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일을 시작하려면 (느2:11~20) 말씀; 이재훈 목사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위기]를 느끼지만,
[느헤미야]는 그것을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성벽을 재건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계속 반복되는 단어는 [일]입니다.
그것도 [선한 일]입니다.
[일]이라는 단어는 누구엔가는 상처가 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도 “일하게” 하셨고,
[일]을 하므로, “일로 인한 아픔”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는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①첫째 부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람들이고,
②둘째 부류는, 복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③셋째 부류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세 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선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왜, 성벽 재건하는 일이 [선한 일]입니까?
①첫째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로 일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라는 것은
“악과 싸우는 손길”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하려는 [선한 일]은 그 시대에 악과 싸우는 일이고,
그 [선한 일]을 느헤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②두 번째로, 그런 동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면, 쉽게 무너집니다.
③세 번째로, [하나님의 일]에는 언제나 반전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선한 일]은 “자발적인 희생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교회에서 봉사하는 헌신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기쁨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이끄십니다.
그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곁에서, 본인이 해야 하는 일만 하고,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그는 자발적으로 힘겨운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④넷째로, 이렇게 [선한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이루어 줄 것이다“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2장 20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일을 꼭 이루어 주실 것이다.
성벽 재건은 주의 종인 우리의 할 일이다.
너희는 아무 것도 주장할 권리도 없고, 역사적인 명분도 없다.“(느2:20)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설명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①이 [일]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이고,
②이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라는 것과,
③하나님이 이 [일]에 “확신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선한 일]들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창조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일]들을 행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엡2:10)
▶느헤미야는 [선한 일]을 위해 무슨 일을 했나요?
①제일 먼저 [자신]이 4개월 동안 기도를 했고,
②첫 번째 관문은,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③두 번째 관문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재건의 역사는 “패배의 역사“입니다.
성벽재건은 1차, 2차의 귀환 때 시도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외부의 방해 세력 때문만이 아니고,
백성들의 이기심이 작용했고, 그들의 무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굳어졌기 때문에,
”자기들의 삶에 안정하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지금까지 ”술 따르는 관원”이었지만,
이제부터는 [행정가]가 되어야 하고, [건축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서 담을 쌓아도, 정밀한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나라의 성벽을 쌓는 일은 더욱 전문가 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에 [3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신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입니다.
호론 사람 [신발랏]은 바벨론의 이름이고, 정치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페르시아로 바뀌었는데, 간신 같아서 반대하는 것입니다.
[도비야]는 암몬 사람이지만, 그도 역시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유대 지도자들과 이권을 챙기려고 했고, 내부에서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게셈]도 아라비아인인데, 반대하는 쪽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 3인의 공통점은 개인적인 이익과 정치적인 이득을 보려고 합니다.
이제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므로,
방해하는 세력들을 설득해서, [선한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은 느헤미야가 “어떻게 일을 이루는가?“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11-12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나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3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중 밤에, 몇 사람을 데리고 순찰을 나갔습니다.
나는 내 하나님께서 내 마을에 예루살렘을 위해,
할 일을 정해 두신 것을 아무 에게도 말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내가 타고 있던 말 외에는 탈 것도 없었습니다.“(느2:11~12)
여기에서 두 개의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는 ”밤에”라는 단어이고, 또 하나는 “혼자”라는 단어입니다.
느헤미야는 “밤에” 정찰을 나갔습니다.
[밤]은 정찰이 적당한 시간이 아니지요. 그러나 밤에 나간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혼자 온 게 아니고, 군대 장교들과 기마병이 함께 왔기 때문에,
낮에 움직이면, 소문에 휩쓸릴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대적자들이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소 인원으로 밤에 움직였어요.
그것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새벽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2) 둘째로, 그들은 아무에게도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움직입니다.
느헤미야는 다른 사람과 상의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침묵했어요.
그것은 소문이 나는 것을 피하고, 하나님 앞에서 비전을 분명히 했기 때문입니다.
13-15절 말씀에, “여러 지명들이 나오는데, 지금은 어디인지 없지만,
살펴보니 성벽은 무너졌고, 성문은 불에 탄 채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도전하도록 결심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강요하지도 않았고, 기쁘게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했습니다.
17-18절 말씀에서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고난은 여러분이 보는 바와 같소. 예루살렘은 폐허가 됐고, 그 성문들은 불에 타 버렸소.
자, 이제 우리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오.
나는 또 한 내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내 게 있는 것과 왕이 내게 말한 것을 그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재건을 시작합시다. 이렇게 해 그들은 이 선한 일을 시작했습니다.“(느2:17~18)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3가지 사항을 말했습니다.
(1) 첫째는, [지체 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17절에서, 3번이나 사용했듯이,
”우리“라는 의식을 가질 때, [공동체 의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 교회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라고 인식을 해야 해결됩니다.
2차 대전에서 처칠 수상이 영국 국민들에게 연설을 할 때,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의 수고는 땀 밖에 없습니다. 어떤 두려움이 있어도 우리는 싸워야 하고,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처칠의 말 속에는 [지체 의식‘을 불러 일으켰고,
영국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고, 승리하게 된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고위 관리가,
편을 갈라서 어떤 정치적 목적을 챙기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2) 두 번째는 [정체성]입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은 [일]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실히 알고, 예루살렘을 재건해야 합니다.
[정체성]을 갖고, 예루살렘을 재건하려는 [역사의식]이 중요합니다.
과거에 바벨론 강가에서 부른 노래의 의미를 깨닫고, 예루살렘을 노래해야 합니다.
[정체성]을 확실히 알아야, [일]에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는, 하나님을 의식해야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필요한 물자도 공급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백성들의 마음속에 넣어 주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가 체험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하자“고 제안했을 때,
백성들이 함께 동조하고, 그 때부터 [선한 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이 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으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백성들에게 넣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일]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라고 강조했고,
밤에, 새벽 나팔이 불기 전에 움직였고, “새벽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접근했나요?
느헤미야는 [담대한 마음]으로 접근했고, [선한 일]이기 때문에 성공했어요.
자기 자신이 헌신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성벽을 재건하여 얻는 것이 무엇일까요?
①첫째,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자주적인 나라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②둘째, 정치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외적으로 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이고,
③셋째, 성벽 재건에 참여시켜 민족의 동질성과 자주의식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④넷째, 영적인 이유로 선민 이스라엘의 거룩한 성을 회복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자기 생각만으로 그런 일을 했을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페르시아 왕궁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고생한 [느헤미야]는
하늘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이 한국 교회 안에도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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