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돌봄의 축복 입양 (출2:1~1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는 그동안 ”생명 존중의 축복“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렸는데,
그동안 ① 낙태 ② 자살 ③ 저출산의 문제를 말씀드렸고,
오늘은 그 마지막 사간으로 입양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강단에서 말씀드리기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사회적인 어두운 문제,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는 문제들을 나누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서, ”그가 하나님에 속한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이 뭘까요?
그것은 그 사람이 하는 말 가운데,
생명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들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 무감각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권력욕에 빠져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모습은 출애굽기 1장에 나오는 죽음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에, 히브리인으로 태어나는 사내아이들은 “모조리 죽이라“고 하는 것은
대학살의 명령이고, 이것은 죽음의 영이 작동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소망이 생겼는데,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은밀하게 준비하십니다.
그들은 40년의 광야 생활하면서 애굽의 우상들에 물들어 가고 있었는데,
그런 기간이 40년이나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의 생명을 이어가도록 섭리하십니다.
① 하나님은 모세의 부모를 통하여 왕의 명령을 어기도록 하고,
② 그 부모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맡기고,
그 아기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 강의 강물에 띄웁니다.
③ 바로의 딸이 강가로 산책을 나왔다가 그 아이를 발견합니다.
모세의 외모가 잘 생겼으므로, 그 아기를 데려다가 입양을 합니다.
그러니까 모세를 구한 사람은 “죽이라”고 명령한 바로의 딸입니다.
그녀는 왕의 무남 독녀였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2장 6절 말씀을 읽어보면,
“바로의 딸이 상자를 열어보니, 울고 있는 한 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의 딸은 불쌍한 마음이 들어, ’히브리 사람의 아기인가보다‘고 말했습니다.”(출2:6)
▶여기에 “두 가지 장애가 나타났다“고 추측합니다.
① 하나는 바로의 딸이기에, 아버지의 명령을 어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몰래, 쉬쉬하며 얼마간 아버지 몰래 숨기고 지냈을 것입니다.
② 두 번째의 장애는 애굽의 공주로,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개인적인 부담감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에 ”타 민족에 대한 배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배타성이 강한 나라입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 약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로의 딸]은 이런 인종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것은 오직 6절 말씀에 나오는 “불쌍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명령이건, 인종적인 차이이건, 가리지 않고,
바로의 딸의 입장에서는 “불쌍한 마음”이 우선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사랑이고, 엄마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도 “이런 마음”이 들어, 병든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보시고,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런 불쌍히 여김을 히브리 원어에서 찾아보면,
몸 안의 창자를 말하는데, ”창자가 뒤틀어지는 고통“이라고 표현합니다.
바로의 딸에게 ”그런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딸은 하나님을 모르는 여인이지만,
이런 “불쌍한 마음이 있었기에” 아기 모세가 살아난 것입니다.
오늘 이시대의 우리들도 이런 마음이 회복되기 바랍니다.
우리도 고아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런 불쌍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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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그동안 낙태와, 자살의 문제와, 저출산의 문제들을 다뤘습니다.
강단에서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고아들을 돌보지 못하고,
“해외로 내 보낸다“는 것이 마음이 아픈 현실입니다.
2012년에 발간된 ”엄마로 불러도 되나요?“라는 책이 있는데,
저자인 케이티 데이비스는 대학을 앞두고, 우간다로 단기 선교를 떠납니다.
그녀는 일 년이 지났는데도 우간다에서 나오지 못하고,
거기서 머물면서 아이들을 입양하고, 돌보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인생 계획에는 그런 계획이 없었는데,
거기서 살다보니까 그런 불쌍한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진짜 엄마같이, 살기로 작정하고, 입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마음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그녀는 ”예수를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예수를 알게 되면서부터 ”나를 변화시켰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운영하는 CGN TV에서 다루었는데, 그 영상을 잠시 보겠습니다.
”나는 14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아이를 돌보는데, 병원비가 없어서 쩔쩔 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단지 병원비를 주려고 했지, 돌보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끼리 서로 보살피며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이 변하기 시작하였고,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길러줄 친척도 없으니,
하나님이 ”바로 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아이들은 돌보아 줄 친척들이 없으니, “네가 돌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고, ”그때 제 마음이 바꿨다”고 고백합니다.
그 때, 그녀가 말한 귀한 간증입니다.
한 여성을 통해, 많은 아이들이 그녀를 엄마로 만들어 주신 사건입니다.
바로의 딸도 마찬가지로, 한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는 역사는 언제나 “이런 새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 민족과 나라에 심판은 필요하지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더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온누리교회도 입양을 위한 모임이 있으니까,
제이 콥으로 연락하여, 서로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마음이 한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주님의 마음이니,
우리들도 그런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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