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고전1:18~25) 2021.08.22

다이나마이트2 2021. 8. 25. 09:59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고전1:18~25)    말씀: 이재훈 목사님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와 친숙해져 있지만,

그러나 우리들은 십자가의 원리와 십자가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원래 십자가는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요?

원래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매우 끔찍하고, 꺼리 끼는 것으로 생각하고, 싫어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에 일반적인 죄인에게는 사용하지 않고, 중한 범죄인이나 테러범을 사형시키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역겨워하고, 사람들이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1세기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대의 카타콤에서는 익투스라는 ”물고기 형상“을 사용했고,

2세기 이후에 이마에 십자가를 성호로 그리면서 부터,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것은 왜, 그랬을까요?

자신이 기독교 신앙인이라면, ”그 십자가를 자신이 체험하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삽자가의 역설이 나타납니다.

①첫째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연약하게 달리셨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나,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1:18)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가장 연약한 모습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까요?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메시아는 아주 능력이 출중한 멋진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불쌍한 모습으로 나타나니까, 그 당시에는 예수님을 멀리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너무나 지나쳐서, “미움으로 가득찬 사랑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것이다.”라는 신명기의 말씀처럼, 그들은 예수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②두 번째의 역설은 세상의 지혜로 볼 때, 그것은 분명히 어리석은 것인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 고린도전서 1장 22-24절의 말씀에 나옵니다.

”유대 사람들은 표적을 구하고, 그리스 사람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이것이 유대 사람에게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며,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이든, 그리스 사람이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1:22-24)

 

사람들이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세상의 지혜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한다.“는 말인데, 십자가의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고,

십자가는 어리석게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복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가장 적게 희생하고, 가장 많은 것을 찾는 것이 세상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이 타락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나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불쌍한 것인데, “인간은 그것이 지혜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지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희생을 도저히 하지 못하는 것이고, 십자가 못 박힌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일까요?

(1) 첫째로, 세상의 지혜로는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탄을 다 제거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 이 두 가지 모두를 다 만족해야 합니다.

세상의 ”죄를 덮어 준다.”고 한다면, 사랑은 만족이 되지만, 공의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공의와 사랑을 모두 만족시킨 결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진리를 덮는 것이 은혜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희생하므로, 이렇게 균형을 맞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 진리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2) 둘째로, 인간을 창조하신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제거 할 수 있지만, 사탄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사탄 함께 생활하면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라“고 로마서 6장 6-8절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해져서,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압니다. 이는 죽은 사람은 이미 죄에서 벗어 낫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 것을 믿습니다.“(롬6: 6-8)

 

다시 쉽게 설명을 드리면,

”우리의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에 매인 육체를 죽여서,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이미 죽은 사람은 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아날 것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옛 자아를 죽이고, 예수의 새 생명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이고,

십자가의 능력을 우리에게 체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복음의 진리를 확신하고, 다시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3) 셋째로, 우리가 [상의 지혜를 의지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고 살기 바랍니다.

 

세상의 지혜는 이생을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생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따라야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위대한 위인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모두가 살아있을 때의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살아있을 때에 짧은 33년의 시간보다도, 죽음 이후의 문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장 짧은 생을 살고, 가장 비참하게 죽은 예수가 ▶왜, 하나님의 지혜가 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영생으로 이끄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고전1:2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사람의 지혜보다 지혜롭고,

사람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연약함은 사람의 강한 것보다 강합니다.

 

세상의 지혜로 보면, 십자가가 무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 십자가를 보면, 그것은 능력의 십자가로 보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을 가진 사람이 십자가를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보여야 하고,

그러므로 우리들은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승리를 느끼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