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생명의 소리 (잠24:11~12) 2021.03.30

다이나마이트2 2021. 3. 30. 22:11

생명의 소리 (잠24:11~12)     말씀: 김현철 목사님(프로라이트 고문)

 

이른 새벽에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생명의 소리를 들려주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더 친해지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죄를 지음으로, 자꾸 하나님과 멀어 진느 것을 느낍니다.

 

성경에 간음한 여인이 나옵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여인에게 돌을 던지지만, 요한복음 8장 10-11절이 정점입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너를 정죄한 그들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니까,

여인은 ’선생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요8:10~11)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인간은 ”살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은 ”모든 인간은 나도 내 생명이 소중하지만, 남의 생명도 중요합니다.“

 

▶그럼, 나는 언제부터 생명이 시작되었을까요?

제가 산부인과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은 임신한 후에 12주까지는 세포 조각이지만,

”13주 부터는 인간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13주부터는 태아가 살아있는 인간이니, “3달 이후”부터는 낙태는 살인행위가 됩니다.

낙태는 “종교계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종교계라고 “윤리가 높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윤리는 다 똑같은데, ”그 윤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거리에 나가면, 신호등이 있습니다. 누구나 빨간불에는 건너지 못하지만,

그러나 교통경찰관이 거기에 서 있으면, 아무도 건너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수정된 순간에 생명체로 변하니까, 여기서부터 생명의 소중함을 느껴야 합니다.

 

임신 5주 차가 되면, 태아의 심장소리가 들립니다.

수정 후 9주 차가 되면, 손가락 발가락이 보이고, 12주가 되면 사람의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39편 13-14절 말씀에,

”주께서 내 장기를 지으셨고, 내 어머니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습니다. 내가 주를 찬양합니다.

주께서 나를 경이롭게 멋지게 지으셨습니다. 주의 작품은 정말 놀랍습니다.

내 영혼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시139:13~14)라고 고백합니다.

 

▶인간 생명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수정이 되면, 새로운 인간의 존재가 시작됩니다.

그런 사실을 받아드리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입니다.

이 사실은 임상적 증거로 확인된 것입니다.“라고 현대 ”유전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롬 르즈노 박사의 얘기입니다.

 

우리는 진리와 견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임신은 남자와 여자가 자신들의 결정으로 아기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책임지지 않는 풍조가 만연하여, 낙태가 문제가 됩니다.

▶이런 환경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들었습니다.

 

이 질문의 본질은 ”우리들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그것에 대답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에 가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는 가치관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세상을 바꾸려면, 총과 칼로 혁명적인 조치로 바꿀 수는 있지만, 교회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질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성육신()의 개념은 신과 피조물을 동일시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언제부터 인간이 되었을까요?

그것을 ”엄밀히 말한다.‘면, 예수님은 마리아의 자궁 속에서 266일을 살았어요.

 

배아가 태아가 되고, 태아에서 유아가 되고, 성인으로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태아부터 인간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일이라고 하면, 출생일을 말합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예수님의 탄생일이라”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찬송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그로부터 9달 전에 이미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인천 공항에 이미 도착했는데, 뒤 늦게 마중 나온 기분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교회에 제안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출생일을

①[탄생일]로 할 것이냐? ②아니면, 잉태일로 정할 것이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성육신()의 기념일을 생각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십자가의 처형으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마리아의 자궁에서부터 고난이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의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찬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추모비에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낙태로 희생된 무고한 태아들을 사랑하고, 기억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위해, 이 추모비를 세웁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리고 예수님의 손 안에 아주 작은 태아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작품도 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곳에 사용하라.“고 주신 뇌를 ”이제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지킬 수 없는 의료 환경이 되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늘의 말씀인 잠언 24장 11~12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억울하게 죽음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구하고, 죽임 당하게 된 사람들을 구해야 합니다.

만약에 네가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네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라. 네 마음을 살피시며,

너를 지켜보시는 분이 어찌 그것을 모르겠느냐? 그분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잠24:11~12)

 

우리는 오늘, 쿵쿵 뛰는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었으니까, 핑개도 대지 못합니다.

오늘 여기에 계신 분들의 “절반 이상”이 낙태의 생존자입니다.

 

우리들의 절반은 낙태의 생존자들이니까, 여기에 해당합니다.

마리아도 그 당시에 고민했을 것이지만, 생각이 있으시는 하나님은 그것을 이미 알고,

2,000년 전에 오셨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자신이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를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과거에는 우리 어머니들은 “너무나 어려워서 낙태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정도 너무나 가난했지만, 나의 어머님은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 저의 가정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저는 감당 할 수 없으니, 제가 어쩔 수 없이 지우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네가 못 키우면, 내가 키울 께”라는 말씀의 응답이 있어서,

화들짝 놀라서, 집에 와서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그러면 낳으라.”해서 “저를 낳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저의 실제 이야기이고, 이 자리에 설 때까지 67년 전이 이야기입니다.

그런 제가 이제는 목사가 되어, 이렇게 기도합니다.

 

①우리가 예수님을 대면하고, 엎드려 우리의 죄를 자백합니다.

②둘째로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만, 그 어떤 사정이 있으신 여성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③셋째로 오늘 날이 밝아 오면, 오늘도 산부인과에 200명의 아이가 낙태를 예약하고 있습니다.

그 영혼들을 위해,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