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부활 소망으로 섬길 산 사람의 하나님 (마22:23~33) 2021.03.12

다이나마이트2 2021. 3. 12. 13:16

 

부활 소망으로 섬길 산 사람의 하나님 (마22:23~33)    말씀: 박태영 목사님

 

90일의 기적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 기간 동안에 내가 변하고, 우리의 가정이 변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은 “부활 소망으로 섬기는 산 사람의 하나님”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3번이나 논쟁으로 시험과 도전을 받습니다.

 

① 첫 번째는 대제사장들로부터 "권세의 문제"로 "종교적인 본질에" 대한 질문이고,

② 두 번째는 바리새파 사람들로부터 "세금의 문제"로 도전을 받았는데 "정치 사회적인 문제"로 질문 받고,

③ 세 번째로 오늘은 사두개파 사람들로부터 "부활의 문제"로 "교리의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받습니다.

 

오늘의 질문은 부활의 문제로, ”교리에 관한 질문“인데, 그것은 신앙의 근본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늘 이런 질문을 받는데, 그것은 “진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도전받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회개하기 보다는 더 완악해 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된 진리를 설명해 주고, 보여 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세상이 진리를 발견하는 방식은 첫째 사랑과 화해입니다. 두번째는 거룩과 순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①먼저 사람들을 사랑하고 “화해하려고” 노력을 했으며,

②거룩과 순결로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두개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심문을 받을 때에도 침묵하고, 거룩한 사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가끔,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가 진짜인지?“를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흔들지만,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생명의 소리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우리는 인격적인 예수님의 사랑을 떠 올리며,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을 실천한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한 것들을 믿으면,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24-28절을 함께 읽으십시오.

”선생님, 모세는 남자가 자식이 없이 죽게 되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형을 위해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결혼해 살다가 죽었는데, 자식이 없었기에 때문에, 그 동생이 형수를 맡게 됐습니다.

그런데 둘째에게도 셋째에게도 계속해서 일곱째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일곱 사람 모두 그 여자와 결혼했으니,

그렇다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일곱 형제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마22:24~28)

 

이런 질문을 하는 사두개인들은 누구 입니까?  ”종교적으로는 부활을 부정하고,

모세오경만 붙들고 사는 보수주의자들“이고, 사회적으로 그들은 로마에 충성하고, 기회주의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만을 고집하고, 예수님을 공격하는 무리입니다.

성전을 정화하려는 예수님에 대해 항거하면서 ”3일 만에 성전을 세우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저항하는 무리이고,

그들은 교리적으로 공격하면서, 예수님의 인기와 초점을 흐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까 읽은 말씀은 특이한 결혼제도(Levirate)인데, 재혼상대자로 죽은 남편의 형제를 택하는 관습으로,

매우 특별한 경우에 “이렇게 하라.”는 것이지, ”꼭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제도는 그 당시에 사회적인 풍습으로, 남편이 죽을 경우에 그 아내는 노에로 끌려가거나,

아니면 버려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반 인권적인 일들을 막기 위해, ”그렇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결혼제도(Levirate)를 빙자하여,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에게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일곱 형제들 중에서 자녀 없이 형수만 남기고 죽었는데, 똑같이 형제가 모두 죽었습니다.

 

이런 질문은 예수님을 공격에 빠뜨리려고 한 말인데, ”예수님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들은 마치 자기들이 박애주의자인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율법을 잘못 적용했고, 비이성적이고, 반윤리적인 질문입니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려면, ①일곱 명이 모두 임신을 못하는 불임병에 걸려야 하고,

②순차적으로 “모두 죽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없는 경우인데, 그런 예를 만들어서 예수님에게 난처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는 주목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흔들려는 의도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교만입니다.

이들은 엘리트 계층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예수님과 비교하려고 합니다.

 

사두개인들은 목숨을 걸고 나가는 예수님이 두려우니까, 시비를 걸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 내 안에 양심을 회복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되기를 바랍니다.

29-30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성경이나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잘 못 생각하고 있구나.

부활 때는 사람들이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될 것이다. “(마22:29~30)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1) 첫 번째 대답은 예수님은 ”성경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성경을 오해하고 있으니까,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으면서, 그들은 의도적으로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성경을 많이 읽지만, 그 성경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읽어야 합니다.

 

나 중심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정확하게 해석된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성경을 ”은혜와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드리니까, 다행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매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성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참 믿음이 나의 흔적으로 나타나야 하고,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2) 두 번째의 대답은 “결혼하지 않은 천사들처럼,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부활은 세상의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와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5-44절의 말씀을 요약하면, 부활의 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이 됩니까?

이런 어리석은 질문에, 예수님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뿌리는 씨앗이 죽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육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육체가 다르고, 짐승의 육체가 다릅니다.

또 하늘에 속한 몸(육체)이 있고, 땅에 속한 몸이 있듯이, 하늘에 속한 영광이 다르고, 땅에 속한 영광이 다릅니다.

해와 달의 영광이 다르듯이, 죽은 사람의 부활도 이와 같이 다릅니다.

 

몸(육체)은 땅에 묻하면 썩지만,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는 죽어서 비천한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영광스런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몸(육체)는 자연의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몸(육체)의 자연의 몸이 있다면, 영적인 몸도 있는 것입니다.“(고전15:35~4)

 

이렇게 사도 바울은 지금의 모습으로 ”부활의 상태를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부활은 우리가 그 이후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육체의 몸에서 벗어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은 알지만, “내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지금은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 모습을 이해하는 것은 베드로의 장모가 고생하다가 살아났을 때,

예수님의 기도로 살아났으므로, 그는 열심히 변화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원래, 부활이라는 단어는 ”섬기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살아서 부활하는 사람은 ”섬김의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런 사람은 하늘의 기준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수님의 기준은 ”죄에 대하여 죽고, 의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을 영광스런 모습으로 바꿔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하여, 날마다 우리가 기억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31-33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너희는 죽은 사람의 부활에 대하여 하나님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했느냐?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무리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마22:31~33)

 

이 말씀은 이 땅에서는 죽었지만, “하늘에서는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현재 진행형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산자처럼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출애굽기 3장 16절에 나오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에서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내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지켜보고 있었고, 이집트에서 너희가 당한 일을 보았다.”(출3:16)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못 자국이 난 손바닥을 생각하면서 고난의 흔적이 부활의 흔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나타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