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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령은 사랑의 영입니다. (요일4:1~12)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복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2021년을 시작하면서 새벽기도와 성경통독] 그리고 피를 나누는 헌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결심했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마음이 어려우신 분들은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여,
서로를 격려하면서 차분히 성경을 읽어 간다면, 더욱 큰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헌혈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기에 참여 하면서, 생명의 존귀함을 생각하게 하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이렇게 90일 동안 매일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면서, 성경을 읽고, 생명나눔운동에 같이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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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는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정체성을 깨닫기 위해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의 영성을 바로 알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에게 특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을 안다면, 우리에게 분별력이 생깁니다.
요한일서를 기록할 당시에도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는 적그리스도들이 난무하여,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가 그와 같은 ”영적분별력을 도와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고백을 통해서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때에도 거짓 선지자들에 의하여 왜곡된 신앙을 퍼뜨리고, 거짓의 영들이 난무하던 시대였지만,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언젠가는 거기에 휩쓸려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을 지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때,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분별하나?“를 알려 줍니다.
세상에 명품이 있다면, 그 주변에는 항상 가짜들이 존재합니다.
그 가짜들이 짝퉁인데, 그것은 명품을 모방하여, 진짜와 똑같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을 모방한 것인데, 그것을 모방하여 이익을 남기려는 상술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거짓된 교회가 있었고, 거짓 선지자들이 존재했습니다.
세상에는 진실된 영이 있고, 거짓의 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성을 초월한다.”는 것과 “비이성적”이라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상식을 무너뜨리고, 판단능력을 마비시키는 거짓의 영들은 “비이성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를 위조한 것입니다.
또 거짓의 영들은 하나님의 위상과 품격을 위조한 것입니다.
거짓의 영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려서, 성령의 이름에 자기 이름을 넣어서,
자기를 하나님과 같이 신격화합니다.
밧모 섬에 있던 요한이 이 서신을 보낼 때,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이 심할 때입니다.
그러니까 거짓 선지자가 거짓 영들을 내 세우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믿기 어려운 것은 “예수가 하나님이다”라는 것입니다.
처음 믿는 분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다음에 말하는 진실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① 예수님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는데, 하나님도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과,
②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③특히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믿기 어렵습니다.
그 진실 앞에서 거짓을 말하고, 왜곡하여 사람들을 많이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님은 천사처럼 잠깐 나타나서,
‘사람으로 되었다가 영적존재가 되신 분’이라고 거짓말을 퍼뜨리고 다녔습니다.
요한일서 4장 2절 말씀을 읽어보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령을 알아보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영입니다.”(요일4:2)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신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거짓 영들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거부하고 다녔습니다.
그것이 영지주의인데, 그들은 “육체는 나쁜 것“이고, 영은 “선하고 좋은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면서 영은 ”육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영지주의는 무엇입니까?
영지주의는 눈에 보이는 세상은 악한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만 ”선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악한 세상을 만든 하나님도 결코 ”선한 존재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진짜 하나님은 더 높은 곳에 계시고,
”그 하수인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영지주의자 입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성육신한 존재가 아니라 보통 인간인데,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순간에,
마치 무당에게 신이 내리듯이 신이 내려서 그에게 머물렀고,
‘악한 육체에 갇혀 신음하는 사람들을 자유케 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거짓말로 둘러 댑니다.
그러다가 겟세마네에서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에,
“신이 떠나서 보통 인간이 되었다”는 엉터리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통 받고 죽은 것은 “인간 예수이지, 결코 하나님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런 “엉터리 주장“을 하는 영지주의자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리“입니다.
”영으로 오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되셨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집단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빌려서 “오신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들은 예수를 육체로 알았다가, 그분의 신성을 알고서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들이 많으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 12장 44~4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12:44~45)
그러면서 요한복음 10장 30절 말씀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단정 지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과 나는 같다“고 특별히 강조하십니다.
이것은 성육신하신 것, 예수님이 육체의 몸으로 오신 것은 예수님이 성령님을 소개하면서,
그 중심에는 성육신의 영성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곧 ”우리의 몸“입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먼저 ”우리의 몸 안에“ 숨겨진 죄의 습관을 없애 버려야 합니다.
성육신의 영성은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세상에 ”헌신하는 마음“과 ”희생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짓의 영은 자기중심적이고, 폐쇄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을 무시하고, 거짓말로 현혹하고, 개인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죽기까지 희생하신 성육신의 영성은 공동체적으로 같이 움직입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향을 찾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농민혁명을 통해서라도 ”올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런 방법은 올바른 주장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는 것을 믿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성령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헌신의 마음이 있는 사람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말씀을 읽어보면, 그 사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말씀은 “죽기위해 오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죽고, 희생하므로,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사랑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걸 본인이 담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요일4:7)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일4:11)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니까, 하나님에게 거하지(붙어 있지) 않으면, 그 사랑을 모릅니다.
시냇가의 작은 물들이 합쳐서 바다로 들어가듯이, 바다와 같은 거대한 물결의 시작은 시냇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크고도 넓은 하나님의 사랑은 나에게 까지 전달됩니다.
또 그 사랑은 나 자신과 내 자녀를 통하여, 누군가에게 소리 없이 전달됩니다.
그러니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랑을 모르고 지냅니다.
요한 4장 12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지금까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하게 완성됩니다.”(요일4:12)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한다.”는 사실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그 사랑을 알게 되나요?
우리가 그런 사랑을 체험할 때, 그 사랑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놀랍고, 신비한 말씀입니다.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파악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입니다.
이 짧은 새벽 시간에, 모두 다 말씀드릴 수는 없으니, 혼자서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거대한 물결과 같이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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