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종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느1:1~1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지금 각자의 위치에서 영상으로 참여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가 충만하고,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이겨 나가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전체 예배를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오니,
평소의 습관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편리한 시간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금주부터 [느헤미야]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느헤미야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멘토링을 해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포로기 이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포로 귀환]이 3차에 걸쳐서 귀환하는데,
1차 [포로 귀환]은 [스룹바벨]에 의하고, 2차 귀환은 [에스라]에 의해서 귀환되고,
그 다음 3차 귀환은 [느헤미야]에 의해 귀환하게 됩니다.
이 책은 [자서전]의 형식으로 쓰여 졌으며, 1장부터 7장까지는 [1인칭]으로 기록되어 있고,
8장 이후는 [3인칭]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라는 말은 “하나님의 위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백성들을 어떻게 위로하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고, 아닥사스다 왕의 술 따르는 관원입니다.
[술 따르는 관원]은 왕의 마음에 들어서, 임금님과 말동무가 되는 사람 중에서 선정하니까,
왕에게는 아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왕과 제일 친한 사람을 두 사람을 지적하라고 하면, “부인과 술 관원“입니다.
이것은 왕의 신임을 얻지 않으면, ”차지할 수 없는 위치“라는 뜻입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마치 [에스라]가 수상 궁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입니다.
[느헤미야]는 포로로 잡혀오지 않고, 그곳에 남아서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은 큰 고난과 수모를 당하고 있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그 성문은 불에 타서 잔해가 남아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성전이 재건되지 못하고 방치된 상태이고, 성벽은 무너져 있고,
사람들은 무관심한 상태이고, ”외부의 침략이 예상되는 상태”라는
보고를 전해 듣고, 가슴을 쓰러 냅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데, (이웃 나라의 관원이니까)
그래도 그는 안락한 상황보다도, 예루살렘에게 더 큰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아니고,
자기 나라와 동족에게 더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우리만 “안전하면 된다“는 사고가 아니고, [나]보다도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페르시아의 술 관원인데도, [동족]을 마음에 품은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
탈북민이나 노숙자등 어려운 분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짓는 [죄] 중에서, [무관심]은 아주 [나쁜 죄]입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관심이 없다면, ”큰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요?
①첫째로, 그는 많은 조상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고,
②두 번째로, 그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전에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듣고 그냥 넘기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긍휼함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니까 시대의 아픔에 관심을 갖고, [무관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수치]는 곧바로 [우리들의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을 듣고, [느헤미야]의 반응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였습니다.
토론이나, 논쟁이 아니고, 기도를 합니다.
비판이나, 정쟁이 아니고,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를 읽으며, 그가 ”얼마나 위대한가?“가 아니고,
그가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배워야 합니다.
그의 [기도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1) 첫째로, 그는 ”가슴을 찢었습니다.“
그가 ”가슴을 찢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어려움을 들으면서 ”공감했다”는 말입니다.
그가 상황이나 판단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기도가 부족했다”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나라의 어려운 현실을 들으면,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무지함]과 [무관심]에 회개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에 [설교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느헤미야]와 같은 [눈물]이 없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눈물은 언제 나옵니까? [눈물과 통곡]은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생각을 하고, 묵상을 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질 때,
가슴 찢어지는 [애통함]을 가진 사람만이 눈물이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느헤미야는 몇 날, 며칠 동안 슬픔에 잠겨,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했으니까, 그런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를 판단하고, 규명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 일”보다도 [통곡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이렇게 메마른 감정을 가진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문제에 얽매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극장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잠깐 우는 정도에 그치지만,
[느헤미야]는 이런 [눈물]을 알았기에, “마음을 찢은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왜, 통곡했을까요?
[느헤미야]는 1차 귀환 시, 성전을 재건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반대 세력들이 많아서,
결국은 성전 건축을 중단하게 됩니다.
이방인들이 수없이 침공하고, 성전의 기물들을 약탈을 하여,
성전은 피폐한 지가, 벌써 140년 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는데,
성전은 무너진 채, 그대로 방치되었기 때문에 통곡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는 [느헤미야]의 마음은 어떨까요?
①조국에 대한 간절한 생각과,
②성전 훼파에 대한 북받치는 감정 때문에, 통곡을 한 것입니다.
(2) 둘째로, 그는 [조상의 죄]를 회고하며, [자기의 죄]를 반성했습니다.
6-7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밤낮으로 부르짖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소서.
[저와 제 조상들]이 주님을 거역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우리]는 주 앞에서 악을 행하고, 주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으며,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과 규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느1:6~7)
▶여기서 그의 기도에 놀라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 기도 속에는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나와 조상들”을 말하고,
[우리]는 조상들의 잘못에, “자신을 포함해서”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신사참배]를 했지만, [자신이 포함된 것]은 말하지 않고,
“나는 반성하지 않고, 그냥 침묵하고, 오로지 말로만 [친일 청산]을 주장합니다.
[친일 청산]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의 회개”가 더욱 더 중요합니다.
그때, 자신의 잘못을 먼저 시인하고, 자기를 반성하고, 그 다음에 남을 탓해야 합니다.
[인간의 본능]은 [자기의 죄]는 말하지 않고, [남의 죄]만 지적합니다.
그 당시에, 우리 모두가 그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동참했고,
우리 모두가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3) 셋째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8-9절의 말씀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너희가 만일 죄를 지으면, 내가 너희를 각처로 흩어 버릴 것이다.
만약에 너희가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키면, 포로로 잡혀갔을지라도
거기서 불러 모아, 내 이름을 위해, 선택해 놓은 곳으로 데려올 것이다.
여호와의 이 말씀을 기억하소서.“(느1:8~9)
느헤미야의 기도 내용은 놀랍습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기도입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자라나서 [페르시아]의 관료로 지내지만,
그런 의식이 아니고, 전반적인 정세를 감안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그 내용을 다시 읽어 보면,
①우리 조상과 나는 주의 계명을 지키지 못했지만,(우선 죄를 회개하고)
②내게로 돌아와 계명에 순종하면, 포로일지라도 불러 모을 것이고,
②순종하지 않으면, ”모두 흩어 버릴 것이다”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는 조상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현재의 상황에 맞추어 “명확하게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놀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세월이 수 없이 흘렀는데도, “성경이 없었던 그 시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기도했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신앙]입니다.
②[신앙 회복]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찾았다”는 것이고,
③막연한 기대가 아니고, “언약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 ”회복의 약속“이 [새 언약]입니다.
죄가 있을지라도, ”흰 눈과 같이 깨끗해 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느헤미야]는 “모세에게 준 약속”을 기억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약속”을 기억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헬무트 틸리케]라는 학자가 말하기를,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확실한 기둥은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언제나 신실하시며 늘 의지 할 수 있는, [하나님]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요즘에, 예배당에 나오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멀지 않아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제는 끝났다“고 비관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예전보다도 더 축복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회복의 역사]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이어서 [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일 것]“을 기원합니다.
당시에 그는 [술 따르는 관헌]이지만, 역시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귀를 기울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니까,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일이 있기에, “더 자발적으로 헌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일]이 어떤 일인가요?
[기도하는 일]은 나를 통해서 “선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야 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십시오.
▶[느헤미야]와 [우리]의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창조주이신 것을 믿고 있지만,
우리들은 “그런 믿음이 약하다“는 것이 다르지요.
기도하다 보면, 어떤 문제에 대해서, “그것은 네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모든 상황과 형편을 고려하여, [느헤미야]와 같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있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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