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 앞에 잠잠하라 (합2:5~20) 말씀: 이재훈 목사님
하박국서는 하박국이 질문하고,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 그 중에 하나는 하박국은 다른 예언자들처럼 일방적으로 응답을 받지 않고,
그가 받은 예언은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받은 것”입니다.
좋은 신앙은 “하나님에게 질문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요구가 아니고,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주장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이 없는 신앙“은 일방적인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질문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하박국 죄악과 불의, 그리고 탐욕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은 ”악독한 바벨론으로 하여금 세상을 맡기는데, 그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박국 2장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우리들의 불평도 “하나님이 모르는 것 같아서”, 의문을 가졌던 때가 많았습니다.
여기에서 바벨론을 저주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벨론이 ”얼마나 악한 민족인가?”를 자세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자세히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서, “아,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박국 선지자도 오해가 풀렸을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바벨론의 악행 중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결과에 의해서,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멸망하는 것은 “그 악행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멸망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뿌린 씨앗 속에 그 멸망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 얽메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나가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실을 간파하고 계시므로, “그 씨앗으로 자신이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피는 피를 부르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이 한 행동으로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을 보면,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갈6:7~8)
결국에, 바벨론의 악행에 저주와 심판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2장에서 “화 있을 것이다.”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히브리어의 “화 있을 것이다.”라는 말은 “장례식장에서 통곡하는 언어“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임할 심판“을 얘기하는 말입니다.
(1) 첫 번째 저주는 ”끝이 없는 탐욕에 대한 심판”입니다.
2장 5-6절에 나오는 말씀을 읽으십시오.
“포도주는 사람을 속인다. 거만한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목한다.
무덤처럼, 목구멍을 넓게 열고 있는 그는 마치 죽음과 같아서 결코 만족함을 모른다.
그는 모든 나라들을 자기에게로 모으고, 모든 백성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만, 이들 모두가 그를 속담거리로 삼고,
그에 대해 풍자와 비유를 말하지 않겠느냐? ‘화있을 지이다.
자기 소유가 아닌 것으로 부유하게 된 사람아, 이런 일이 얼마나 더 계속되겠는가?“(합2:5~6)
이 말씀은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빼앗는 탐욕을 심판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악랄한 고리대금업자와 같이, 바벨론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다른 나라의 재산을 마구 빼앗는 바벨론의 침략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끝없는 탐욕“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2) 두 번째 저주는 ”거짓된 안전에 대한 심판“입니다.
9-10절에, ”화 있을 것이다.
부당하게 취한 것으로 자기 집에 축재하는 사람아, 높은 곳에 자기 둥지를 틀어 재난으로부터 모면하려고 하는 구나.
네가 여러 나라들을 멸망시키려고 계획한 것이 네 집안에 수치를 불렀고, 네 영혼에 죄가 되었다.“(합2:9~10)
이런 ”불의와 폭력이 위험하다”는 것을 자신이 스스로 먼저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포악한 독재자들도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이 먼저, 그것으로 인해 죽게 됩니다.
이러한 보복이 두려워서 자신이 먼저 성을 쌓고, 독수리가 높은 곳에 둥지를 만들 듯이, 자신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높은 인공 산을 만들고, 거기에 인공 정원을 만들어 자기를 보호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죽게 됩니다.
(3) 세 번째 저주의 내용은 ”헛된 영광에 대한 심판“입니다.
12-14절에 나오듯이, ”화 있을 것이다. 피로 성을 짓고, 죄악으로 도시를 세우는 사람들아, 보아라.
수고한 것이 불에 타 버리고, 힘들게 한 일이 헛수고가 될 것인데,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 아니냐?
마치 물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가득 찰 것이다.“(합2:12~14)
강력한 힘으로 식민지를 정복하고, 포로를 잡아다가 피의 값으로 도시를 세웠는데, 이에 따른 심판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죽은 후 100년이 지난 다음에 바벨론을 방문하고, 그 규모에 놀랐다고 합니다.
성벽은 너무나 견고하고 단단하여, 그 성벽 위에서 마차가 달렸을 정도이니까,
”헛된 영광을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여 피를 흘리게 하였다.”는 탄식입니다.
하나님은 “이것들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세상의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덮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후회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불의한 권력을 탐하는 나라”는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4) 네 번째 저주의 내용은 “비열한 방황에 대한 심판“입니다.
15-17절을 보면,
”화 있을 것이다. 자기 이웃에게 술을 통째로 마시게 해, 술에 취해서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 보이도록 하는 사람아, 네가 영광대신에 수치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너 또한 마시고, 몸을 드러내어라.
여호와께서 오른 손에 들고 계신 잔을 네게 돌리실 것이며, 수치스러움이 네 영광을 가릴 것이다.
레바논에게 행한 폭력이 너를 압도하고, 동물들에 행한 폐해가 너를 공포에 떨게 할 것이다.
네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고, 땅과 도시와 그 안에 사는 모든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하기 때문이다.“(합2:15~17)
바벨론 사람들은 방탕한 사람들이지만,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수치스럽게 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술뿐만 아니라 권력을 탐하므로, 레바논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연을 파괴하고, 거대한 숲을 베어내서 황폐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숲에 있어야 하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까지 전염이 되어, 전염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바벨론도 바사제국으로 하여금, 멸망당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러한 나라들은 앞에서 언급한 4가지 내용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가 됩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으로, 거짓입니다.
결국에 [우상]은 사람이 만든 거짓을 스스로 자신이 인정하게 됩니다.
고귀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거짓에 속아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날, 이렇게 발전된 시대에도, 어떤 조각상을 만들어 놓고, 그런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 안에 바벨론이 남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나라는 이웃 나라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려고 합니다.
이런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통치 앞에, 무릎을 꿇고 예배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2장 20절에 나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거룩한 성전에 있다. 온 땅은 그분 앞에 잠잠하라.“(합2:20)
▶ ”참된 예배는 무엇입니까?
참된 예배는 내 안에 있는 우상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상을 마음에 품고,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상을 무너뜨리고, 그 분 앞에 잠잠히 나가는 것입니다.
거부는 침묵이 아닙니다.
우상을 거부하는 것은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데 따르고, 순종하며 나가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앞에 따르는 것은 털을 깎고 있는 양과 같이, 잠잠히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고 말씀하는 것은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불순종이 극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이 질문을 하고, 하나님이 대답하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 땅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해 지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악이 일시적으로 승리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공의로운 통치를 하시고, 세상을 공정하게 심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이 땅을 그렇게 만드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 참다운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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