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따를 생명의 주님 (마19:13~22) 2021.03.02

다이나마이트2 2021. 3. 2. 23:06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따를 생명의 주님 (마19:13~22)   말씀: 여성민 목사님

 

우리가 요즘 90일의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길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이 어린 아이를 축복하면서 구원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선생님,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구원은 “선한 일”을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예수를 알고 믿어야 구원을 받는데,

이 청년을 그걸 모르고, “슬픔에 젖어 떠났다“는 얘기입니다.

 

17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왜, 너는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한 분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켜라.(마19:17)

 

먼저 청년에 대해 알아보면, 누가복음에 같은 얘기가 나오는데, 이 청년은 관원이라고 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원(요즘에 국회의원)이고, 그는 부자였고, 윤리적으로 완벽한 사람이라고 추정합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그는 당시에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인 같이 교만하지도 않고,

“예수께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는 기록을 보면, 그는 아주 예의 바르고, 훌륭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청년이 “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픔에 젖었는지?”에 대해, 두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1) 첫째로, 그는 “예수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부르는 호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보통 예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는 랍비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가 아니고, 선한 선생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예의 바른 사람이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예수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끔 우리 안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 잘 인지를 못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때부터 나에게는 엄청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함께 기도하다가 방언도 받고, 푸른 하늘을 보면서도 너무 감동적으로 느껴졌고, 세상이 모두 다 새롭게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고, 아주 가까이 내 마음 속에 살아계셔서, 나를 움직이시는 분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청년은 그걸 모르고, 예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이 부자 청년은 존경은 받았지만, 예수님에 대해 모르니까, 슬픔을 느낀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고, 내가 어려울 때는 항상 나를 도와주시는 분인데,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20~22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이 모든 것을 제가 지켰습니다. 제가 아직 부족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했습니다.

’만일 네가 완전해지고자 한다면, 가서 네 재산을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나 이 청년은 이 말을 듣고, 슬픔에 잠겨 돌아갔습니다.

그는 굉장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마19:20~22)

(2) 청년의 두 번째 오해는 ”구원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청년이 알고 있는 구원관에 대해, 의심이 듭니다.

 

이 청년은 율법이 말하고 있는 모든 계명을 다 지켰으니까, ”자기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네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현대인들의 구원관은 ”내가 선한 일을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업적이나 재산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슬퍼하면서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은 “예수님의 구원관”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초청을 받고, 믿기로 결단을 하면, “모든 사람이 하늘의 보물을 얻을 수 있는데“,

이 청년은 그걸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의 문제는 아주 중요한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문제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을 만나서, 그런 얘기를 듣고도, 그걸 깨닫지 못했으니, 안타깝습니다.

이 청년은 그것을 결단하지 못했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지 않았고, 선별된 인원만 선별하여, 제자로 삼았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안타깝게도 거기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믿음과 구원의 확신은 다릅니다. 두 가지를 비교해 보면,

① 먼저 믿음이 “뿌리”라고 한다면, 확신은 “꽃”과 같습니다.

----뿌리 없는 꽃은 있을 수 없지만, 꽃이 없는 뿌리는 있을 수 있습니다.

 

② 믿음은 군중을 비집고 들어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는 여인이라“고 한다면,

확신은 돌로 치려는 사람들 앞에서 “보라, 하늘이 열린다.”고 고백하는 스테반과 같습니다.

 

③ 믿음은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말하는 “떨리는 음성”이라면,

확신은 “담대하게 말하는 음성“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얻는 것”과 “구원을 확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수를 “내가 받아들였다.”고 해도, 받아들이고 체험하는 것은 다릅니다.

 

“작은 불꽃”도 불이고, “한 방울의 물”도 바다 속에 있는 물과 같습니다.

가장 작은 믿음도 가장 큰 믿음과 같이,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입니다.

 

그런 확신은 교만이 아니라, 도리어 겸손입니다.

나의 삶의 모습과 상관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입니다.

 

요한일서 5장 10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자기 안에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대해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 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습니다.”(요일5:10)

 

▶구원의 확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증거를 갖고 있는데, 그 증거가 구원의 확신입니다.

확신은 자기의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 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증거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 대상이 결정되는 것이니까, 그 증거가 확실하면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 증거는 “성경”입니다.

 

성경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증거의 책”입니다.

그 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했다.”는 것은 “기록된 증언”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은 보험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천주교에도 보험을 들어놓고, 불교에도 동시에 보험을 드신 분들도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간신히 구원을 받는 성도가 아니라,

“구원의 확신”을 자신 있게 누릴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나를 구원해 주신 분”으로 받아 드린 사람도, 처음으로 구원의 감격을 느꼈을 때처럼,

매일 매일 새롭고, 신기했던 감정을 다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이번 90일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을 체험하기 바랍니다.

우리들 가운데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주님, 저는 주님이 계시는 근처에는 있는데, 제가 용기가 없어서 주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 속으로 들어오셔서 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저를 꽉 붙들어 주십시오.

 

제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스스로 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