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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자들을 향한 주님의 준엄한 경고 (마23:13~24) 2021.03.15

다이나마이트2 2021. 3. 15. 15:43

위선자들을 향한 주님의 준엄한 경고 (마23:13~24)       말씀: 스티브차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 대한 어린이 동화]를 아십니까?

4명의 어린이가 탐험하는 얘기인데, 여기에 예수님을 상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중에 “아슬란이 사람이 아니라, 사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안전한 사자가 아니고, “그분은 선한 분”이고, “그 나라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야기에서 그는 안전한 분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는 선하신 분“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의 준엄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오셨지만, ”사자와 같은 분“입니다.

 

마지막 구절에 ”암탉이 어린 병아리를 모은다.”는 구절과 같이,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마태복음 23장은 외식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런 종교지도자들이 되지 말고, 그런 사람들을 “따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들의 리더십은 ”겉으로 하는 말과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은 제대로 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가르침을 주니까,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볼 때는 제대로 행동하지만,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는 연기를 합니다.

 

이런 모습이 그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에게 만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닮지 않는 모습에 당황하여,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십니까?

이 말씀이 정작 유대인들의 종교지도자들 같지만, 혹시 우리에게도 해당하지 않으십니까?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4가지 화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나오는 화는 장례식에서 “아이고”라고 안타까워서 외치는 표현이지만,

구약에서 말하는 화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자세히 보면, 죽은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경고입니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진실성이 없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1) 첫 번째 경고는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 문을 닫아 버렸다. 너희 자신만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들어가려는 사람들 마저도 막고 있다.”(마23:13)고 지적합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천국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지도자들이 천국의 문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문을 막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지도자인 내가 그것을 모르고 있으니까 안타까워 하시는 말씀입니다.

 

(2) 두 번째로 15절 말씀에 기록된,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육지와 바다를 두루다니다가 정작 누군가 개종자가 되면,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든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양육하는 것 같지만, 당신이 가르치는 프레임 때문에,

”당신 보다 더 지옥의 자녀로 만들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우리도 주위에서 양육을 하지만, 내가 주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좋은 예수님을 섬기지 못할 때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양육 받는 사람이 나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혹시 내가 교회에서는 거룩하게 행동하지만 집에서 그렇지 않을 때,

”내 자녀가 어떻게 보는 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시카고에 살았을 때,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분들이 어린아이를 같이 데리고 와서 저희들에게 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만, 그들이 집에 가서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는 경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을 온전히 제대로 섬겨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3) 셋째로, 16절의 말씀같이, ”너희는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한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라고 말한다.“(마23:16)

 

여기에는 맹세라는 말이 나오는데,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내가 한 말에, 더 권위를 더 하려고 맹세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전을 두고 맹세하지만, 그것은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말씀은 종교지도자로써 ”예수님을 모르고 있다.”는 강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4) 네 번째로,  23절 말씀에 나오는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바치는 율법가운데,

더 중요한 정의와 자비와 신의(믿음)는 무시해 버렸다.

그러나 십일조도 바치고,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마 23:23)

 

이 말씀은 십일조에 대한 경고입니다.

십일조는 농경 사회에서 농사지은 곡물의 1/10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모든 소득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으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곡물뿐이 아니라, 부엌에서 나오는 “허브까지도 1/10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요?

그들은 이것을 가지고,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좋은데, ”그 가운데서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것이 “정의와 자비와 신의(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일조도 물론 중요하지만, 절기에서 또 다른 것을 감사하려고 사용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로 말하는 십일조”입니다.

이런 것들은 단기 선교를 갈 때, 자녀를 데리고 같이 가는 것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구제하는 십일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이런 것 까지 모두 드린다.“고 자기 의를 드러내고 있지만,

”정작 왜, 십일조를 드리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들은 주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구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고,

예수님의 경고입니다.

 

예수님은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리 주변에 정작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한 강한 경고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헌금을 드려야 하고,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것을 ”낙타는 집어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 낸다.”고 질책하십니다.

캔달목사님이 지은신 “당신은 바리새인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요즘 교회에도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서,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순장이 됩니까?“라고 질책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식사하면서 와인 한잔은 어떠냐?”고 말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도 너무나 쉽게 ”바리새인이 되어 가고 있지는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나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들의 잘못을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23장의 마지막 부분에, “암탉이 병아리를 날게 아래 품듯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고 한 적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않았다.”고 마르다에게 꾸짖으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스티브야, 스티브야,”허고 안타깝게 부르시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 ◯◯아,” 안타깝게 자기 이름을 부르시는 음성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나를 통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