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예수께서 누워계신 자리를 보라 (마28:1~10) 2021.04.03

다이나마이트2 2021. 4. 3. 22:55

예수께서 누워계신 자리를 보라 (마28:1~1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지난 90일 동안에 우리들의 잠자는 영혼을 깨워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90일의 기도를 처음 시작 할 때에는 부담도 되었으나, 완주하고 나니 무척 기쁩니다.

▶우리가 믿는 기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고, 그 말씀으로 성육신이 되셨고,

죽으신 이후에도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 안에 계시니, 그것이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남게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매우 기뻐하셨으며, 십자가의 죽음도 기쁨으로 감당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자원하며 기쁨으로 자신이 담당하셨고, 부활 주일인 오늘 우리에게도 그것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첫 번째 모습은 제자들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은 모습은 먼저 두려워했습니다.

 

만일에 복음서의 기록이 조작된 것이라면, 한 결 같이 두려워했을까요?

제자들은 처음부터 두려워했고,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각자 흩어졌고,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이 함께 걸었지만, “그들도 그가 예수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어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다시 사시는 것, “부활 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그때까지 역사상으로, 한 번도 없었으므로, 전혀 생각 치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부활은 지금까지의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부활을 이성으로 받아드릴 수 없었기“에, 놀라워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신앙에 감동이 없는 것은 ”이런 사실에 놀라지 않는 우리들의 무감각“ 때문입니다.

 

이런 무감각이 우리들의 신앙의 장애물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당혹스러움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길 바랍니다.

 

무덤에 도착한 제자들 중에서, 제일 먼저 부활을 확인한 사람은 여인들입니다.

인간의 지식은 그 시대의 세계관을 뛰어 넘지 못합니다.

 

그 당시에는 여인들의 인권이 없었던 시대이므로, 복음서에서 여인을 첫 번째 인물로 등장시킨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것이 진실이라는 증거”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 갔을 때, “무덤의 돌문이 열려 있었다.”는 것은 “무덤 안을 볼 수 있도록 열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천사가 문을 열어 두었기 때문에, 무덤 안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군병들이 무덤을 지켰을까요?

그 당시에는 시신을 “들에 버리는 관례”가 있었는데, 그것이 부활의 아이러니 중의 하나입니다.

 

유대지도자들이 빌라도에게 부탁하여 군병들을 세운 것은 “예수가 한 말에 대하여,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신을 그냥 내 버려두어도 되는데, “예수가 말한 것에, 한 가닥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군병들로 하여금 지키도록 지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근거하여,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 말대로 실행한 것이고,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와서,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당국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훔쳐 갔다.”고 소문을 냈으나, 그것은 근거가 부족한 애기입니다.

빈 무덤을 보고, 확실히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역사의 증거로 남게 되었습니다.

 

5~7절의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그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고 있는 것을 안다.

예수께서는 여기 계시지 않고, 말씀하신 대로 살아 나셨다. 여기 와서 예수께서 누워 계셨던 자리를 보라.

그리고 빨리 가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 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곳에서 너희가 예수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라.

자,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말이다.”(마28:5~7)

 

천사가 “예수가 누웠던 자리를 보라.”고 말을 합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무덤은 슬픈 장소입니다. 무덤  앞에서는 조용해져야 합니다.

묘지는 경건한 장소이고, 슬픔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워 있던 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은 그가 시체로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분명히 그가 말한 대로 부활하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빈 무덤”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찾아 갔던 여인들이 놀랐던 것입니다.

▶왜, 여인들이 놀랐던 상황은 무엇 때문입니까?

(1) 첫째로, 예수님의 몸이 그곳에 없었으니, 부활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시신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데, “부활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부활이 있으니까, ”혹시나 영원한 생명인 부활의 몸으로 변한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한 생명이니까, 그 몸이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기쁨을 느꼈던 것입니다.

 

(2) 여인들이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그 말씀대로 이루어 졌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8장 6절 말씀에,

”예수께서는 여기 계시지 않고, 말씀하신 대로 살아 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 와서, 예수께서 누워 계셨던 자리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천사가 부활 사건에 개입한 것입니다.

천사가 돌을 굴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이 여인들에게 최초로 보여 줍니다.

"와서 보라, 그가 누우셨던 자리에 그가 살아 나셔서, 없지 않느냐?" 라고 알려 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무덤에서 나와 갈릴리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유교의 공자님은 ”내가 살아있을 때도 알지 못했는데,

어찌 죽음 이후를 알 수 있겠는냐?“라고 정직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니까, 영원한 처소도 준비가 되신 것입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니까, 역사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를 걱정해야 하지만, 그 분은 그러한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이기적이고, 죄악으로 달려가지만,

그러나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한 생명은 소중하니까, 한 생명이라도 구원해야 합니다.

 

(3) 여인들이 놀란 것은 ”바로 가서, 증인이 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무덤을 찾았을 때는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돌아갈 때는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여인들처럼, 부활의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이 여인들은 ”무덤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모르는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지만,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의 소식을 들은 사람은 두려움에 쌓이고, 그들은 당황했습니다.
예수를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은 어찌된 영문을 몰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건“은 그들에게 충격과 두려운 사건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는 이 사건이 "큰 기쁨"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두려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지만, 예수님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은 두려움과 흥분이 없이 그냥 교회에 다닙니다.

어제도 오늘도 교회에서 찬송 부르고, 설교 듣고, 그냥 돌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본 사람은 다릅니다.

그들은 찬송을 부를 때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는 생명이 살아있는 것을 느끼고,

가사 속에 담겨진 뜻을 하나하나 새기며 부릅니다.

 

설교 말씀을 듣는 것도 ”그냥 설교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배 보는 즐거움에 젖어,

말씀의 한마디에 “골수를 쪼개고, 마음 깊이 생명의 말씀으로 각인되어“ 받아들이게 됩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부활의 첫 반응은 “두려움과 떨림”이었지만, 부활의 결론은 "빨리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하여 이곳에 왔지만, 그러나 이제는 ”구원을 전하기 위하여 떠나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COME(오라)" 하셨지만, 은혜의 체험한 사람은 "GO(가라)”고 하십니다.

"와서 배우시고, 배웠으면 이제는 떠나십시오.“

 

그리고 어느 곳이든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나님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