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 (요4:19~24) 2021.08.15

다이나마이트2 2021. 8. 17. 21:17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 (요4:19~24)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에게 코로나 재난의 기간은 어떤 기간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흩어져 있을 때도

”우리는 삶 속에서 참된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요즈음에 생각해야 할 것은 ”나는 참된 예배자로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사야서에서 책망한대로, ”마당만 밟고 자나가지 않았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예배자입니까?

이런 참된 예배에 대한 교훈을 예수님이 요한복음 4장에서 ”우물가의 여인과의 대화“에서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 대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데, 여인은 예배에 대한 장소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아마도 우리 사마리아 조상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당신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 같은데,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모세오경만 받아드리고, 신명기 11장에서 그리심 산에서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데,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 21절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여인아, 나를 믿어라. 이제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올 것이다.”(요4:21)

 

예수님은 장소를 말하지 않고, 예배드리는 장소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마리아 인들은 구약의 계시를 물리적인 장소로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심 산을 집착하지만, 예수님은 어느 장소이기 보다도,

새로운 시대에는 ”예배에 대한 본질적인 변화“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에는 어느 장소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신이 아닙니다. 그 분은 진짜로 살아계신 분으로, 인간이 만든 신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슬람교에서는 하루에 5번에 걸쳐서 절을 하는데, 그들은 ”왜, 절을 하는지?를 모르고 절을 한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들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 내용이 요한복음 4장 23-24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이제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요4:23-24)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예배는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성경에서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구절이 3구절이 나오는데,

▶그 구절이 무엇일까요?

①첫째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 나야 한다.”는 것이고,

②둘째로, 십자가의 죽음에서, “인자가 못 박혀야 한다.”는 것이고,

③셋째로, 여기에 나오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참된 예배에 대해, 확실하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알고,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고, 역사를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집나간 아들을 받아드리고, 축복해 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대상이 그 하나님이고, 우리가 어려울 때는 우리를 위로하고, 만져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혹시 우리가 어렸을 때에 우리 안에 남아있는 잘못된 아버지의 모습을 내려놓고,

진짜 자기 아들까지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둘째로, 하나님이 [영]이심을 알고,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 분은 형체가 없으시기 때문에, “그리심 산이냐? 예루살렘이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방 종교의 특징은 그들이 믿는 신을 [아이콘]으로 만들어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아이콘이 헬라어로 “형상이라“는 뜻인데, 하나님을 형상화 시킬 수 없습니다.

 

예배당은 안주 단순하고, 씸플 해야 합니다.

중세 시대의 성당을 들어 가보면, 12사도를 비롯하여, 수많은 성인들의 동상을 만들어, 주변에 빼곡하게 배치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 이후의 교회는 아주 간결하고, 심플해 졌어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어떤 공간에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물리적인 죽음이 ”존재의 끝이 아니고, 그 이후의 세계가 계속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귀신도 있고, 악령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교회에서 방황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방에 누워 있었는데, 시커먼 귀신이 나의 발을 마구 때렸어요.

그래서 너무나 무서워서 예배의 자리로 나 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영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과학만능주의에 익숙하지만, 이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거기에 중심이 되는 영과 육의 세계가 있는데,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사람은 육이 중요하겠지만, 하나님의 세계는 “영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편 94편 9절을 읽어보면, “귀를 지으신 분이 듣지 못하겠느냐?

눈을 지으신 분이 보지를 못하겠느냐?”(시94:9)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영이지만, 들으시는 분이고, 보시는 분이고, 행동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분명히 말씀하시는 분이고, 느끼시는 분이니까,

하나님은 완전하신 지혜로 인격적으로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들은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그 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는 출장을 가시면 보지를 못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항상 우리와 같이 동행하면서 우리들을 지켜 주시는 온전한 분입니다.

 

(3)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앞에 나오는 영은 “성령님”이고,

뒤에 나오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 영혼만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육도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가 더욱 더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예배는 교회당 건물에 들어가는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가 여행을 가서, 거대한 이슬람 성전에 들어가 보면,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 예배의 감정이 아닙니다.

 

예배는 이런 겉모양의 경외감이 아니라,

“마음에서 느끼는 참된 예배”를 느껴야 합니다.

 

오직 우리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하고, 진리 안에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는 오직 하나님에게 집중하고, 영과 진리로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중세 교회는 예배의 형식만을 강조했고, 진정한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로 종교개혁이 그런 것들을 깨뜨리게 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물론, 우리의 사명인 [선교]도 중요하지만, [예배]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예배의 영성]을 잊어버리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드리고, 말씀을 배우는 것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해야 하기 때문이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항상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