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하나님나라를 위한 결혼언약 (마19:1~12) 2021.03.01

다이나마이트2 2021. 3. 1. 12:51

하나님나라를 위한 결혼언약 (마19:1~12)   말씀: 이기훈 목사님

 

이 새벽에 기도하는 분들에게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시기 기원합니다.

오늘은 3월 1일, 그 첫째 날인데, 이런 역사적인 날에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결혼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을 들어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결혼 쎄미나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이 시험받는 상황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3절을 읽어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가와 예수를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이유가 된다면,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는 것이 적법한 것입니까?”(마19:3)

 

예수님의 일상에는 늘 이런 시험이 따라 다니고 있었습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①“믿음을 성장시키는 시험”이 있고,

②또 다른 것은 “시험을 통한 유혹”이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지 못하도록,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에도 늘 시험이 따라다니는데, 그냥 모르고 자나가거나, 시험에 익숙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시험을 이기셨을까요?

(1) 첫째는,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성경 곳곳에 예수님이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듯이, 항상 기도하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시험을 당 할 때에도 믿음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해결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말씀을 인용하여,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해 줍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교회도 나오지만,

꼭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시험을 알고, 그 시험을 이겨내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많이 있는데, 이런 시험이 그 선물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는 참된 기쁨과 평안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시험이 오면, 그런 기쁨이 사라집니다.

 

또한 시험은 나에게도 상처가 되지만, 타인에게도 상처가 되는 것이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닥쳐오는 시험을 알아차릴 때, 영적인 성장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시험을 이기셨을까요?

①첫째로 “아내를 버리는 것이 적법하냐?”라는 질문 속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었습니다.

그것은 헤롯이 아내를 버리고, 동생의 아내를 취했는데, 이것으로 인해 나쁜 의도가 숨어 있는 질문입니다.

 

4~6절의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으십시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해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지 못한다.”(마19:4~5)

 

예수님은 결혼의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분으로, “처음에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말씀은

창세기 1장 27절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창1:27)

 

그리고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에는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그 아내와 결합해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창2:24)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성경 말씀과 같이,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성경적인 가정의 원리”가 담겨 있어, 결혼식의 주례사에 사용됩니다.

 

▶성경적인 가정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1) 첫째는 하나님은 사람을 먼저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 다음에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도록, 결혼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남자와 남자, 또 여자와 여자끼리, 결혼하는 동성과 결혼하는 동성애는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동성애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에게 “당신의 자녀가 동성끼리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겠느냐?”라고 질문하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반 성경적이고, 반윤리적인 것이고, 의학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이니, 허락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둘째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해,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관계의 중심이 “부모로부터 배우자로 옮겨진다.“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부모가 너무나 지나치게 관여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마 보이이거나, 부모가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가 결혼을 하면, 뒤로 물러서서 서로가 한 몸이 되도록, 후원해야 합니다.

 

또한 자녀들은 주님의 뜻 안에서, 스스로 독립하여, 각자 자기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배우자가 부부이고, 자기 아내와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하고도 게임에 빠져서 ”아내를 등한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결혼을 하지 말고, 평생 자기 혼자 게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때문이라“고 변명을 하는데, 그것도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서로 하나가 된다.“는 말은 둘이서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본드로 붙이듯이, 하나가 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는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니가 그럴 수 있냐?“고 간섭하지 말고,

각자 살아가도록 후원해 주고, 뒤에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3) 셋째로 ”외도하는 일“에 대해, 7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그러면 모세는 왜 남자에게 이혼증서를 주고, 아내와 헤어지라고 명령했습니까?“(마19:7)

”외도하는 일“은 불법이니,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아내에게 부끄러운 일이 있으면, ”이혼증서를 써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편의 방탕함을 인정하고, 아내를 배려하여 “자유롭게 놓아 주리“는 뜻입니다.

그 당시에 아내를 남편의 소유물로 여겨서, 아내를 보호하려는 제도입니다.

▶이런 불법을 합법화 하려는 의도를 예수님은 어떻게 대처할까요? 8-9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너희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마19:8~9)

 

그 당시에는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표현했는데,

요즘에는 그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간음은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므로,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의 간음을 정당화 하려고 이런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음행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혼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뜻으로 성립된 것이니까, 인간의 힘으로 ”서로 헤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배우자의 간음으로 이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34년의 결혼 생활을 하는데, 그때마다 고비가 있었지만, 잘 극복하고 있습니다.

 

제가 결혼식의 주례사로 자주 사용하는 멘트가

”부모에게 선물해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서로 잘 사는 것이 효도“라고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정리하면,

①부모는 자녀에게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고,

②자녀는 부모를 떠나, 부부는 한 몸이 되듯이,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고,

③부부는 당연히 서로 순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결혼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는 방법을 종합하면, 세 단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첫째로,  우리는 신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묵상하는 말씀을 자기 삶에 적용하며, 신앙적인 사고로 살아야 합니다.

 

②둘째로,  확실하게 성경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올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여, 성경적으로 판단합시다.

 

③셋째로, 믿음으로 정확하게 결단하고,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정리해야, 우리는 시험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