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예수의 주 되심과 우리의 종 됨 (고후4:1~6) 2021.01.31

다이나마이트2 2021. 1. 31. 18:07

예수의 주 되심과 우리의 종 됨 (고후4:1~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도 복된 주님의 은혜가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있고, 불미스런 뉴스가 나오는데, 기독교인들은 바로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교회는 사회의 등불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는 ”교회가 이런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마음에서 그 대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어떤 상황 속에서든지, 복음은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칠지라도 ”그 상황을 뛰어 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선한 일을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공동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핍박 속에서도 살아났으며, 많은 과오가 있었지만, 그래도 존재했어요.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간 사람들도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디언들의 인권을 탄압했고, 이단과 사이비들이 교회를 괴롭혔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사라져야 하는데, 교회가 존속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교회가 잘 해서 그런 게 아니고, “예수가 살아있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존속한 것은 “교회가 선포하는 진리“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교회는 지금까지 수많은 세월을 겪으며, 존속되는 이유입니다.

그런 진리로 인해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변화되지 않고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이기에 당연히 믿어야 하는데, 사람들의 연약함이 문제입니다.

”기독교 진리”는 명품이 있기에 짝퉁이 있는 것처럼, 세상의 진리는 진짜가 있기에 가짜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가짜는 진짜가 있기 때문에, 짝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진리를 왜곡하여 사용하는 무리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따르는 복음의 진리는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진리이기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를 쓴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로부터 “자신이 무자격자이고, 거짓 사도”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낙심하지 않은 이유”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담대함을 유지하지만, 때로는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비난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만,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를 배우고,

우리의 생활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럼,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근거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1) 첫째로, 자신이 받은 직분 때문에, 바울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이 직분을 받은 사실을 생각해 낙심하지 않습니다.”(고후4:1)

 

▶이 직분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직분”입니다.

 

바울도 사람이기에, 낙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새벽기도에서 선교사님이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었을 때, 마음이 흔들렸다”는

솔직한 고백을 했던 것과 같이, 바울도 바로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한 사람의 아버지로써,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일 테지만,

그 선교사님이 그 직분을 지킨 것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이 행하고 있는 직분은 “하나님이 세워 준 직분“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만든 조직“이고, 바울이 받은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직분“이기에, 바울은 흔들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서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바울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사람은 위선자이고, 바울은 ”나는 구원을 받았고, 나는 믿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부족하다”고 해도, 진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어렵다”고 해도, 복음은 누군가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바울은 자신의 순수한 믿음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2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오히려 우리는 숨겨진 수치스런 일들을 버렸고, 간교하게 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의 양심에 우리를 스스로를 추천합니다.“(고후4:2)

 

▶우리를 낙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의 상황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순수하다면, 우리는 언제나 담대하고, 자신이 떳떳하게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합니다.

 

▶바울의 태도는 어떤가요?
① ”자신이 받은 직분“ 때문에, 포기 할 수 없었고,

②직분에 따라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 계셨기 때문에, 낙심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심층적으로 설명합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라“고 한 것은 ”어둠을 비추는 창조의 역사“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창세기에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창조 사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 우리가 예수를 알고 있는 “제2의 창조사건”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사건”입니다.

복음이 전해 질 때, ”새 역사의 창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인 4-6절의 말씀에 대조되는 말씀이 나오는데, 서로 비교하면서 읽으십시오.

“그들로 말하자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

하나님의 마음형상인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을 비추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고후4:4)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되신 것과,

예수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의 종 된 것을 전파합니다.” (고후4:5)

“어둠에서 빛이 비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고후4:6)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속에 빛을 비춰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게 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역사”로 깨달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성령의 말씀”을 알고 이해할 때, “하나님의 감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죄를 미워하게 되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도표로 정리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4절에서 나오는 신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빛을 비추지 못하게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6절에 나오는 하나님은 어둠에서 빛을 제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빛을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일이 ”선행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결 같이 말씀하시기를 “복음을 전하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우리들에게도 “빛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는 일”과 같습니다.

 

비교 종교학에서 여러 종교들을 비교하지만, CS 루이스의 스승이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와 석가, 그리고 마호멧 등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서로 같은 반열에서 비교하는 것은 착시현상이라“고 말하면서,

“종교와 철학을 한 번에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기왕에 분류하려면, ”①하나님, ②그 외의 신들, ③그리고 철학자들, 이렇게 3단계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결론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짜 신들이 나타난 것이고,

그 증거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신화를 보면, 점점 복잡해 져서 시간이 지나면서 이 세상의 신들이 나무지게 되었으며,

그런 신들이 혼미해져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가리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4장 3절에서 기록한 말씀이 내용과 같습니다.

교회 직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발광체의 역할을 다 해야 합니다.

 

해는 그 자체가 빛이 아닙니다.

그와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나타내는 발광체”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샤머니즘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면서 여러 신들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3절 말씀을 읽어 보면, “우리들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고후4: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게 받은 사명에 합당하게 되려면,

그 영광스런 형상에 따라 우리가 “발광체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5절 말씀에서 그 이유가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 되신 것과,

예수 때문에. 우리가 종이 된 것을 전파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직분에따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① 첫째로, 우리는 나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②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 되심을 전파해야 합니다.

③ 셋째로, 우리가 예수 때문에, 누군가의 종 되심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 3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종이라“고 하면, 그대로 받아드립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누군가의 종이 되었다“고 표현하면, 자존심이 상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따르는 종“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에게 우리가 자발적으로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조선시대에 선교사로 오셔서 백성들을 섬기던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가 실천해야 합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님의 종이 되어, 우리에게 그렇게 본이 되게 행동한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종이 되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절절하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주후 2세기 무렵에, 디오그네투스라는 로마 관리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제 3의 종족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나옵니다.

 

① 제1종족은 물론 로마인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황제를 주라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② 제2종족은 과거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③ 로마 제국이 말하는 제3의 종족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몸은 로마 제국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사람들이니까, 로마인들과 구별되게 취급합니다.

 

당시에 로마 사람들은 ”로마 황제“를 주라고 섬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라고 섬기는 사람들을 ”제3의 종족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큐리어스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오직 예수만이 나의 주님이라“고 대답했으며,

죽기를 각오하고, 구별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적십자사에서 “피가 부족하다“고 해도, 헌혈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앞장 서는 것입니다.

 

▶왜, 초대교회에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까?

① 초대교회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② “종으로 살았기 때문에”,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님들은 이렇게 주님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들도 사회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꺼리 끼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하지 앓으려는 현혈을 교회가 앞장서서 우리가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소외되고, 연약한 무리들을 찾아서 보살피고, 제 3의 종족으로 살아야 합니다.

 

선교 사역은 “주님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그렇게 “제 3의 종족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빛이 우리로 하여금,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