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참된 회개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느9:1~6, 32~38) 2020.11.08

다이나마이트2 2020. 11. 8. 19:32

참된 회개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느9:1~6, 32~38)  말씀: 이재훈 목사님

 

느헤미야의 지도를 받아 성벽공사를 마치고,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절기가 끝나자마자 백성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두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느헤미야가 지시한 [일]이 아니고,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싶어서, ”자진해서 모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가 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열심히 일을 했고,

또 말씀에 갈증을 느끼고, [영적인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사 에스라를 초청하여 말씀을 들었고,

말씀을 들으면서, [아멘, 아멘!]하고 소리를 지르며,

이마를 땅에 대고, 납작 업드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①첫째는, “성령님이 역사했다”는 증거이고,

②둘째는, 백성들에게 간절함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은 역사입니다.

 

그들은 낮 시간의 4분의 1 시간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고,

또 4분의 1 시간은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들의 [회개]는 시편 78편과 105편, 그리고 106편에도 나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돌아보는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런 백성들의 회개는 어느 순간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돌이켜 보며, 선조들의 잘못을 기억하면서 회개가 일어납니다.

 

우리들도 자난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회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회개]란 “나는 하나님을 버렸는데,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에 감격해서,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결심하고,

산 제물로 자신을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참된 회개]란 무엇입니까?

[참된 회개]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집 나간 아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받아준 것이니까, 우리의 [돌이킴] 보다,

[하나님의 용서]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가 계속 됩니다.

[출애굽]의 역사도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받으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좀 나아지면, 하나님을 떠나는 백성들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인간이 처음으로 죄를 지은 장소가 에덴동산입니다.

에덴동산만큼, 축복된 장소도 없는데, 그런 좋은 곳에서도 죄를 지었어요.

 

죄는 [광야]에서 지은 것이 아니라,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진 곳에서도 죄를 짓는 법입니다.

 

▶왜, 이렇게 타락했을까요?

그것은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축복을 주시는 것인데,

순종 없이도 축복이 주어졌으니까, 쉽게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순종]은 무엇입니까?

[순종]은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순종하는 만큼, 내 삶에 축복이 머무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께서 주신 축복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받아드리지 않고, 거역했습니다

 

(2) 둘째로, “그들은 반복해서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들은 반복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28-29절 말씀을 보더라도, 그들은 반복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평안을 누리게 되자 다시 범죄하였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그들을 버려, 원수들의 지배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다시 부르짖을 때 주는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셔서 여러 차례 구출해 내셨습니다.“(느9:28)

 

”주는 그들에게 순종하라고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교만하여 사람이 지키기만 하면 생명을 얻는 주의 법을 거절하고,

주의 명령에 불순종하며, 고집을 피우고,

주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느9:29)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부르짖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도와주면, 곧 바로 다시 죄를 지었습니다.

 

사탄은 이런 우리들의 약점을 잘 알고, 우리들을 괴롭힙니다.

우리들의 몸 안에 숨어 있는 [못된 습관]은 사탄에게 이용당합니다.

 

사람들은 [죄의 형벌]만 두려워하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회개]가 되려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죄의 형벌]만 사라지면,

곧바로 또다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잊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이런 싸이클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인간의 결심] 만으로, 끊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에게 들어가야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죄를 끊을까요?

①첫째로, 하나님은 공의롭게 심판하는 것으로, 죄를 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로, 깨달을 수 있도록 기다리십니다.

30절 말씀을 보면, ”주께서는 수년 동안 그들을 참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하나님은 [수년 동안]이 아니고,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 동안]을 기다리셨어요.

 

”천년을 하루 같이”, 기다리셨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2020년이나 기다리셨는데,

하나님이 참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②둘째로, 은혜의 역사 속에서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용서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힘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로마서 6장 1-2절의 말씀 같이,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으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합니까?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 살 수 있겠습니까?“(롬6:1~2)

 

[십자가]를 믿는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서 살겠습니까?

그래서 느헤미야 9장에서 길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물리적으로 성벽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너졌던 말씀을 세우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헌신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은 [의지와 결심] 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다시 시작하는 일”입니다.

 

지도자부터 백성들에 이르기 까지

[참된 회개]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