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앞에서 울고 웃다 (느8:1~1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저희 교회는 CGNTV를 통해서 [미디어 선교]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과연 이 일이 가능한가?“라고 의문을 가졌지만,
우리 성도님들의 후원으로 이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온누리교회가 ”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사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부흥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부흥]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납니까?
①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②눈물이 나는 [회개]가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③그 다음에, 기쁨으로 마음에 평정이 찾아와서
④온 몸에 충격이 일어나서 [갈망]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 [갈망]은 [참된 회개]로 이어져서, 우리 [영혼의 힘]이 됩니다.
바로 이런 [힘]이 느헤미야를 통해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배]의 중심에는
①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②눈물이 나는 [회개]와
③[기쁨]이 동시에 나타나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1)첫째로, 성령님이 그 말씀에 [불]을 붙여 주어야합니다.
(2)둘째로, 그 말씀에 성도들이 불 같이 [응답]해야 합니다.
[부흥]의 전조에는
그 말씀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인 느헤미야 8장 1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고 나서 일곱째 달이 됐고, 그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두 자기 마을에 있었습니다.
그때 모든 백성들이 물문 앞 광장에 일제히 모였습니다.
그러고는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습니다.“(느8:1)
▶그들이 [물문]앞 광장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어서, 곰곰이 생각을 했더니,
공사에 전념하여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동안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허전한 맘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학사 [에스라]를 초청해서, 말씀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스라가 “내가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말씀을 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때는 성벽공사가 완성되고, 인구조사가 다 끝난 때입니다.
여기서 [일곱째 달]이라는 것은 7월이 아니고,
”유월절을 기준으로 7째 달이라”는 말입니다.
그 날은 [대속일]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한해를 보내고 새로 시작하는 [신정]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날, “율법책을 가져와서 읽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새로운 마음을 다지기 위해,
그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했다“는 것은 결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강력한 이끌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뭘 발견하십니까?
그것은 “말씀에 대한 [목마름]과 [갈증]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동안 그들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52일간 성벽재건 공사에 열중했기 때문에,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싶었던 거예요.
8장 11-12절 말씀을 보면,
“그러자 레위 사람들도 온 백성들을 진정시키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조용히 하고, 슬퍼 마십시오.
그리하여 온 백성들이 가서 먹고 마시고 먹을 것을 나눠 주며,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들은 말씀을 이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느8:11~12)
▶이들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요?
여호와의 말씀을 그저 과학적인 지식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연 질서를 창조하신 [말씀의 능력]으로,
그 존재의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갈망]이 그들에게 있었기에,
그런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①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②자신이 귀를 기울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8장 3절 말씀을 읽어 보면, 그들은 광장에 모여,
이른 아침부터 정오까지 율법 책을 큰 소리로 낭독했고,
모든 백성들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려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나에게 불을 붙이니까, 그러 것입니다.
거기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순종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뭘 느꼈을까요?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왜,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까?
말씀에 따르기 어려우니까, 말씀대로 실천하기가 싫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거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어야 합니다.
이때에 학사 [에스라]를 준비합니다.
[에스라]는 느헤미야 이전에, 백성들을 이끌었던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율법에 정통한 학자이기 때문에, 그가 나섭니다.
에스라 7장 10절 말씀에는,
“에스라는 이전부터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지키며,
이스라엘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겠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스7:10)
[에스라]가 쓰임 받는 이유는 지식이 풍부하기도 하였지만,
그는 행하면서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에스라]가 강단에 서서, 말씀을 읽은 것은
그 당시에 마이크가 없었기 때문이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읽었습니다.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의 형태]도 이와 비슷합니다.
①먼저 마음을 합치기 위해 [찬양]을 드리고,
②책을 펼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③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외치고,
④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했다“ 것입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에게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는 것은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에게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께 경배할 때,
그 말씀이 나에게 생생하게 들려오는 법입니다.
▶[율법]에 설명이 필요한 것은 왜, 그럴까요?
포로로 귀환했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히브리어]로 쓰여 있지만,
그 당시는 [아람어]를 사용했기에, 설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예배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예배에도 그런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부흥의 절정]은 그 말씀 앞에 회개하고,
그 말씀을 깨달으면서 아멘으로 화답하며 바로 서야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들이 말씀을 들을 때,
”내가 하나님과 거리가 있었구나?”라고 깨닫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10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느헤미야가 말했습니다. 가서 좋은 음식과 단 것을 마시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라.
이날은 우리 주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 힘이다.”(느8:10)
▶오늘 말씀에서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회개를 중단하라“는 말이 아니고, 슬픔에 젖어 있지 말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영혼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①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②그 말씀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③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말씀대로 실천하고
④마지막으로 사회가 변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백성들이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대로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진정한 예배]는 말씀을 듣다가
①먼저 눈물이 나오고, 말씀에 울고 울다가 지치면, 회개가 되고,
②그 다음 단계는 기쁨의 감동이 오고
③마지막 단계가 되면, 춤을 추는 거예요.
13-14절 말씀을 보면, “그 이튿날,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모여,
율법의 말씀을 들으려고 학사 에스라를 둘러쌌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곱째 달 절기 동안에 초막에서 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느8:13~14)
그 이튿날, 지도자들이 따로 모였습니다.
▶왜, 모였을까요?
“초막절에 이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부흥의 역사]는 실천하는 일입니다.
예전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자신이 순종하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부흥하기 위해, 우선 [말씀의 갈증]을 느껴야 합니다.
“성벽을 쌓았다“고 부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박물관이 되지요.
[진정한 부흥]은 우리 마음속에 [말씀]이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 안에서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 옵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들은 [초막]을 짓고, 불편을 감수하고,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말씀대로 실천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절기]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왜, 그럴까요?
개인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의 변화를 가져 오기 때문입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으로 사회를 개혁한 것은
교회만 성장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 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 8장에서 나타나는 [부흥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그것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들도 진심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말씀대로 실천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런, 참된 [영적부흥]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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