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형통한 길을 가는 사람 (수1:1~9) 2020.12.26

다이나마이트2 2020. 12. 26. 12:29

형통한 길을 가는 사람 (수1:1~9)     말씀: 김형준 목사님(동안교회)

 

오늘 본문의 시작은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말씀은 한 사람의 죽음이 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끼쳐서, ”공동체의 죽음으로 받아 진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니까,

마치 불안에 떨고 있는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행복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행복한 것이 행복을 만들지 않고,

행복은 그것을 받아드리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자기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행복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했으나,

여호수아의 리더십으로 형통한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형통한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해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1)첫째로, 여호수아는 말씀을 우선순위로 두고, 행동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두려움이 올 때마다,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순위로 생각했습니다.

 

광야의 생활을 단 두 마디로 표현하면, 불평과 원망뿐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더 컸던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니까, 또 요단강이 기다립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이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그들의 앞에는 계속해서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그러니 매일 매일이 고통스런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집니다.

 

▶그 때, 여호수아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은과 금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그것보다도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한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사는 인생이지만,

우리의 몸이 원하는, 우리의 욕망 앞에 서면, 안됩니다.

 

그때마다 공급해 주시는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길갈의 돌무더기에서,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형통한 길은 어떤 길입니까?

 

인생의 길은 넓은 길과 좁은 길이 있습니다.

가다보면, 거친 길과 평탄한 길이 있습니다.

빠른 지름길이 있으면, 돌아가는 길도 나옵니다.

때로는 넓은 길도 나오지만, 좁아서 갈 수 없는 길도 나옵니다.

 

그러나 ”내가 가려는 길”과 연결된 길이 형통한 길입니다.

 

▶그렇다면, 형통한 길은 어떤 길입니까?

▶그런 길은 어떤 사람에게 주어집니까?

 

그런 길은 “묵상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런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거친 길을 갈 때는 편안하게 걷도록 하고,

지름길을 갈 때는 너무 빠르니까 주변을 살피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묵상하는 사람”에게 그런 길을 열어 주십니다.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에게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써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1) 첫째로, 여호수아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을 때,

그런 길을 열어 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하나님에게 순종할 때,

”그런 길을 열어 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장애물이 나타날 때,

그때마다 ”말씀에 따라 행동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순종하는 여호수아에게, 장애물을 없애 주십니다.

그럴 때마다, 장애물을 디딤돌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지금 우리들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을 잃어버리면, “삶의 방향”을 잃게 됩니다.

 

▶말씀을 보면, 얻는 게 무엇입니까?

말씀에는 “바르게 교훈함”과 책망이 들어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저녁 9시에 뉴스를 보지 말고, 가정 예배를 보십시오.

9시에 뉴스에 집중하는 것 보다, 우리는 더 행복해 집니다.

 

그렇게 실행할 때, 우리를 바르게 만들고, 지혜로움이 생깁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오직, 말씀으로”라는 생각으로 지냈어요.

 

(2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정체성을 바로 세웠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았는데,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이므로,

그들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게 됩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아야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농사를 짓던, 전쟁터에 나가 있던, 어느 곳에 있더라도,

언제라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을 갖고 살았습니다.

 

▶자녀들이 가져야 할 우선순위는 무엇일까요?

①첫째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②둘째는, “주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이고,

③셋째는,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져야 할 정체성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알렌 크레이더 박사의 “초대교회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라는 책에서,

초대교회에는 ”이런 정체성이 들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정체성이 들어 있나요?

① 먼저 ”나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② “나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③ ”나는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④ ” 절대적인 희망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자의 밥이 되어도, 절대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믿음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승리했습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교회에 이런 정체성이 있습니까?

혹시 이런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지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늘 행동해야 합니다.

 

케네스 배라는 선교사가 15년 노동교화형을 받고 735일간 북한에 억류되어 있을 때,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힘든 노동이 아니고,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간부들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너의 조국은 너를 버렸어!“라고 회유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리도록 유도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 자신은 “너는 누구냐?”라고 스스로 물으면서,

“나는 지금, 북한이라는 선교지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찬송을 부르면서 “나의 정체성을 회복했다“고 회고합니다.

 

그렇게 공감하면서 ”나는 선교사로 왔다“고 분명히 말하니까,

그들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와 헤어질 때, ”그들도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어디에서나 통합니다.

 

구원은 변함이 없으니까, 내 마음에 하나님이 끝까지 남아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계십니까?

그분 앞에서 당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나타내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 정체성에 따라, 자신을 확실하게 드러내십시오.

 

엉거주춤하거나 애매하게 하지 말고, 확실히 드러내야 합니다.

“내가 만든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는 삶“으로, 사십시오.

 

그러면, 홍해가 길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만든 길“입니다.

 

(3)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은 어떤 날입니까?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존재와 의미를 상징하는 날“입니다.

유월절이 없었다면, 출애굽도 없고, 노예의 해방도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종살이 하던 때는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해방되던 날로부터,

자기들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월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된 날이지만,

양의 피를 바르면 살아나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6月 달에 드리는 절기가 아니고,

유월절은 죽음의 사자가 “피를 보고 넘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다 똑같은 죄인이지만,

어린 양의 피로인해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미 피를 흘렀기 때문에****

이미 죄 값을 치렀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킬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① 첫째로, 우리는 ”노예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는 노예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유월절을 보낸다.“고 합니다.

 

②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출애굽 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죄인 의식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런 진노의 자식이므로,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희망이 없고, 이미 죽은 자이지만,

하나님 앞에 서면, ”그것을 벗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들이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면, 교만이 사라집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그런 나에게도

하나님이 나를 찾아와서, ”나를 살리셨다”고 고백합니다.

 

③셋째로, 유월절을 지킬 때, 은혜의식이 생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보았기에, 가나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힘으로 된 것입니다.

 

존 스턴트 목사님이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나?“라는 책에서.

”나는 천국의 사냥개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한 번 물으면, 놓치지 않는 사냥개의 근성으로,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추적했기에,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끈질긴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분명히 그때는 걱정꺼리였는데, 어느 날 보니까,

그게 슬며시 해결되었어요. 그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④넷째로, 유월절을 지키면, 사명 의식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때,

사명감이 생기고, 열정이 솟아나고, 헌신하게 됩니다.

 

과기대의 이규완 교수(대전제일교회 장로, 이자익 목사 손자, 고분자화학박사) 에게 암이 생겨서,

그를 위로하러 갔다가 오히려 뜻밖에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데려가기 전에,

나에게 암을 주심으로, 그간 동안이나마 섬기게 하시니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암을 주신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는 것이니,

그렇게 긍정적으로 받아 드리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크리스천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아주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환경만 바라보지 말고, 말씀에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고,

“강하고 담대하라.”는 믿음으로 걸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