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 서로를 돌아보아야 할 때 (느5:1~13) 말씀: 이재훈 목사님
밤낮으로 성벽 재건에 매달리던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탄식과 원망 소리를 듣고, 갑자기 공사를 중단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느헤미야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공사를 중단합니다.
그것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백성들의 원망과 탄식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벽 재건]을 거부하는 소리가 아니라,
“가난으로 인한 백성들의 [탄식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그 때, 공사를 강행하는 것보다도,
“공사를 멈추고, 서로를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이라는 목표가 있었지만,
백성들의 [탄식 소리]가 있다면, “멈추어서 살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지상명령]도 중요하지만,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기본적인 계명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성벽재건]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멈추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공동체가 먼저 세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가난의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가난을 무시하고, 사람들로 인해 가난이 나타날 때,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자연적인 원인]으로 기근이 나타나거나, [사회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을
율법에서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것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느헤미야는 무슨 소리를 들었습니까?
① 어떤 사람은 자녀가 많아서 먹고 살기 위해, 곡식을 구해 와야 하고,
② 흉년이니까 밭이나 포도원을 저당 잡히고, 곡식을 얻어야 하고,
③ 우리 자녀들을 종으로 팔아야 할 처지이고,
④ 이미 밭과 포도원이 남이 것이 되었으니,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올 힘이 없다”는 원망과 불평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탄식의 소리]를 듣고, 몹시 분노했습니다.
이런 [가난]이 사회적인 원인이기에 느헤미야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느헤미야는 [화]가 났어요.
그 마음속에 [거룩한 분노]가 터졌습니다..
▶[분노]란 무엇입니까?
[분노]는 우리 영혼에 있어, “저항하는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한 원리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 [뿌리]는 “사랑과 정의”에서 시작됩니다.
▶[분노]에도 2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①하나는, [하나님의 분노]이고,
②또 다른 한 가지는, [사람의 분노]입니다.
[정의]도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정의가 있고,
[또 다른 정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정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를 보고 화를 낸 것은 [거룩한 분노]이고,
하나님이 오죽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했겠습니까?
▶그 결과가 [거룩한 분노]로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에서 출발하여, [공의와 정의]로 열매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7절 말씀에서,
“내가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귀족들과 관리들을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자기 형제들에게 폭리를 취하고 있소,’라고 말하며,
그들을 책망하기 위해, 큰 집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느헤미야가 "곰곰히 생각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기도해 보니, 이것은 유다 백성들의 잘못이 아니고,
어느 사회나 귀족들과 관리들이 있는데, ”그들이 백성들을 착취했다”는 것 입니다.
귀족들과 관리들이 직책을 이용하여, 폭리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 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고 준비한 얘기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분석한 것 입니다.
느헤미야의 책망은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얘기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그 당시의 사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너무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인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주신 [창조 질서]의 정신을
사회에서는 ”그 [창조 정신]을 그대로 담아내야, 건전한 사회가 되는 것 입니다.
그것이 [율법]인데, 그 율법을 그대로 적용하고, 반영해야 합니다.
여기서 몇 가지 [율법]에 나타난 것들을 몇 가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① 계파 별로, 가문 별로, 토지를 분배되어야 합니다.
그 동안 주변 국가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가난한 원주민에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② 또한 토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토지를 분배해 주는 원칙이 있습니다.
신명기 율법의 [핵심]은 신명기 15장 1절 말씀에 나오는
“매 7년마다 너희는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 ”(신15:1)는
원칙에 의해, [희년]을 지켰습니다.
[희년]은 7년씩 7번 되는 해(7*7=49년)의 그 다음해인, 50년이 되는 해를 말하고,
이것은 사랑으로 궁핍한 백성들을 보호하려는 정책입니다.
③ 히브리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기위한 계명으로, 신명기 15장 12절의 말씀 같이,
“만약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동료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렸다면,
너는 그가 6년 동안 섬기게 하고는 7년째 되는 해에는 놓아주어야 한다”(신15:12)
고 율법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종]의 신분에서 ---> [자유]를 주어야 하고,
그들에게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넉넉히 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④ 또 각 지파에게 분배된 토지는 영구히 팔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레위기 25장 23절 말씀을 보면, ”땅은 아주 팔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그 이유는 ”이는 그 땅이 내 것이며,
너희는 나와 함께한 나그네로 임시 거주자들이기 때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⑤ 35절 말씀에는, “네 형제가 가난해져서 네 가운데서 먹고 살기가 어렵다면,
너는 그를 먹여 살려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⑥ 36절 말씀에는, “그에게 어떤 종류의 이자도 받지 말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오늘은 5가지만 살펴 보았지만,
느헤미야가 분노한 것은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무시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고,
다시 귀화한 후에도 그대로 살고 있으니까, 느헤미야가 분노한 것입니다.
이런 사회는 [악한 모습]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들을 집단으로 학살한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전범으로,
“그는 극악 무도한 인물이 아니었다“고 진술합니다.
그는 전혀 죄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더 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법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고,
”법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윤리]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법]이 아무리 무섭더라도, 사회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을 강조하며,
[사회적인 윤리]를 더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요?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느헤미야는 큰 집회를 열어서,
[가난의 굴레] 속에서도 [사회적인 윤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느헤미야의 권면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희년]에는 어떻게 품을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창조자의 피조물”이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폭리]를 취하지 말고, [악순환]에 빠지지 않게,
”이주민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품으라.”는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 온누리교회는 [안산의 M센타]를 통해서,
이런 시대적인 소명인 이주민이나, 탈북자들을 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1891년 유럽의 산업혁명 이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사회주의자들은 사회를 혁명적인 구조로 몰고 갔습니다.
이때에 교회는 “가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이런 때에 [아브라함 카이퍼]가 나타나, 정통 칼뱅파의 집단인 [반 혁명당]을 창당하고,
집권당과 맞서서 싸우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거나, 하나님께서 주신 치유책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사람은
자살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으며,
“우리의 신앙적 삶을 좌우하는 가장 심오한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어떻게 교제하느냐?’ 라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영혼 구원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심각한 잘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국가의 존재와 사회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확고한 뜻을 전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모든 영역을 분명하게 규정짓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 방식을 지키는 당”을 만들고, 그 결과로 네델란드의 수상이 되었고,
그 작은 땅에서 유럽의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사회 곳곳에서 울부짖음이 들려오는데 대하여,
”자신이 나서지 못하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말하며,
프랑스 혁명의 방법으로 하지 않고, 그 반대로 정책을 구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인본주의]로 바꾸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①물질을 우상화 하고, ②사회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나폴레옹의 혁명적인 주장에, 반대 개념으로 정책을 구상했습니다.
그는 혁명적인 방법이 아니고, [사람 중심]으로 바꾸고,
[반 혁명당]이라고 이름을 지어, [청지기 사상]을 고수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어떤 사상입니까?
그는 [가난의 문제]는 [삶의 영역]의 주인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으니,
“하나님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어려운 사람이나,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사랑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회의 중심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회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수상이 되고, 의회나 학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스며 나오도록 노력했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면서 12-13절 말씀과 같이, 그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백성들에게 되돌려 주고, 아무 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저는 말씀하신 대로 준행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제사장을 불렀고, 귀족과 관리들로 하여금 약속대로 하겠다고 맹세를 시켰습니다.
나는 또 내 주머니를 털어 보이면서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그 집과 재산을 털어 버리실 것이오.“
이 말에 회중이 [아멘]이라고 호응하고,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느5:12~13)
이것이 느헤미야의 [설교 내용]입니다.
그랬더니 백성들이 [아멘]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느헤미야가 생각하는 ”가난을 끊어 내는 방법“입니다.
지금도 프랑스 혁명은 국가 사회주의 이지만, 느헤미야는 그런 방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물론, [성벽 재건공사]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도 백성들의 원망과 탄식을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 저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아주 평범한 말씀이지만,
그 말씀대로 우리가 실행할 때,
백성들의 [탄식 소리]는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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