음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내면의 분열“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갖고 있는 ”마음의 분열“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성은 발달되어 있는데, EQ(감성)이 부족하여, 문제가 됩니다.
머리가 좋아 ”공부만 잘 한다“고 심성이 자라나지 않으니까, IQ와 EQ가 동시에 자라나야 합니다.
감정이 풍부한데, 실천하는 의지가 부족하면, ”마음의 분열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적인 영역에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정적인 영역에서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지정의에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지정의에 발란스를 유지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고,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너의 모든 것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고,
각각을 정확하게 구분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생명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고
분리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①먼저 마음이라는 단어는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②그 다음에 생명이라는 단어는 “육체와 구분되는 영혼”을 말합니다.
③그리고 뜻이라는 단어는 “지성과 이해력을 상상에 기초한 생각”을 말합니다.
▶이렇게 “마음과 생명과 뜻을 다하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해야,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이 분열되었기 때문에 온 것이니까,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서로 통합하고, 분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통합해 주는 것이 한마디로,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사랑만이, ”우리의 분열된 내면을 통합해 주는 열쇠라고 강조합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우리의 모든 인격을 통합시켜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면, 우리에게 기쁨이 오지만,
의무감으로 행동하면, 우리의 내면에서 분열이 오기 시작합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첫째 아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 왔을 때, 그의 형이 분열된 내면이 폭발하여, 동생을 시기합니다.
그의 형의 마음에는 사랑이 없고, 의무감만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형의 마음에는 감성이 메말랐기 때문에, 동생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이런 형의 ”내면의 분열을 통합하는 것“이 오직 사랑입니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해야만, ”우리의 존재 목적이 달성되고, 그때부터 행복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누리교회에 오면, 끊임없이 사랑을 강조해서,
우리가 만날 때마다 계속해서 ”서로 돕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나요?
그것은 그렇게 해야, “우리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분열된 내면을 통합하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에게 IQ (지성), EQ (감성)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SQ] 사회지수)까지 강조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이 분열되면, 서로 통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의 내면이 분열되면, 하나님의 사랑도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마음에 있는 자신을 넘어서고, 이웃을 향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 모든 민족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가운데 있으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케 하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먼저 십자가로 씻김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 될 때,
그때부터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만이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이것을 이룰 수는 없지만, 오직 예수를 믿고,
그렇게 연합된 삶을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바래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 그 때서야 공격적인 내 마음의 태도가 온유하게 되고,
마음과 영혼과 뜻이 조금이라도 사랑을 느끼고, 우리가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나의 분열되었던 마음이 서로 통합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서야 우리가 마음에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행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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