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우리 안에 있는 헤롯 (마2:13~18) 2020.12.20

다이나마이트2 2020. 12. 20. 10:49

우리 안에 있는 헤롯 (마2:13~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은 성탄을 맞이하는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비대면 예배이지만, 성탄의 기쁨을 함께 누리시기 바랍니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카드에는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의 모습과

그 아기를 경배하는 목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축하 카드에 영아들이 살해당하는 모습이 그려진다면,

얼마나 사람들은 놀라겠습니까?

 

그러나 구약의 그 시대에, 이런 일들이 “실제로 있었던 팩트“입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성탄의 모습은 기쁨의 성탄이 아니고,

아기들을 죽이는 ”끔찍한 성탄의 모습“입니다.

 

동방박사에 의해,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헤롯은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칙령을 내립니다.

 

▶왜, 그런 명령을 내렸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두려워하여, 벌린 끔찍한 사건입니다.

 

역사를 보면, 타락한 권세욕으로,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기들의 부유함을 지키기 위해, 그런 끔찍한 살육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헤롯 왕은 그런 인물입니다.

마태복음 14장 말씀을 보면, 또 다른 헤롯이 나오는데, 그는 다른 인물입니다.

 

그는 로마 제국에 의해, 로마의 통치자로, 세워진 사람입니다.

그는 정치력이 탁월하여, 40여년을 통치하는데,

그가 세운 헤롯 성전이 “통곡의 벽” 옆에, 지금도 일부 남아 있습니다.

 

그 아주 교활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포악한 사람으로,

사람들은 “헤롯의 아들이 되기보다,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게 낫다”고 합니다.

 

소문으로 “유대 왕이 나셨으니, 예수의 별을 보고, 경배했다”고 하니,

헤롯왕도 어쩔 수 없이 두려워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래서 “두 살 이하의 아기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렇게 대 학살을 감행하는 이유가 뭡니까?

①첫째는 헤롯이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예수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대처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악에 속한 헤롯”이 그렇게 대적한 것입니다.

 

②둘째로 헤롯이 “예수님을 잘못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아닌데도,

헤롯은 의심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헤롯은 한편으로는 제대로 보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질까요?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헤롯의 모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안에 “헤롯과 같은 실체”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 헤롯이 오해했듯이, 성경의 의미를 오해하면, 안됩니다.

 

▶사람들에게 “왜, 예수를 믿지 않느냐?“라고 질문을 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빼앗길 까봐, 믿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사상 등,

그리고 지금까지 누리던 자유를 빼앗긴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빼앗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헤롯의 모습을 발견해, 없애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①예수님이 헤롯을 피하여 애굽으로 갔다가 돌아옵니다.

 

헤롯왕이 샅샅히 아기 예수를 찾고 있을 때, 그와 대항해서 싸우면 바보입니다.

이런 경우에 ”비가 오면, 슬며시 피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첫째, 비가 오면 피해야 하고,

②둘째,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적절히 나타납니다.

 

이렇게 적절히 피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마태복음 2장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래서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한 밤중에 이집트로 떠났습니다.”(마2:14)

 

여기서 한 단어를 보는데, 그것은 “한 밤중”입니다.

요셉이 한 밤중에 이집트로 떠나 갔어요.

 

예수님의 부모가 “한 밤중에” 이집트로 떠났다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헤롯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이런 헤롯의 모습을 보면서, 바로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모새가 바로의 위협을 받았지만, 갈대상자에 의해 살아났습니다.

 

▶왜, 북한에서 교회를 없앨까요?

그것은 자신의 권세가 무너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산권에서는 교회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헤롯이 예수를 죽일 수 없는 것과 같이,

언젠가는 북한에도 교회를 인정할 날이 올 것입니다.

 

(2)둘째로 영아들을 죽이는 것을 보면서 17~18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이로써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 이루어 졌습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녀를 잃고, 슬퍼하며 울고 있구나.

자녀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는구나.“(마2:17~18)

 

여기에 라헬이 등장합니다.

이 말씀은 라헬이 ”아들(베냐민)을 잃어 슬퍼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갈 때의 슬픔을 알고 있습니다.

그 때의 슬픔은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한 슬픔”과 연결하게 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어머니의 슬픔을 “헤롯의 학살”에 연결하여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큰 슬픔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이방 나라로 끌려가는 역사의 아픈 현실과

죽임을 당하는 슬픔이 “예수님이 오시는 가운데도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 에서도 그 ”어떤 권력”이나, 그 어떤 것일지라도,

“결코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에 막강한 로마 제국의 절대적인 권력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 있는 한 생명을 헤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폭군인 헤롯이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았습니다.

네로 황제도 죽었고, 스탈린도 죽었지만, 예수님을 제거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성탄은 비대면으로, 칸타타를 영상으로 보았지만,

다음 성탄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예배드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권세도 우리들의 에배를 방해 할 수 없듯이,

어떠한 재난에도 우리의 에배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헤롯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 안에 있는 그 헤롯을 과감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 ”영원한 생명“이 존재하게 만들고, 자라나게 해야 합니다.

고난의 때에, 어떤 고난과 슬픔도 우리를 억누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재난의 시대이므로, 살아계신 예수님의 임재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더욱 기뻐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