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여호와께 봄비를 구하라 (슥10:1) 2021.01.02

다이나마이트2 2021. 1. 2. 17:09

여호와께 봄비를 구하라 (슥10: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은 세 이레 기도회의 21일 째 되는, 마지막 날입니다.

여기서 마지막 날이라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므로,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의 여정을 떠나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스가랴 10장 1절의 말씀입니다.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화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서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슥10:1)

 

이 말씀을 ”우리말 성경“으로, 제가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봄비 내리는 철에, 비를 오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구하라.

여호와께서 먹구름을 만들고, 그들에게 소나기를 내려 주셔서, 밭의 채소를 사람들에게 주실 것이다.“(슥10:1)

 

봄비가 내리는 철에,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비를 구하라“는 것은 땅에 ”열매를 맺기 위해, 비를 요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비는 우리의 비와 “반대의 개념”입니다.

① 10월에 내리는 가을비는 씨앗을 움트게 하는 이른 비이고,

② 3-4월에 내리는 소나기는 추수 전에 곡식을 익게 하는 늦은 비를 말합니다.

 

우리의 절기와는 바뀐 개념이지만, 스가랴의 비는 “늦은 비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① 가을비(= 이른 비)가 내리지 않으면, 씨앗이 움트지 않고,

② 봄비(= 늦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열매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봄비가 풍성히 내려야, 열매가 풍성히 열리게 됩니다.

 

성경에서 가나안을 “약속의 땅“이라고 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기가 오면, ”생명의 푸르름”을 느끼게 합니다.

 

신명기 11장 14절 말씀을 읽어보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때를 맞추어, 봄과 가을에 비를 내려 주어

너희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거두게 하실 것이다.”(신11:14)

 

여기에 “때를 맞추어”라는 말씀같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정확하게 내려 주어서,

“약속의 땅”으로 만들어 주고,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 땅을 “축복의 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의 비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비를 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비를 구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원리를 잊어버린 사람의 생각입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태양이 주는 고마움이 너무도 많은데, 그걸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태양을 만든 분은 하나님인데, 사람들은 태양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정작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은 잊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태양을 숭배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런 어리석음 때문에, 하나님은 ”비를 간구해야 주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간구해야 하는 까닭은 왜, 그럴까요?

“간구하지 않고 얻는 축복“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해가 뜨지만,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빛에 대해 감사하며 빛을 바라본다면, 더 큰 은혜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 이유가 스가랴 10장 2절 말씀에 나옵니다.

”우상들은 헛소리를 하고, 점쟁이들은 거짓 환상을 보고, 헛된 꿈을 말하므로, 그들의 위로는 헛된 것입니다.

백성은 목자가 없는 양과 같이, 길을 잃고 헤매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슥10:2)

 

그 당시에 점쟁이들이 성행하였으니, 그것은 우상숭배사상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예레미야 14장 22절 말씀을 보면, “여러 민족들의 우상들 가운데, 비를 내릴 우상이 있습니까?

아니면 하늘이 소나기를 내릴 수 있습니까?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그런 분은 주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바랍니다. 주께서 이 모든 것을 하시기 때문입니다.”(렘14:22)

 

세상에서 비를 내릴 수 있는 우상은 없습니다.

하늘에서 소낙비를 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소낙비를 만드시나요?

① 먼저, 하나님은 먹구름을 만드시고,

② 그 다음에, 소낙비를 내려 주십니다.

이건 자연의 현상이지만, “짙은 먹구름”을 만들고, 그 다음에 소낙비를 주십니다.

 

그런 것은 영적으로도 큰 일이 생기기 전에, 예고편으로 “짙은 먹구름”을 보여 주는 것은

짙은 먹구름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빛이 있으라.“ 해서, 빛을 만드셨듯이, 빛을 낮이라 하고, 어둠을 밤이라 합니다.

우리는 밤이 있기 때문에, 그 어둠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게 됩니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쉬어야, 그래야 그 다음 날에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이것이 어둠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입니다.

 

성경에서 ”어둠이 주는 유익“을 시편 16편 7절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게 조언해 주시는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앞이 캄캄할 때도 내 속에서 갈 길을 알려 주시니.“(시16:7)

 

캄캄한 밤에도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게 찾아오신다.“는 말입니다.

 

그 시간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없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시간“입니다.

깊은 밤에, 우리는 그 소리, ”그 음성이 들려오는 시간”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7절 말씀에, “내가 어두운데서 말한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고,

내가 너희 귀에 속삭인 것을 너희는 지붕 위에서 외쳐라.”(마10:27)

 

여기서 “지붕 위에서 외치라“는 것은 내가 조용히 말한 것일지라도,

너희는 옥상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소리치듯이, “남에게 알리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바라는 것은 채소를 얻기 위한 것이지만,

사람들이 비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통해, 나타나는 이런 먹구름을 우리가 알아 차려야 합니다.

이런 먹구름은 믿음으로 보면, “늦은 비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실제로 그것은 열매를 맺게 하는 ”소낙비와 같은 것“입니다.

큰 먹구름 뒤에는 항상 소낙비가 오듯이, 큰 재난 이후에는 큰 부흥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 나타나는 먹구름은 부흥하기 전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늦은 비와 같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6장 3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알기 위해 전심전력 하자.

그가 오시는 것은 새벽이 오는 것처럼, 분명하다.

그는 마치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 처럼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호6:3)

 

이 말씀은 ”늦은 비의 약속”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비를 간구해야 합니다.

추수가 있으려면, 먹구름과 함께, 소낙비가 와야 합니다.

 

▶비가 오면,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스가랴의 말씀을 요약하면,

① 6절 말씀에서 “내가 유다 백성을 강하게 하고, 요셉 백성을 구할 것이다.

이 말씀은 넘치는 은혜로, ”그 백성을 구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와 상처를 씻어 주므로, 성숙이 이루어집니다.

 

② 8절 말씀에서, “내가 그들에게 휘파람을 불어, 신호를 보내서 그들을 모을 것이다.”

목자가 휘파람으로 양들을 모으듯이, 신호를 보내서 사람들을 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모이게 만드는 것은 구속받는 백성들에게 반가운 소리입니다.

이런 휘파람 소리는 하나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는 소리입니다.

 

③ 11-12절의 말씀에서 “그들은 [고통의 바다]를 지나고, 넘실거리는 바다 물결을 이길 것입니다.

나일 강이 다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앗시리아의 교만이 꺾어지고, 이집트를 다스리는 힘이 사라질 것이다.”(슥10:11-12)

 

늦은 비의 축복은 고통을 이기고, 동시에 풍요를 자랑하던 나일 강이 바닥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백성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을 꺽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일 강을 마르게 하여, 고통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비가 내리는 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를 구하는 인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일 강의 풍요 속에서, 사람들에게 착각을 하지 말고,

땅을 징계하면서 고통의 파도를 이기고, 일어서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 부터는 그들의 태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나일 강의 풍요를 의지하지 말고, 겸손히 엎드려 비를 구하고, 고통의 파도를 이기고, 승리하게 만듭니다.

 

우리들도 코로나의 먹구름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듣고,

소낙비를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