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 (마22:15~22) 2021.03.11

다이나마이트2 2021. 3. 11. 13:34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 (마22:15~22)    말씀: 노희태 목사님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고 사십니까? 저에게는 아들이 3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집에 가면 난리 법석이고, 모든 생활에는 규칙이 정해져 있습니다.

 

선물은 일 년에 딱 두 번이고, 어린이날에는 책으로 선물을 줍니다.

그것은 어린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사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저렴하게 사는 방법은 ”해외에서 직구로 사는 것인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아이는 “선물이 언제 오느냐?”고 매일 물으며,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제, 제가 처음으로 드렸던 질문으로 돌아가서,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17절 말씀에서,

“헤롯 당원들은 예수께 질문을 했습니다. 저희가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21절에서 “그러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요?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4번의 유월절을 맞이하는데,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헤롯이 지은 성전을 방문합니다.

 

그 성전의 서쪽에 장사하는 시장이 있었는데, 자기 집에서 제물로 사용할 비둘기를 가져오면,

불합격이 되어 시장에 가서 다시 사와야 합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인증 마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쪽에 있어야 할 시장이 어느 사이에 성당 옆에 있는 이방인의 뜰로 올라와서, 장사를 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장사하는 무리들에게, 강도라고 부르며, 크게 진노하며 내 쫒으셨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이득을 남기려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성전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15절 말씀과 같이 질문을 합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이에 바리새파 사람들이 나가, 어떻게 하면 예수의 말에 트집을 잡아 함정에 빠뜨릴까 궁리했습니다.”(마22:15)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전문가인데, 형식적으로 만 율법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흔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들과 같이 온 사람들이 헤롯 당원인데, 바리새인들과 같이, 예수님을 헤치려고 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로 인해 반란이 벌어지면,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유대인으로,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고, 헤롯 당원은 ”로마인의 권한“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전략적인 동맹으로 예수님을 음해하려고 합니다.

17절 말씀에서 ”그러니 말씀해 주십시오. 선생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저희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마22:17)라고 질문을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들이 로마에게 ”세금을 바치는 일이 옳으냐?”는 질문입니다.

그 배경에는 “세금을 바치지 않으려는 속셈”이 깔려 있습니다.

 

그들이 세금을 내는 것은 “로마 황제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황제는 신이고, 동전에 ”황제의 얼굴“이 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헤롯 당원들은 로마인으로 ”당연히 세금을 내야, 나라가 운영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연합하여, 자기들의 속셈을 숨기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금을 내라“고 하면, 예수님을 친 로마주의자로 몰아가고,

반대로,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반 로마주의자로 몰아가려는 의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속셈을 알아 차리고, “악하다”고 하면서, “위선자들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나라를 위하려는 척“ 하면서, 율법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유튜브를 사용하신다면, “내가 자주 보는 영상이 무엇인지?”를 보면, 그 사람의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20-21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동전에 있는 얼굴과 새겨진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그들은 ’가이사의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22:20~21)

 

예수님은 동전에 있는 로마황제의 얼굴을 가리키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면서 국가 공동체에게 바치는 것은 당연하고, 또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에게 드리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것은 무엇입니까?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니, “나 스스로 그것을 알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니까, 나를 주관하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입니다.

 

신명기 6장 5절 말씀에도, ”너는 네 온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라.“(신6;5)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합쳐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저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제 얘기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며, 고민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제가 첫 걸음을 띨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왼발부터 걷기로 작정하고, 예수님을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불편한 습관을 만들어서 라도 “예수님을 생각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평생의 습관이 그렇지 않으니까, 아주 불편했습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하게 되지만, 새로운 습관이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운전석에서 왼쪽 발부터 내려와야 하는데, 서빙고에 강한 바람으로 차의 문이 갑자기 빠르게 열려서, 옆의 차에 부딪쳤습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문콕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가 아니고, 문빡으로 세게 부딪쳤습니다.

 

그때, 저는 순간적으로 “카메라가 붙어 있나?“를 확인하고, 보상하려고 했는데, 그 차에는 전화번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에 와서 타이핑으로 적어서, 그 차로 향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차는 그대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 쪽지를 그 차에 붙이고, 돌아오는 길에도 예수님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습니다.

그때에 몰려오는 기쁨은 잠시 후에 나가야 하는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평안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나의 만족을 위하여, 일을 하십니까?

① 나를 위해 더 큰 평안을 위해 사신다면,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영에 묶인 사람들이고,

② 반대로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생각하는 우리들은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