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자 (창35:1~7) 말씀: 이재훈 목사님
때로는 우리가 서 있는 땅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말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머물지 말아야 할 땅에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에도 ”우리가 어떤 곳에 머물렀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렀던 장소는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말해 주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4개의 땅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무른 장소가 ①애굽, ②광야, ③가나안, ④바벨론입니다.
①먼저, 애굽은 ”우상숭배의 땅“입니다.
애굽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땅이고, 우상숭배의 땅입니다.
②광야는 어느 것도 없는 ”방황의 땅“입니다.
믿음이 없는 방황하는 ”백성들을 훈련시키는 장소“입니다.
③가나안은 ”순종과 축복의 땅“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축복을 주는 의미의 땅입니다.
④바벨론은 ”불순종과 징벌의 땅“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불순종 할 때, 추방 받아서 끌려가는 땅입니다.
이런 땅들을 바라볼 때, 지리적인 조건으로 보지를 말고, ”그 영혼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이나, 야곱의 생애와 연결시켜서 생각하셔야 합니다.
①먼저, 야곱이 브엘세바에 있을 때, 영적으로는 “야곱의 애굽”입니다.
그러니까 지리적인 위치는 브엘세바이지만, 영적인 의미에서는 “애굽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②그리고 벧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영혼의 출애굽이 이루어지고,
③바로 그곳이 영적으로는 가나안과 같은 땅이 되었습니다.
④그러나 야곱이 형의 위협으로 도피했던 하란은 바벨론과 같은 땅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세겜은 “광야와 같은 땅”입니다.
세겜은 머무르는 땅이 아니고, 타락하게 되는 땅입니다.
그러니까 세겜은 야곱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았지만,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기 이전에 살았던 땅입니다.
야곱은 그 곳에서 10여년을 살았는데,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에, 영적으로 위험한 삶을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이방 문화에 동화되어, 살았기 때문입니다.
형과 화해를 한 이후에, 세겜에서 평화롭게 살았지만, 그 가정에 큰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겜에서,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보복과 대 학살이 벌어집니다.
이 때, 야곱의 반응을 보면, 창세기 34장 30절에 자세히 나옵니다.
“너희가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구나.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들이
나를 사귈 수 없는 추한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나는 수도 얼마 되지 않는데,
만약 그들이 뭉쳐서 나를 공격하면, 나와 내 집이 망하게 될 것이다.”(창4:30)
여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나입니다. “내가 곤란해졌고, 내가 추해졌고,
내 집이 망할 것이다.“고 ”나 자신“만 강조합니다.
딸이 더럽힘을 당했는데도, 거기에 대한 슬픔이나, 애통은 말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도 자신을 챙기고, 자신의 이익에만 악착스러운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는데도, ▶왜, 이럴까요?
그것은 세겜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아니고, 야곱으로 그냥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사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야곱에게 왜, 이런 위기가 찾아왔을까요?
①첫째는, 야곱에게 ”있어야 할 곳“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②둘째는,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께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하겠다.“고 서원했는데,
야곱은 벧엘에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헤브론에 머물렀는데,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서, 그 중간지점인 벧엘을 자나 가야 하는데,
그곳을 회피하여 지나쳤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과의 약속을 지켰는데, 그런데 야곱은 자신의 서원을 지키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곳을 회피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신실하게 지켜지지만,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 게, 바로 야곱의 모습이고,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왜, 야곱의 서원이 중요합니까?
①첫째로, ”야곱이 서원한 것“은 하나님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야곱 스스로 서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고백한 것도 잊어버리는 무책임한 영혼입니다.
그것이 야곱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입니다.
②두 번째 이유는,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오면, 하나님께 약속을 하지만,
그 위기가 지나가면, 그냥 그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하나님”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과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 주는 구절을 소개합니다.
①첫째로, 신명기 23장 21절에, ”만약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약속한 것이 있으면, 갚기를 더디 하지 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네게 그것을 반드시 요구하실 것이니, 그러면 네가 죄지은 것이 될 것이다.“(신 23:21)
②둘째로, 전도서 5장 4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지키는데 미적거리지 마라.
그분은 어리석은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네가 서원한 것을 속히 이행하라.“(전5:4)
우리가 하나님에게 서원한 것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에게 ”그런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야곱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서원한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세겜에서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겜에서 위기를 당했고, 야곱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리적으로 세겜이고, 벧엘이 중요하지 않고,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야곱의 영적인 상태”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고난이나, “위기가 찾아온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온다.”는 싸인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창세기 35장 1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에 머물러라.
그리고 거기에서 네가 네 형 에서로 부터 도망칠 때, 네게 나타나셨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라.”(창35:1)
하나님은 30년 전에, 야곱이 서원한 것을 기억하고, 상기시켜 주십니다.
“네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에 머물고, 제단을 쌓아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야곱에게 “다시 순수한 믿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서원한 약속을 지키고, ”예배를 회복하라”라고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야곱은 순종하고, 따릅니다.
“왜, 하나님이 벧엘로 올라가라”라고 하셨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①결혼할 때, 들어왔던 이방 신들이 세겜에 오래 정착하면서 섬기던 우상들을 없애고,
②너희 자신을 정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야곱이 ”합당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영적인 경험을 했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우상들을 없애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인간이 만든 우상을 경배하면, 우상처럼 닮아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처럼 변화되어, 점점 성화되어 갑니다.
그래서 10절에서, 야곱은 다시 이스라엘이라 부르게 됩니다.
”네 이름은 야곱이었으나, 이제 더 이상 야곱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네 이름은 이스라엘이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라 불리게 됐습니다.”(창 5:10)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인생은 “그의 조상의 하나님을 흠모하고, 동일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위기와 고난이 찾아오면, “그것이 하나님의 초청이라”고 생각하고,
그 하나님의 싸인을 제대로 받아드리고, 그것을 잘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들을 생각하고, 다시 벧엘로 올라갈 때,
하나님은 우리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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