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12:46) 2020.12.23

다이나마이트2 2020. 12. 23. 21:22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12:46)       말씀: 유기성 목사님(선한목자교회)

 

전국에서 유튜브 방송을 통해서 “세 이레 기도회”에 참여하신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내일 모레가 되면 성탄절인데, 요즘 분위기가 가라않자 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속에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진정으로 내 안에 예수가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저가 어릴 때, 저의 부친은 참 어려운 목회를 하셨습니다.

 

여주에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정상적인 집이 아니고,

학교의 교실에서 살았는데, 저의 기억으로는 그때가 행복했습니다.

그것은 ”학교 전체가 저희 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절도 거창하게 보내는 것보다,

”주인공인 예수님과 함께 하는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성탄절을 거창하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주인공과 함께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고린도후서 13장 5절의 말씀인,

“예수가 네 안에 있는가?”라는 구절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그 말씀이 저에게 믿어지지 않았으므로,

성탄절이 다가와도 나에게 진정한 기쁨이 없었습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진정한 성탄은 ”내가 예수와 함께 하느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17세기 시인인, "앙겔루스 실리시우스(Angelus Silesius)"의 시를 읽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신비주의 자]인데, 다음과 같은 시 였습니다.

 

"그리스도 베들레헴에 태어나심이/ 천 수 백 번을 헤아리건만

그리스도께서 너 자신의 마음에 나시지 않으면/ 그 영혼은 아직 버림받은 채로니라.

 

십자가 만이 네 영혼에 구원을 주시리니/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네 마음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 네 영혼은 영원히 잃어진 것이니라"

 

저는 그의 시를 읽고서, [성탄절]은 “마음에서 울어나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반문을 합니다.

 

정말로, ”내 안에 주님이 계시는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래서 저 자신에게도 스스로 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분에게 ”당신 안에 주님이 계시냐?“고 물으니까,

”제가 어린아이 인가요?“라는 말을 듣고, 오히려 제가 민망했어요.

 

실제로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게 아니고,

성탄절에 어린 아이는 선물을 받아서 좋고, 젊은이는 친구를 만나서 좋지만,

 

그러나 성탄절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생일잔치의 자리에, 주인공이 그 자리에 없다면, 그건 아니지요.

 

진정한 성탄은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 자신이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빛이라는 것은 ”햇빛보다도 더 강한 빛“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 빛을 보고, 눈이 멀게 한, 그런 빛입니다.

예수를 마음에 모신 사람은 “그 빛을 마음속에 모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영접한 사람은 그런 빛이 그의 마음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증거“가 있습니까?

(1) 첫째로,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배척하는 것은 “예수가 스스로 죄인이라”고 하니까,

그들은 “그 말이 듣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앞에 서면, 자기들의 죄가 들어나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배척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이 “간직해야 할 말씀”이고,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영접한 사람은 교만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와의 관계를 그런 관계로 엮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은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느끼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 그걸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여러분을 죄인 취급하면, 거기에 동의할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먼저 화가 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합니다.

 

빌리 그레헴 목사님의 딸 앤 그레함 여사님의 글 가운데

빌리 그레함 목사님 집에서 “방송국 인터뷰를 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온 집안을 대청소하고 준비하며 기다렸는데,

막상 조명이 비추기 시작하니까,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합니다.

 

방송 조명이 강력하게 비쳐질 때에

“숨겨진 곳에 먼지들”이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달라진 것은 없는데, 강한 빛이 쏘이니까,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먼지“가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빛이 오면, 우리의 죄도 드러나게 됩니다.

 

(2) 두 번째 증거는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그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의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추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도 빛이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러니까 우리도 ”내가 빛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나, 어디를 가더라도

“내가 가는 곳에, 내 자신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무실에 들어갈 때,

“이제 빛이 들어간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런 마음이 교만한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는 빛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이 좀 이상합니까?

그런 사람은 ”아직 주님과의 관계가 엉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분은 “나를 통하여, 예수님이 드러나지 않는” 반증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주변의 생각과 느끼는 감정이 같을까요?

그 해답은 “여러분의 관계”가 그 핵심입니다.

 

예수님과 여러분의 관계가 핵심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자기 자신을 나타내야 합니다.

 

자신이 예수를 영접했다면,

주변에 사람들이 “당신을 보면서, 예수와 같이 보여야” 정상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행동에 조심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간증한 얘기입니다.

예수님이 “제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고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를 하다가 목사님이 ”그만 그 자리에서 울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진짜로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경외로운 삶이 되어야 합니다.

 

(3) 세 번째 증거는

예수가 빛으로 오셨을 때의 변화는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해 져야“ 합니다.

 

▶예수가 내 맘에 오시면, 어떻게 변합니까?

①첫째로, 어둠이 물러나고, 기쁨이 옵니다.

②둘째로, 사랑이 충만해져서, 넉넉한 마음으로 변합니다.

 

요한복음 12장 46절 말씀을 읽어보면,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12:46)

 

여기에서 어둠은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영접하면, “밝게 산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많은 말씀을 드리기 어려우니까,

저는 한 분을 소개하면서 마치려고 합니다.

 

그 분은 일본인으로, 뇌성 마비인 "미즈노 겐조(水野源三)"씨의

"감사는 밥이다"라는 시집입니다.

 

그는 “눈을 깜박이는 [시인]”이라고 하는 [장애인]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질에 걸려서 [뇌성 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그는 듣는 기능, 보는 기능, 외에는

모든 기능이 마비되는 전신불구의 몸이 되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 한 개도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누워 있지만,

[보는 눈]과 [듣는 감각]은 살아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표시하는 것은

①얼굴에 [웃음]을 지어 보여주는 것과

②“눈을 깜빡 이는 것“ 뿐입니다.

 

그가 불구가 된 지 약 5년이 되었을 때,

목사님이 찾아와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 성경책을 열심히 읽었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겐조씨가 시(詩)를 쓰는 방법은 기이했습니다.

일본어 알파벳인 ”아이우에오'“의 50글자를 시력 측정표 처럼 앞에 붙이고,

어머니가 처음부터 한 자씩 막대기로 짚어가면서, 겐조의 눈치를 살피면,

 

자기가 의도하는 글자에 왔을 때는 눈을 깜빡거립니다.

그 다음 글자도 또 처음부터 그대로 반복하여, 글자를 완성시킵니다.

 

이렇게 반응하여, 시(詩)를 쓰다 보니,

그의 시(詩)가 “아주 감동적인 시(詩)가 되었고,

그는 예수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잊기 전에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잊기 전에,  지금 보이는 것, 마음에 느끼는 것,

잊기 전에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주의 아름다운 은혜를 찬양하는 시를 만들자”고 생각합니다.

 

그는 “뭔가를 만들자“고 마음을 먹고,

자기 안에 있는 영적인 느낌을 표현해서 남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정을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의 생각과 동일 하니까,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에 대한 슬픔“을 슬픔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어요.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더 이상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나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잠잠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나는 울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과 아주 깊은 교제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아름다운 교제가 있었기에, 그게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하루라는 시에서

”오늘 하루도 발소리로 시작된다.

신문 배달부의 발소리 /  우유 배달부의 발소리,

오늘 하루도 성령을 부어주시는 주님의 발소리"

 

그렇게 내가 느끼고 있기에,

나는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겐조씨의 마음이 나와 같으니까,

“주님의 발소리가 천둥소리 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은

그냥 막연하게 느끼는 감정이 아닙니다.

 

▶제가 이 시를 읽으면서 정말로 놀라는 것은?

“제가 느끼는 감정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읽으면서 저의 감각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말씀이라는 시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말씀해 주세요.

단 한 마디 뿐이라도 좋습니다.

 

내 마음이 작아서, 많이 주셔도 넘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넘치면, 그 말씀이 아까우니까요.

 

매일 한 말씀이라도 좋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울었어요.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아주 훌륭한 전도자입니다.

 

그는 입이 없어도, 다리가 없어도

그는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한 전도자입니다.

 

우리 주위를 보면,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참 적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우리 삶에 감사가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물 한 잔, 빵 한 조각을 놓고도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우리의 삶을 더 많은 감사로 채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한 만큼,

우리 삶에 행복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모여서 축하할 수는 없지만,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나의 모습 속에서 그분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럴 때에 내 기쁨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기쁨을 누가 빼앗아 가겠습니까?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작년 성탄절에는 여러 가지 모임이 있었지만,

금년에는 주님만 생각하며, 혼자서 느끼시기 바랍니다.

 

혼자서 “주님을 만나는 성탄절”이 되신다면,

아주 특별한 아름다운 성탄절이 되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때,

2020년은 기독교 역사에서 ”놀라운 한 해였다”고 간증하게 될 것입니다.

 

겐조씨는 몸이 불편하고, 사람들이 보기에 불행해 보이지만,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그 감사가

“그에게 진정한 행복을 누리도록” 만든 것입니다.

 

빛이 되신 예수님이 오셨기에,

우리 스스로도 빛이 되어, 그분을 환영하는 것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내 안에 빛을 비추셨으니,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런 사랑을 느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