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극복을 위하여 (마10:22) 말씀: 김운성 목사님(영락교회)
코로나 극복을 위한 기도회를 열게 하심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 기원합니다.
세상에는 안 되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그냥 순응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는 요즘에 우리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①하나는,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이고,
②다른 것은, 그냥 순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했습니까?
그 과정을 살펴보면, ①먼저 그들은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을 극복했으며,
②길을 가다가 홍해를 건너야 하는 어려움을 당했고,
③배고픔을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셨고,
④목마름을 반석에서 나오는 물로 해결해 주셨고,
⑤아멜렉 족속들과 만나서 싸우게 했으며,
⑥광야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이런 것들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고 나서 언덕에서 찬송을 부르면서 기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 보면, 그때의 상황이 마치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도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도 승리의 노래를 부를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는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을 하면서, 예측한 것이 있었습니다.
① 바로 왕이 쉽게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② 수많은 소와 양들을 데리고 떠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③ 가나안의 백성들이 쉽게, 자기 땅을 내주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① 떠나자마자 홍해를 만날 것이라는 것과
② 40년을 광야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과
③ 아말렉이 가로막을 것이라는 것과
④ 요단강이 그렇게 물이 많다는 것과
⑤ 가나안성이 견고하고, 튼튼한지는 예측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코로나를 예측하지 못한 것과 같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절망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망은 비슷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3~14절 말씀에, “모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굳게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에게 베푸실 구원을 보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이 얼마나 멋진 말씀입니까?
우리들 중에서 모새 같은 지도자가 나와서, 이런 말씀을 해 준다면,
우리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저도 그들이 홍해를 건너듯이, 코로나도 극복하길 바랍니다.
언젠가 예전처럼, 예배당을 가득 채우고, 예배드리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도달하는 그날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도 알아서 하실 것이지만,
우선 우리들의 많은 노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제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은
그냥 “순응하는 과정”입니다.
① 40년이라는 세월이 줄어들지 않았고,
②그들은 광야의 길을 터벅 터벅 걸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천막을 치고, 또 걷고, 소와 양떼들을 몰아가야 하고,
또 노인들과 아이들을 달래가며, 묵묵히 지나온 세월일 것입니다.
자고 나면 아침이 오고, 걷다보면 저녁이 오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서 40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던 시간 속에 사람들은 죽어가고, 죽은 사람은 광야에 묻었고,
또 떠나야 하는 길이기에, 모새도 그렇게 아론을 보내면서,
많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것이 순응이고,
그렇게 순응하며, 상황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새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 하시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영적인 내성도 주시어, 잘 참아내게 하옵소서.
어떤 상황을 순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능력은 차고 넘치지만,
그런 능력 있는 분이 어려운 상황을 받아드리고,
그런 상황을 극복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는 목수의 아들로 빈곤하게 사셨으며,
예수님도 배가 고파서 무화과 열매를 찾으셨고,
메시아라고 조롱을 받으며, 사람들의 놀림을 받았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고통을 참아내고, 죽음까지 감당해 내셨습니다.
그런 상황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드린 것이 바로, 순응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정말 놀라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생명의 구세주가 되신 것은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구세주가 되신 것은 극복이 아니라, 순응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받아드린 것, 그 자체가 극복한 게 아니라,
어려우신 상황에 순응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상황에 거부하지 않고, 순응하여,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그런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십자가를 거부했다면,
오늘 같은 예수님의 영광은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 자신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나요?
하나님은 모새에게 “너는 느보 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너는 그 땅을 바라만 보고, 네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너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아멘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모새의 위대함은 이것입니다.
이게, 모새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바울 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최고의 학식을 가졌으나 가난하게 살았고,
부유하다고 교만하지 않았으며, 어떤 상황도 모두 받아드렸습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에서의 말씀에서,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말은 “자족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말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13절 말씀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말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 ”순응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 중에서 압권은 “다니엘의 친구들이 보여준 사건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에게서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무불 앞에 서게 됩니다.
다니엘서 3장 16-17절 말씀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극복에 대한 기대“이지만,
그때 다니엘의 친구들이 하는 말에는 ”극복하려는 기대”도 있지만,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들어있습니다.
18절 말씀에 나오는 ”왕이여,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거나,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을 줄 아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그렇게 하지 아니 하실지라도”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그들이 하는 말은 ”극복하는 기대“도 있지만,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 말 속에 담담히 ”순응하는 결단“이 들어 있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의 성도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자신의 삶이 붕괴되었지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견디는 법과 [응하는 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혹시 코로나가 ”우리를 더 괴롭게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상황에 맞게 믿음으로 순응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처럼,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그렇게 아니 하실지라도”라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순응의 믿음이 우리를 “강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 마지막으로 “내가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이제 하나님이 나를 부르는 구나”라고 받아 드리며,
순응하는 믿음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루마니아의 살아있는 순교자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도
공산 치하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셨지만,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그는 “주님의 임재가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게 응답하지 않으시지만, 저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저보다 더 어려운 형제들을 찾아 가시느라, 저에게 오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보다도 그들을 먼저 돌보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으니,
다른 이들을 먼저 도와드리고, 저 한테는 천천히 오십시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기도입니까?
우리들도 그런 강한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극복한다.“는 것은 ”밖에 있는 적을 극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내면의 적을 극복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내면의 적을 극복하면,
우리 안에 있는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게 됩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극복하고, 승리하고 이길 때, 그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들고,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의심과 걱정을 떨쳐 버릴 때,
“믿음이 있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의심을 극복하는 방법은 특별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지금까지도 우리와 함께 하신 분이고,
앞으로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며, 같이 있을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아버지이기에.
우리가 그분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어제 유기성 목사님이 말씀하신 [미즈노 겐지]씨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분은 모든 사지를 쓰지 못하지만, 오직 눈빛 하나로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 안에 하나님이 게시기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분의 삶을 승리로 이끄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우리를 질병과 가난으로 부터 건져 주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더 큰 선물인 구원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코로나 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김소엽] 선생님의 “오늘을 위한 기도“를 소개합니다.
오늘을 위한 기도-----김소엽
잃어버린 것들에 애달파하지 아니하며
살아있는 것들에 연연해하지 아니하며
살아있는 일에 탐욕하지 아니하며
나의 나됨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내 안에 살아 있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가난해도 비굴하지 아니하며 부유해도 오만하지 아니하며
모두가 나를 떠나도 외로워하지 아니하며
소중한 것을 상실해도 절망하지 아니하며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격려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누더기를 걸쳐도 디오게네스처럼 당당하며
가진 것 다 잃고도 욥처럼 하느님을 찬양하며
천하를 얻고도 다윗처럼 엎드려 회개하는
넓고 큰 폭의 인간으로 넉넉히 사랑 나누며 오늘 하루 살게 하소서
순응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순응은 비굴한 자의 태도가 아니라, 정말로 강한 자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순응할 때, ”궁극적인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답답하지만,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 코로나를 예방하는 길입니다.
비대면 예배가 답답하지만, 북한의 지하 교회를 생각하면,
거기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의 환경은 좋은 것입니다.
이제는 “5명이상이 모이지 못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홀로 있어도, 우리의 주님만 있으면, 나는 행복합니다.
▶내가 행복한 것은 주님은 내가 홀로 있을 때,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맨 끝 구절인 22절의 말씀에,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 10:22)라는 말씀과 같이,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고 했으니,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견디시기 바랍니다.
이번 성탄절을 홀로 겪으면서 끝까지 견디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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