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행5:33~42) 말씀: 주승중 목사님(주안장로교회)
여기에 참여하시는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금년을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2012년 가을에 장로교 신학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특별한 것은 학교에서와 달리, 성도님들과 함께 생활하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도,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주님의 뜻“을 내 세우지만,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나 자신의 문제이고, 한국교회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유대인들도 우리와 같이 행동했던 것들을 보게 됩니다.
산헤드린공의회는 우리나라의 국회와 같은 국민의 대표기관입니다.
이 공의회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만든 정치집단이고, 종교지도자들의 모임이고,
그들은 사실상 이스라엘 집단의 최고 통치기관입니다.
그들은 인본주의를 앞세운 집단으로, 자기들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이들로부터 사도들이 협박을 받고 있습니다.
5장 30절 말씀에서 “베드로가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니까,
종교지도자들은 화를 내며서 사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였듯이, 사도들도 죽이려고 합니다.
바로 그때, 한 지혜로운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는 가말리엘이라는 율법사입니다.
그는 율법학자로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가 나타나서 중재를 하려고 합니다.
사도들을 잠시 밖으로 내 보내고,
“신중히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는 이전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말하면서, 조용히 중재에 나섭니다.
”드다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떠들었지만, 결국은 죽임을 당했고,
드다는 난을 일으킨 사람으로 여호수아의 후예라고 자처했지만, 결국은 죽었습니다.
유다가 사람들을 현혹했지만, 결국은 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졌습니다.
유다는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참수당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사람의 생각으로 행동하면,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하면,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으니, 우리들이 신중하게 생각하자”고 충고합니다.
사도들을 죽이는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고 경고하며 강변합니다.
그랬더니 공의회가 그의 말을 받아드려, 사도들을 불러다가 매질하고 풀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공의회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가말리엘뿐입니다.
공의회 사람들은 율법 선생들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데, ”사람의 생각으로“만 처리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득권과 명예를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5장 17절 말씀을 보면, ”대제사장과 그와 한패인 사두개파 사람들은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오늘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처럼,
오직 당파와 자기들의 이익만 추구하며, 일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인본주의에 따른 관점으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그들의 결정은 오늘 날, 우리 국회에서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교회에서도 자기 입장만 고려하는 사람을 가끔은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법과 원칙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자기 욕심대로 행동합니다.
거기서 가말리엘은 그런 행동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39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행5:39)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나오는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이라는 구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은 행위“이고, 죄악된 행동입니다.
그러나 오직 가말리엘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봅니다.
이 일을 잘못 다룬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이란 모든 일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생활은 매일 매 순간 그리고 매 사건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참다운 신앙생활이란? 심지어 우리의 삶에 어떤 억울한 일과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만일 이 사건과 이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면 그 억울한 일 조차도 기쁨으로 달게 받는 것을 말합니다.
41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모욕당할 만큼,
가치 있는 여김을 받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습니다.“(행5:41)
사도들은 [죄]가 없이 억울하게 당했습니다.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모욕당한 것을 가치 있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기뻐하면서 공회를 떠났습니다.
여기서 ”고문당했다“는 말이 그저 몇 번 맞은 정도가 아니라,
”가죽을 벗긴다.“는 의미로,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손과 다리는 묶이고 채찍을 치는데, 그 채찍의 끝에는 쇠구슬을 박아서
피부에 박히고, 채찍을 잡아당기면 살점이 뜯겨 나오는 고문입니다.
그런 무서운 태형을 당했는데, 사도들은 원망도 하지 않고,
그 일에 ”합당한 자“로 생각하면서 고문을 참으며, 기뻐했어요.
그들은 그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구세주“라고 전도하고 다녔어요.
그들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행동을 했어요.
그들은 억울하게 고통을 겪었지만, 고난당한 것을 원망하지 않고,
기쁨으로 감수하며, 예수를 전하고, 증언하며 다녔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주님의 일에 동참했다“는 자부심과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초대교회 당시에, 사도들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비하면, “나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수모를 당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고난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참된 신앙인은 누구일까요?
어려운 고난과 역경 중에도
①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② 하나님의 관점에서 행동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삶의 어떤 순간에도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의 직장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교회에서의 섬김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판단하십시오. 그런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순종할 때,
초대교회의 사도들처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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