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마리아야 나오라. (요11:30~32) 2020.12.19

다이나마이트2 2020. 12. 19. 15:16

마리아야 나오라. (요11:30~32)  말씀: 김경진 목사님 (소망교회)

 

제가 알고 있는 분이 계시는데, 2019년 가을에 사무실을 얻고, 공장도 계약을 하여,

2020년에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코로나 19로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개월을 기다렸는데, 영업이 되지 않아 사업이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경험하는 주변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에 여러분 자신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2020년을 “지우고 싶은 한 해”라고 회상합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뭘 해 보지도 못하고, 망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죽어 있는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가 나옵니다.

 

여기에 숨겨있는 한 가지 얘기가 있는데,

그것은 마리아의 이상한 행동입니다.

 

오늘 말씀의 첫 구절을 보면, “베다니에 한 병자가 있는데,

그 이름은 나사로이고, 그리고 마르다와 마리아가 나옵니다.

 

나사로가 병이 들었는데, 예수님이 나사로를 사랑하므로,

빨리 베다니로 달려 와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6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계시던 곳에서, 이틀이나 더 머무르셨다“고 합니다.

그럴 리야 없지만, 혹시나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오지 않고,

”나사로가 죽을 때를 기다렸던 상황“으로 추정됩니다.

 

▶왜, 예수님은 빨리 오지 않았을까요?

성경에는 ”천천히 오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나사로가 죽고 맙니다.

 

그럴 때, 마르다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을 나갑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집에 남아서, 꼼작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마리아는 마중 나가지 않았을까요?

분명히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는데, 방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21절 말씀에는 “마르다가 말하기를 예수님이 일찍 오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원망 섞인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입니까?

①첫째로, 나사로가 죽어가던 시간에

”왜, 오지 않았느냐?“라는 원망이 포함된 말이고,

 

②둘째로, 주님의 능력을 원했는데, ”왜, 도와주지 않았느냐?“는

안타까움과 섭섭함을 피력한 말입니다.

 

오래된 얘기지만, 저희 교회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성도가 있었는데,

그는 백혈병에 걸려서, 병원에 있는데, 교인 전체가 그를 위해 전심으로 함께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에 철야기도까지 하다 보니, 병세가 점점 좋아지게 되어,

교인들은 신이 나서, 기도의 열기를 더해 갔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몸에 이상 반응이 나타나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교회가 시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의 원망과 원통함을 느끼고 있을 때,

바로 그때에 제가 바로 그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 사이에 하는 말이 저에게 들려옵니다.

”기도에 효과가 있는지가 의심 된다“는 말들이 들려오고,

그로 인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젊은 부부에게 어린 아기가 있었는데,

그 아기가 베란다를 넘어가서 떨어져서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역시 그 부부도 그때,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교인들 사이에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는 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나사로는 이미 죽었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예수님이 일찍 오시기만 했더라도, 그를 살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희망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사로가 죽은 원인을 예수님에게 돌리고,

예수님이 “꼭 필요한 때에 오지 않았다“는 원망입니다.

 

그래서 이 순간] 실망하고, 절망하는 순간입니다.

그러한 때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반응은 서로 다릅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생각을 해 봅시다

먼저, 마르다는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마중을 나갑니다.

 

(1) 첫째로, 마르다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나사로는 무덤에 들어갔지만, 거기서 모든 것이 끝나지 않고,

”그러나 주께서 바꿔 주실 것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르다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주님이 도우실 일이 있으면, ”이제라도, 해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그를 천국에 가게 해 달라”는 부탁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예수님은 23절 말씀에서,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네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11:23)

 

그러면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다시 살려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미래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현재에도 나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재에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27절 말씀에서, ”네 주여, 주는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가 믿나이다.“(요11:27)라고 대답합니다.

 

마르다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확실하게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베드로가 한 대답과 같은 말입니다.

이 대답은 비록 나사로는 죽었지만, ”마르다의 신앙고백“입니다.

 

(2) 두 번째로, 그런데 마리아의 태도는 확실히 다릅니다.

 

마리아는 이런 시련 앞에서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냥 방 안에서 갇혀서 꼼짝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원망과 실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의 오라비를 죽게 하셨으니, 나는 주님을 원망합니다.“

라는 생각으로, 마중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28-29절 말씀을 보면,

마르다는 자기 동생인 마리아를 불러, 가만히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여기 와 계시는데,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로 갔습니다.

 

이 장면에서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마리아를 ”예수님이 부르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리아야, 너는 그 절망의 방에서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음성“에 마리아는 즉시 반응합니다.

그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리아는 즉시 나갑니다.

 

30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아직 동네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다가 마중 나갔던 그곳에 계셨습니다.“(요11:30)

 

예수께서는 집에 도착하지 않았고, 동네 어귀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마을 어귀까지 나오기를 바라며 기다립니다.

 

예수님은 마르다를 만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왜, 그랬을까요?

마리아 보고, 방에서 나와서, ”여기까지 나오라”는 말입니다.

그 방은 “절망의 방“이니, 희망의 장소로 ”나오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신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주님은 실망하고 있는 마리아에게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신앙의 무덤“에서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들도 그런 상황에 계실 때에, 신앙의 무덤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마지막 구절을 보면,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님은 슬픔 속에 있는 마리아와 함께 슬퍼하며, 울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마리아와 같이, 슬프고 어려워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기를 원하던 부모가 있었는데, 시험관의 아기가 잘못되었을 때,

 

▶그런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오늘도 그런 분들에게, 주님은 ”절망의 방에서 나오라“고 부르십니다.

 

▶2020년에 코로나 19로 무엇을 가져 왔습니까?

그것은 절망이고, 슬픔입니다.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은 ”흔들리는 신앙“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에게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리아]와 같이, ”어둠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에는 두 가지 믿음이 있습니다.

① 한 가지는 ”인간적인 믿음“이고,

② 또 다른 믿음은 ”부활과 생명을 갖고 있는 믿음“입니다.


①첫 번째로 ”인간적인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인간의 합리성에 근거하여 믿는 믿음이고,

 

②두 번째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부활과 생명의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진실한 신앙입니다.

 

오늘은 마르다의 ”인간적인 믿음“을 예수님이 고쳐주십니다.

마르다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때부터 마르다의 믿음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진짜 믿음을 가르쳐 줍니다.

 

진짜 믿음은 ”부활과 생명이 그 안 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의 믿음도 변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계속 오기는 하지만,

믿음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실망하여, 원망하고 있는 분들에게

하나님이 ”나오라“고 하는 음성을 들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