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고난 속에 감추어진 은혜의 손길 (욘1:17~2:1) 2020.12.17

다이나마이트2 2020. 12. 17. 22:13

고난 속에 감추어진 은혜의 손길 (욘1:17~2:1)       말씀: 이인호 목사님(더 사랑교회)

 

요즘 언론에서 “교회를 비난하는 기사”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교회가 집단 감염의 통로이고, 시작이라“고,

아니면 교회의 다툼과 타락에 대하여 많은 댓글과 욕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치부를 감춰주지 않고, 그대로 들어내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 느끼며, 불편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평과 불만을 보면서, 요나가 당한 고난을 비교하면서,

오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다시스로 갔지만,

요나를 깨우치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로 살아나게 됩니다.

 

요나는 제비뽑기로 지목을 당하여 풍랑의 바다로 던져 질 때,

사람들은 “이제, 요나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때를 상상해 보면, 그 날의 지역 신문에는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바다에 던져졌다“고 보도했을 것입니다.

 

”선지자가 향락의 도시 다시스로 갔다”는 기사와 함께,

“어떻게 선지자가 그럴 수 있느냐?”는 등등

“그것은 응분의 대가”라고 신문에 도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19 보다도 더 무서워하는 것이 “사회적인 비난”입니다.

기독교를 “없어져야 할 종교”라느니,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욕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비난하는 것은 왜, 그럴까요?

그들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비난하는 것은 요나가 바다에 던져진 것만 인용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역사는 여기 까지가 아니고, 그 후에 나타납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다“는 것은 요나가 세속화 되고, 비대화 되었기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요나의 인생이 바다에 던져져서, “물고기 밥”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는 그때부터 시작하여,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집니다.

 

세상은 이렇게 끝나겠지만,

바다 밑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역사는 여기서 끝날 수 없습니까?

요나의 몸이 “바다에 던져졌다“는 것은

우리의 죄와 수치를 예수님이 짊어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여기서 절대로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요나의 사건을 통해서,

바다 밑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나를 먹어 삼킨 큰 물고기는 무엇입니까?

(1) 큰 물고기는 ”하나님이 보내신 구조선“입니다.

 

누군가 사람들은 ”물고가 삼켰다“는 것은 ”물고기 밥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나는 바다에서 죽은 것 같지만,

큰 물고기는 요나를 살리는 구조선으로, 삼키게 하는 도구이고,

큰 물고기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조선“입니다.

 

요나는 바다에서 익사한 것 같지만, 큰 물고기가 그를 살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물고기 뱃속이 너무나 어둡고 냄새가 심하여 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포기하지 않고, 거기서 인내하고, 버텨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참고, 기다려야, 살아 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역사“에 나오는 일들 생각해야 합니다.

①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모든 것이 전부 쓸려 나갔을 때,

노아의 방주가 도착하여 살리신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방주는 ”하나님이 보낸 구조선“입니다.

노아의 가족들은 그 방주 안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 방주가 중요한 것은 세상의 악을 모두 쓸어버릴 때,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미리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죄악의 세상에서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은 “죄의 유혹애서 살리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냥 살라”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곳으로 구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②또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았던 사건도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보디발의 유혹을 견디면서 감옥에 들어갔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큰 물고기는”거룩한 훈련선“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었다.”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캄캄하고, 냄새나는 위액을 맡으며, “버틴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 고통보다도,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죽음보다 못한 생존이었을 것입니다.

 

요나는 ”이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요나는 그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 봅니다.

 

물고기 배속에서 요나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에는 하나님 말씀은 없고, 요나의 외침만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최악의 상황일 때,

완전히 마지막으로 몰렸을 때, 하는 기도가 진짜 기도인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아납니다."

죽음은 부활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광야는 힘든 곳이지만, 무덤은 아닙니다.

폭풍은 우리를 깨닫고 연단시키기 위해, 고통을 주는 것이지,

우리를 파멸시키거나, 고문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바다에 던져 지는 것이 회개라고 한다면,

물고기 뱃속에 있는 시간은 ”항암 치료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어머니 뱃속의 어둠 속에서 탄생시키고,

땅 속에 있는 씨앗도 어두운 땅 속에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그 기간에 땅 속에서도 “생명의 싹”을 틔우는 것입니다.

 

그때, 죄의 습성과 죄의 뿌리를 “제거하는 기간”으로,

그런 과정을 겪은 다음에,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빗어내는 시간입니다.

 

다윗은 어려운 터널을 통과한 다음에, “자기의 율례를 확인했다”고 고백을 하듯이,

그 때의 시간은 “우리를 새롭게 빗는 연단의 과정”입니다.

 

이런 연단이 시간은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요셉이나, 다윗이 고난의 길을 걸을 때, 너무나 아슬아슬한 시간이지만,

“하나님의 손길은 아름답게 빗어서 다시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지금 끝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정금같이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참고, 기다리는 인내 입니다.

 

인내는 용광로 안에서 다시 녹여 내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참고 기다리면, 우리를 다시 부르실 것입니다.

 

(3) 셋째로, 큰 물고기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기도원”입니다.

 

2장 1절 말씀을 보면,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습니다.”(욘2:1)

 

배 밑에서 깊이 잠든 요나의 모습은 “기도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요나는 기도하지 않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인생은 “졸면서 운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름 운전은 길을 벗어나게 되고, 심하면 사고가 납니다.

그것은 방향감각이 없어져서, 큰 사고로 이어 집니다.

 

요나가 타고 있는 배는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는 배”입니다.

이것은 육체의 감각만을 찾는 좀비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요나가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물고기 뱃속은 기도원”입니다.

 

요나는 그 때부터 “살려 달라“고 울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부터, 영혼의 호흡이 시작되어서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님도 새벽 미명에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를 유혹에서 구하는 방법은 오로지 기도뿐입니다.

 

그렇게 요나가 기도할 때,

그분의 영혼과 교제를 나눌 때,

다시스에서 니느웨로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제가 조나단 에드웨드의 전기에서 ”기도 속에서 영혼의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이재훈 목사님이 “세 이레 동안 기도하자”고 제안하여,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번 [세 이레 기도회]에 동참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번에 참여하는 목사님들은 “나와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년 말이 얼마나 바쁜 때입니까? 그렇게 바쁜 때에,

교계의 여러 목사님들이 “한 주제로 설교한다.”는 것은

아주 의미가 있는 일이고, 아주 “놀라운 기획“입니다.

 

하나님은 두 개의 손을 가지고,

① 한 손으로는, 폭풍 속으로 던지시지만,

② 또 다른 손으로, 물고기를 통해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한손은 공의의 하나님 이시지만 다른 한 손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한손으로는 때리시지만 다른 한 손으로는 싸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공개적으로는 채찍질 하시는 것 같지만,

비밀스럽게는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입니다.

 

예수님이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깊은 바다 속에도 “하나님의 구조의 손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잠수함과 같은 구조선“입니다.

 

요나처럼 손가락질을 당하지만,

그래도 그런 요나가 기도하니, 그를 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언제까지 교회가 나라 욕만 할 것입니까?
정부가 잘못하면 대통령 욕을 하지 말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이 비난을 받을 때,

우리는 ”챙피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제 교회가 책임을 져야할 때"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상황을 탓하지 말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어려운 상황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핑계를 댈 때가 아닙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가 회개하고,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 국난 극복을 위해,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