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힌 가정 (눅14:25~27)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예수님이 따르는 제자들에게 제자도의 삶을 가르치면서 설명을 할 때에, 오늘의 본문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내게 오면서, 자기 부모와 아내와 자식과 형제 혹은 자매와 자기 생명일지라도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눅14:26)
다시 말해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 14:27)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가족이라는 맥락으로 설명하면서, 아주 냉정하고 단호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만일에, 이 구절만 쏙 뽑아서 소개하면, ”예수님은 인륜을 거부하는 것“으로 악용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CS 루이스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사람은 이 구절을 읽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단들이 ”이 말씀을 외곡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정에 대해서도 서로 상충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산상수훈에서도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얘기했지만,
”가족이 서로 원수가 되는 일이 일어 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도 잘못 해석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단들이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 하려고, “가족 관계를 끊는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더 충격적인 말씀도 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고 있을 때, 어머님과 형제들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 때,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입니까?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은 어머니와 형제들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사실 이 본문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했을 때의 일이니까,
비록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기억하고,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에 대해 착한 분으로 생각을 하지만, 사실 예수님은 착한 분이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가정 중심적인 분“이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 말씀은 ”가정을 소홀히 하라”는 것이 아니고,
“가정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도리어 자연적인 가정에 “상처를 주고, 왜,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깨우치려고 하신 말씀이고,
우리 가정에 우선순위가 잘못되어 있어서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인생에서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한 가정이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므로 십자가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나 보다 사랑하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원문에는 “나보다 미워하면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미움처럼, 느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가족에 대한 미움의 의미가 아니고, ”상대적으로 미움처럼, 보일 정도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가족 때문에, 종종 고통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가정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은 “늘 안정적이고, 평안해야 한다.“는 꿈이 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기 보다도 예기치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어려움도 자주 생깁니다.
자녀는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고, 때로는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고, 또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족으로 절망하고,
실망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가족이 꿈이 되어야 하는데, 그 꿈이 절대화 하게 되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기도 받아야 할 사람은 나오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 계신 어머니들이 다 나왔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이들로 하여금, 분노가 쌓였다.“는 말입니다.
가정은 ”영적 전쟁의 싸움터“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처럼, 가정이 먼저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족을 미워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고,
가족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아픔을 겪어야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선조들 중에서,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반대했는데, 일본의 형사들이 그 어머님를 돌보고 싶은
마음을 이용해서, 석방조건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석방을 해 줍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그 내용을 알고도 있었지만, 집에 와서 그 내막을 아내에게 말했더니,
”여보, 감옥으로 돌아가세요“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남편이 미워서 ”감옥으로 가라”고 한 것이 아니고,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는 심정으로” 그렇게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주 목사님은 자진해서 감옥으로 들어갔으며, 그 후에 감옥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을 하면, 어머니의 효심도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했고,
아내의 말도 남편을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도록 했던 것입니다.
또 손양원 목사님의 아내도 그랬어요. 그 아내는 순천의 애향원을 지키면서 매일 기도하기를,
”우리 손양원 목사님의 신앙이 꺾이지 않도록“ 기도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아내들은 ”남편을 감옥에서 석방시켜 달라.“고 기도하는데,
그 아내는 ”남편의 신앙이 꺽이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보통의 아내들은 울고불고 했겠지만,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나오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를 했습니다.
“너는 고난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마귀가 너희 가운데 몇몇을 감옥에 집어넣을 텐데,
너희가 10일 동안 핍박을 받을 것이다. 너는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줄 것이다.”(계2:10)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가정은 “십자가에 못 박힌 가정“입니다.
그런 가정에 있는 아내의 ”영적인 기개“가 부럽습니다.
이렇게 두 가정의 축복된 기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기도“입니다.
이런 ”십자가에 못 박힌“ 믿음의 모습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힌 가정이 되려면,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가정의 아픔이 따라야 하고, 그렇게 고통도 겪어야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버지 파트리시우스는 알콜 중독자이고, 폭력자입니다.
그는 좋지 않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하나님은 암브로시우스라는 수사학자를 만나게 해서,
그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그의 고백록에는 “암브로시우스가 아버지와 같이 품어 주셨다.”고 혈통을 초월하여 고백을 했습니다.
가족 간에 겪는 아픔은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가정은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로 나가게 합니다.
육신의 가정에서 주는 아픔은 가정의 무너뜨리게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살아나는 가정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교회가 “가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혈연의 관계보다도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만난 성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십자가로 만난 성도이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은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에 나오는 “누구든지 내게 오면서, 자기 부모와 아내와 자식과 형제
혹은 자매와 자기 생명일지라도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눅 14:26)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기로 새로운 가정의 축복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친척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유일한 친적”은 성도입니다.
▶진정한 우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적으로 맺어진 우정”이고, “십자가로 맺어진 우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중심이 “십자가로 엮여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제가 “가정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러셀 무어의 “폭풍 속의 가정“이라는 책에서,
마지막 결론 부분을 인용하고,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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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복음이 아닙니다. 만일 가족이 삶의 궁극적인 원천이라면, 당신은 가족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고,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길 바랄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겪었던 역기능의 가정이나, 당신을 버린 배우자도,
머나먼 반항의 나라로 떠나버린 자녀가 당신의 삶을 망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삶은 우리를 자유케 하여 가족을 이상화 하지도 않고, 악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게 합니다.
십자가에서 짐이 축복인 것을 볼 때, 우리는 가족을 짐으로 여기거나, 싫어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가족이 우리의 모든 욕구와 갈망을 채워 주기를 바라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앞에 영광스럽고, 영원한 삶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가족은 당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당신을 이끌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워할 이유가 아닙니다.
당신의 앞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길은 하늘나라로 이어지는 갈입니다.
빛은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빛이 나며,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어떤 폭풍과 싸우고 있든 당신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 러쎌 무어 -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힌 가정”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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