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합1:1~1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부터 5주간 동안 하박국서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질문을 합니다.
하박국서는 질문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른 선지서는 백성들에게 교훈하며 책망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졌지만, 하박국서는 하나님에게 따져 묻는 형식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하박국서를 “구약의 소크라테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질문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린 자녀가 엄마에게 질문을 해야 하듯이, 아무 질문이 없을 때는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질문을 하든, 소중하게 생각을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바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무죄를 질문하지만, 하박국은 정반대로 악인이 세상에 존재하는데,
“왜, 그들을 징벌하지 않는지?”를 질문합니다.
욥의 질문은 개인적인 질문이지만, 하박국의 질문은 공동체적인 질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베일에 감추어진 인물입니다.
▶예언자 하박국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에는 선지자, 또는 예언자라는 말 이외는, 별로 소개되어 있지 않으나,
남 유다가 멸망당하기 직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기던 제사장이거나, 레위인으로 추정됩니다.
하박국이란 이름은 “포용하다, 품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박국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고, 그 시대와 공동체를 끌어안고, 기도한 사람입니다.
▶선지자와 제사장의 차이는 뭘까요?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고, 제사장은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하박국 선지자는 선지자이지만,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악을 모르는 백성들을 끌어안고 기도했으니까, 루터는 “하박국을 포용자”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대적인 상황은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략 우리가 짐작하는 것은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당한 것을 예견하였으니까, 짐작은 갑니다.
여기서 하박국 선지자는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1) 첫째는 “하나님이 왜, 악인을 내 버려두십니까?”라는 불평이 섞인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대답은 “악인을 바벨론으로 하여금, 제압할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대답에 하박국은 매우 당혹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심판은 받아드리지만, “그 도구가 바벨론이라“는 것은 받아드리기 어렵습니다.
악인은 나쁘지만, ”하나님이 더 악한 바벨론 사람“을 이용하니, 그것은 받아드리기 어렵습니다.
(2) 두 번째의 질문은 “바벨론으로 하여금, 왜, 어찌 이용하십니까?”라고 질문하니까,
하나님의 대답은 “바벨론도 동일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지만, “바벨론도 역시 무너진다.“고 미리 예언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대답 가운데, 아주 중요한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하박국 2장 4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보아라.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의롭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 것이다.“(합2:4)
이 말씀의 근거는 로마서 1장 17절에 나오는 말씀에 근거한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돼,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기록되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롬1:17)
성경의 중심에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악해도, ”의인은 무너지지 않고,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입니다.
이 하박국서의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또한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루터에게 까지 영향을 주어, 종교개혁으로 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 두 번째 질문과 대답으로 하박국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하박국 1장에서 “하나님에게 항의했던 질문”이, 차츰 변화로 나타납니다.
하박국 3장에서는 찬양으로 바뀌고, 믿음으로 변화되어, 마지막에는 경배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니까 ①처음에는 항의하다가 찬양으로 바뀌고, ②믿음으로 변화되어서 ③나중에는 경배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이 우리의 신앙에도 나타나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①하박국 1장은 “염려자”로 나가고, ②2장에서는 “관찰자“로 변화되어,
③3장에서는 ”예배자“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6월 한 달에, 5주간 동안에, 주일예배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하박국 1장에서 3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의 본문은 하박국 1장 2-4절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여기서 하박국 선지자는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1) 첫째는 “하나님이 왜, 악인을 내 버려두십니까?”라는 불평이 섞인 질문입니다.
2절-4절의 말씀을 보면, “오, 여호와여, 제가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합니까?
주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폭력입니다.‘라고 제가 주께 외쳐도 주께서는 구해주지 않으십니다.
”왜, 저로 하여금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왜, 죄악을 쳐다보게 하십니까? 파괴와 폭력이 제 앞에 있습니다.
갈등이 있고,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지켜지지 않고, 정의가 아주 실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 버려서 정의가 왜곡됩니다.“(합1:2~4)
하박국 선지자는 ”내가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합니까?“라고 하나님에게 호소합니다.
하박국의 실망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에서 나오는 실망이고, 민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나오는 실망입니다.
하나님에 속한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민족인데, 율법이 내 버려지는 모습에 안타까워 부르짖습니다.
하박국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악을 보고도,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니까, 놀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셨고, 그 침묵으로 인해, 우리에게 구원의 통로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거부하는 침묵“이 아니라, ”더 큰 일을 이루시는 침묵”입니다.
독일 퀼른의 지하 감옥에서 발견되는 낙서 중에서, “나는 태양이 있는 것을 느낀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지하 감옥에 태양이 비쳐주지 않아도, 태양은 있다.”는 말입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원하는 바와 정 반대로 나타납니다.
6- 8절의 하나님의 대답은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답을 하십니다.
말씀을 보면, “보아라. 이제 바벨론 사람들을 내가 일으킬 것이다. 그들은 사납고 과격한 사람들이다.
남의 생활터전을 빼앗으려고 온 땅을 돌아다닐 것이다. 그들은 두렵고 무서운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정의와 권위는 그들 마음대로다. 그들의 말들은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의 늑대보다 사납다.
그들의 기마병들은 무척이나 빨라서 멀리서부터 달려온다.
그들은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잡아채듯 빠르게 날아온다.”(합1:6~8)
악인은 나쁘지만, “하나님이 더 악한 바벨론 사람이라“고 하니, 그것은 받아드리기 어렵습니다.
바벨론은 ”선한 세력“이 아니고, ”더 악한 세력“이니, 하박국이 놀라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대답은 “악인을 바벨론으로 하여금, 제압할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심판은 받아드리지만, “그 도구가 바벨론이라“는 것은 받아드리기 어렵습니다.
바벨론 군대는 표범보다도 빠르고, 저녁에 날뛰는 늑대보다도 사납습니다.
독수리가 먹이를 가로채듯이, 잔인한 군대를 사용하시니, 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기대하는 것 보다, 더 반대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으로는 ”온 세상을 바라보는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1장 5절의 말씀과 같이, ”다른 나라를 보고, 잘 살펴보아라. 놀라고 질겁할 것이다.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내가 어떤 일을 행할 것인데, 네게 말해 주어도 너는 믿지 못할 것이다.“(합1:5)
하나님은 온 땅의 통치자이시니까, 강대국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왜, 바벨론에 의해서 그런 일을 벌리느냐?“라고 항의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겪고 있는 일들만 집착하지만, 하나님은 더 멀리, 더 넓게 바라보시고 일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 베들레헴으로 갔던 나오미와 룻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윗을 준비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스케일입니다.
악의 순간에도, 전체를 바라보고 일을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1장 11절에서
”그러나 자기 힘으로 신이라고 여기는 죄인들, 그들도 바람처럼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합1:11)
하박국은 “왜, 이러한 악한 무리들을 내 버려두십니까?”라고 원망하였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바람처럼, 사라지게 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백성들을 핍박하는 무리들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힘을 신처럼, 여기는 악인들은 “하나님이 심판 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미얀마 사태나 북한에서 일어나는 인권 유린도 어느 날 갑자기 반드시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힘을 신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의 미얀마와 북한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시대는 하박국 시대처럼 어렵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침묵을 바라보고 기다리면,
언제가 모든 악의 세력은 물러가고, 하나님이 대답하시는 믿음의 증거가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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