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주님의 권위를 인정함이 진정한 순종의 길입니다.(마21:23~32) 2021.03.08

다이나마이트2 2021. 3. 8. 19:25

주님의 권위를 인정함이 진정한 순종의 길입니다.(마21:23~32)  말씀: 박철웅 목사님

 

90일의 기적이 3분에 2가 지나가고, 3분에 1이 남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에게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가장 큰 기적은 ”우리의 마음이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변하여, 나의 잘못된 생각이 변하고, 바르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권위와 권위주의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을 하면, 권위는 좋은 것이지만, 권위주의는 나쁜 것입니다.

 

권위는 인물이나 학식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따르게 합니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내 세워서, 타인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정체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회에서도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도 그 차이를 구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칠 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음해하려고 의도적인 질문을 합니다.

 

23~24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있을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이런 권세를 주었소?’라고 물으니까, ”예수님이 대답했습니다.

‘나도 한 가지 물어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내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해 주겠다. “(마21:23~24)

 

대제사장의 질문은 ”누가 이런 권세를 주었느냐?“는 질문이고, 예수님은 ”너희가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면,

내가 이런 일을 하는지?를 말해 주겠다.”고 답변하십니다.

 

여기서 이런 일이란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일“을 말합니다.

대제사장들은 위기의식을 느끼니까,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음해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가 하는 말을 들어보고 신성 모독죄로 고발할 생각이고,

예수가 적당히 대답을 못하면 그가 스스로 떠날 것이므로, 이것도 저것도 손해 볼 일이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답변은 25~26절 말씀에 나옵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느냐? 하늘로 부터냐, 아니면 사람으로 부터냐?

그들은 이것을 두고 서로 의론하면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늘로부터 왔다‘고 하면 저 사람이 ’그러면 왜 요한을 믿지 않았느냐‘ 할 테고,

그렇다고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믿고 있으니 두려울 따름입니다.“(마21:25~26)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다“면, 요한을 죽인 것에 대하여 정죄를 받을 것이고,

역공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27절 말씀을 보면,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잘 모르겠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렇다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마21:21) 예수님은 “너희도 대답하지 않으니, 나도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위기의식을 갖게 했을까요?

종교지도자들의 생각에 ”예수에게 권한을 준 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성전에서 물건을 파는 것은 ”제사장들에게 준 권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까다로운 규정을 정해서, 집에서 가져온 물건은 불합격시키고, 성전에서 파는 물건을 사용하도록 했으며, 그 값도 시장 값의 10배에 해당하는 폭리를 취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백성들에게는 커다란 경제적인 고통이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채찍을 들고, “성전을 장사꾼들의 아지트로 만들었다?”고 역정을 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성전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권위란 “힘을 휘두르라.”고 준 것이 아니라, “섬기라.”고 준 것입니다.

 

제사장이라는 직책은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데, 그런데 어느 순간에 변질되어,

섬김을 위한 부르심 ”나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에 권위는 권위주의로 변경됩니다.

그 직분은 그 순간에 무너져서 권위는 사라지고, 권위주의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최초의 권위자“인데, 부모가 독단적으로 판단하면,

권위주의가 되어 자녀들이 그 권위에 치를 떨고, 분노하게 됩니다.

 

어떤 교수님이 하는 말인데, 어떤 청년이 와서 들려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란 놈을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흥분하기에, ”왜, 그런 험한 말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어떻게 아버지란 놈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고, 자기는 좋아합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후에 그 교수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더니, 그는 자기 아버지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갖고 있어서, ”자기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하나님에게 투영되었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수를 믿으라.“는 말보다 더 영향력을 주는 것은 ”예수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권위주의자로 서는 순간에, 구원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데, 그 순간에 구원의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90일의 기적에 참여하는 동안에,

권위주의의 모습을 탈피하고, 진정한 권위를 품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서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31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두 아들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했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맏아들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나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마 21:31)

이 비유는 유대지도자들에게 권위주의로부터 돌이키기 위해, 예수님이 배려하신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먼저 맏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였으나, 그는 “가겠다.“고 말을 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에게도 같은 말을 했는데, ”그는 싫습니다.”하고 거절했으나, 뒤에 뉘우치고 갔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그들은 둘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 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21:28~31)

 

첫째 아들은 포도원에 가겠다.”고 말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포도원에 가지 않겠다.”고 말을 하지만, 아버지 말대로 포도원에 갑니다.

 

첫째 아들은 실제로 그렇게 따르지 않았으니,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말하고,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대로 실행했으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느냐?”고 묻습니다.

사실은 두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행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뜻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에 관심이 있는 것은 우리말 성경에는 첫째가 포도원에 가지 않았지만, 개역개정 성경에는 그 반대로 기록되어 있기 있기입니다,

 

그러면서 ”유독 첫째냐? 둘째냐?”를 따지는 것은 제가 첫째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 마음 속에는 이런 질문이 생겼어요.

그것은 권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 순서에 너무도 중요한 것은 “가정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에게도 이런 잔재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순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32절을 말씀을 읽으십시오.

“요한이 너희에게 의의 길을 보여 주려고 왔는데,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들과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마 21:32)

 

예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란 “마음을 돌이키는 일“입니다.

 

둘째가 하늘나라에 들어간 것은 ”복음을 듣고, 죄를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회개를 통해서, 믿음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이 해당되는데도 전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회개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만한 마음으로, 자신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을 위선자로 만들은 것입니다.

 

권위주의자는 말로는 “나를 따르라.”고 하지만, 자기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권위주의가 발전하면, 위선자가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은 회개하지 않으니까, 공동체에 더 큰 위험을 가져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는 마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1-2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 내가 권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감사하십시오.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것은 안정되고, 평온한 가운데서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딤전2:1~2)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위해서도 비난하기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회개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지켜야 합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어떤 성도가 제 주위에도 이것을 지키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그런 권위를 지키려고 했을까요?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 분을 닮으려고 노력합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 말씀을 보면,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빌2:6~7)

 

예수 그리스도.

그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예수그리스도뿐입니다.

 

우리들은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사회에서도 그분을 바른 권위자로 알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