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 프로젝트[10] 자유의 복음을 선포하다 (눅4:14~22) 말씀: 이재훈 목사님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우리는 예전과 같이 전 교인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과 환경]을 탓할게 아니라,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전과 같이 모이지 못하지만, 지금에 알맞은 예배의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토요 예배]의 신설이고, [주중 예배]로 분산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자녀들이 교회에 나오지 못하므로, [가스펠 프로젝트]를 통하여,
가정에서 부모가 교사가 되어, [가정 예배]를 드리는 방식을 찾아내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으로 8월 17일 부터 일 주일동안에 ”다윗 시대는 어떻게 했나?”를 묵상하는 [다윗의 장막]이라는 주제로 새벽기도회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 기간을 [여름 수련회]로 생각하시고, 모두 함께 온라인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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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첫째는, 그 때의 [상황]이고, ②둘째는, [소명]입니다.
①첫째로, 의미 없이 사는 인생은 “상황에 따라 사는 삶”이고,
②둘째로, “자신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사는 사람은 “소명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소명을 깨닫고, 집중하며 사는 사람은 상황을 이끌고 가는 사람입니다.
▶[온도계]와 [온도 조절기]의 차이를 아십니까?
[온도계]는 지금의 온도가 “몇 도인가?”를 가르쳐 주지만,
[온도조절기]는 지금의 온도를 상황에 따라 바꾸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온도 조절기]와 같은 인생은 상황을 조절하며
상황을 이끌고 가는 사람이고, 승리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이었습니다.
오늘에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걸어 다녔기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고, 반경 50키로 이내에서만 지냈습니다.
그리고 소수의 제자들과 그 주변을 좁게 다녔고, 33세로 짧은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다 이루신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나사렛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베들레헴은 젊은이에게는 희망이 없는 작은 마을입니다.
베들레헴은 동물을 길러서 도시에 공급하는 마을이기에, 나사렛으로 이주했습니다.
[예수님]은 늘 하던 대로, 이사야 말씀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전에 하던 대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책을 쓴 저자가 학생이 되어 가르치는 겸손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 자주 가셨고, 그곳에서 성경을 읽고, 사람들과 교제했습니다.
▶[회당]은 어떤 곳입니까?
바벨론 전쟁으로 무너져서 [성전]이 없어졌으니까, 그 대신에 생긴 곳이 [회당]입니다.
[회당]은 요즘 [예배당] 보다 훨씬 더 자유스러운 곳으로, 자유롭게 토론하던 장소입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기 전에, 기존 질서 속에서 늘 참여했고,
“그 회당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절 말씀에는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으시고, 두루마리를 펼쳐 이렇게 기록된 곳을 찾아 읽으셨습니다.“(눅4:17)
여기서 [두루마리]는 요즘같이 잘 제본된 성경책이 아니고,
둥그런 [두루마리]로 말려진 종이를 펼쳐서 읽어야 했던 시절입니다.
예수님은 어릴 적부터 자주 읽어서 아주 익숙하게 그곳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그 당시에 성경을 읽는 사람은 먼저 제사장이고, 그 다음은 레위인이 읽었는데,
”성령의 능력이 충만한 예수님이 읽었다”는 것은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구약 말씀이 “예수님과 어떤 연관이 되는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읽은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으로 깊은 뜻이 담겨진 말씀입니다.
이사야서에 ”메시아가 어떤 모습으로 오셨는지?“를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메시아가 오면, 강대국 로마의 승리가 아니고, ”죄로 부터의 해방이다“라는 메시지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61장 1절 말씀의 내용을 읽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심이라.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히고
얽메인 자에게 석방을 선언하며***(사61:1)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 임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요지는 ”구약의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기름을 부어, 선택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메시아로써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무슨 말입니까?
“기름을 부었다”는 말은 여호와의 신이 감동하여, 하나님의 일을 “섬기는 종”이라는 뜻으로,
“섬기는 사람”을 뜻합니다.
[메시아]라는 단어는 성경에 자주 나온 단어는 아닙니다.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다"라는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기름 부으심]은 누구에게 임합니까?
그것은 소명에 헌신 하는 자에게 기름 부으심이 임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데,
그 메시아의 첫 번째의 소명은 “가난한 자에 대한 소명”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가난한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가난]이라는 것은 재물을 말하는 [가난]이 아니고,
[영적으로 가난한 자]를 말하는 것이며, 그런 사람은 자신 안에 기뻐하는 선함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가난하다”는 것이고, “구원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이런 사람에게 들려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어려운 재난 가운데서 [복음]이 들려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포로가 되어 있는 사람이고, 눈 먼 사람에게 볼 수 있게 하시고,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을 보고, 자신의 더러움을 느끼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고기를 많이 잡고서도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은
베드로가 ”자신이 죄인 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부유해 지는 사람은 천국에서 멀어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은 바리새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간구하는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주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눈 먼 사람에게 볼 수 있게 하고,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 시키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주께서 나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소식(=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내셨다.
그가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 먼 사람들에게 다시 보게 하시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눅4:18)
여기서 말하는 [자유]와 [해방]은 같은 단어 같지만,
여기서는 포로 된 자와 못 보는 자와 억눌린 자를 모두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무엇입니까?
자기의 상황을 보지 못하고, 억압된 상태에 있는 자에게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복음]은 ”자유를 위한 복음“입니다.
여기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누가복음에서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①첫째는, ”죄를 용서한다“고 사용되었고,(= 자유케 하여 용서하다)
②둘째는, ”빚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탕감의 의미)
이것은 [자유와 용서]는 동시에 서로 상통하기에,
빚(채무)에 노예가 된 자를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희년]은 무슨 말입니까?
구약에 나오는 [희년]은 “자유를 선포케 하는 제도”입니다.
레위기 25장 10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너희는 50년이 되는 해를 거룩하게 하고, 온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그것이 너희를 위한 희년이다. 너희 각 사람은 각자의 소유지로 돌아가고,
너희 각 사람은 각자의 동족에게로 돌아가라.(레25:10)
50년이 되는 해, [7*7=49](안식년이 7해 이고), 그 다음 해가 [희년]이니까,
“그 때는 자유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 [희년]에는 3가지 자유가 선포됩니다.
① 첫째, 묶여 있던 노예가 해방되고,
② 둘째, 모든 부채(빚)에서 탕감 받는 자유를 얻고,
③ 셋째, ”죄의 종“ 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율법이 그대로 지켜졌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보니,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 [원리]는 이해하지만, “그대로 지켜진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희년]에 ”우리를 자유하게 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에게 자유를 주고, 눈 먼 사람에게 볼 수 있게 하고,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 시키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 된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회복 시켜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우리를 자유케 해 주는 일입니다.
[마틴 루터]가 자유를 부르짖은 것도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정치에서도 [자유 민주주의]라는 구호가 먼저 나오는 법입니다.
▶[자유]란 무엇입니까?
①첫째로,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를 말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면, 자유가 아니고, 방종이 됩니다.)
②둘째로, 자유는 “해야 하는 것을 하는 자유”입니다.
이와 같이 ① + ②가 [진정한 자유]입니다.
그러니까 ①하고 싶은 것은 하는 자유와 ②해야 하는 것을 하는 자유를 포함해야 [진정한 자유]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①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만 하면, [방종]이 되고,
②해야 하는 것을 하는 자유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내가 원치 않는 것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된 목적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물고기는 반드시 물에 살아야 하는 것이고,
공중에 새는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사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또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아야,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 여기서 [자유]는 무슨 자유입니까?
그것은 ”능력으로 느끼게 하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삶 속에서 누리고, 예수님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그런 [자유 함]이 있습니다.
▶ 어떤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까?
내가 무언가 할 때, 내가 그 무엇을 그만 두고 싶을 때,
그만 둘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그런 것을 멈출 수 없다면, 나는 [자유 함]이 없는 것이고,
그것에 매여 있으면,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요한복음 8장 34절 말씀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요8:3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창조질서를 깨뜨리면 더 좋을 것 같아도, [죄의 종]이 되고,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몸은 자유롭지만, 죄에 얽어 메여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죄의 습관]에 빠져서, 포로가 되고, 억눌린 자가 되어,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얽어 메임]에서 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①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②해야 할 것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은 어떤 것을 버려야 하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내려놓는 것]을 배워야 하고, 그것이 [진정한 자유]인 것입니다.
스스로 내려놓을 수 없어도, 일단 내려놓고 나면, 자유가 찾아옵니다.
이것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해 줍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 말씀에 나오는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는 기록과 같습니다.
진리를 벗어나는 자유는 [절대 진리]가 아닙니다.
남자가 여자로 변화되면, [절대 진리]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을 하지 못해요.
그런 사람들의 주장에는 무서운 거짓말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리 안에 있어야 자유”입니다.
남자는 남자대로 지켜야 하고, 여자는 여자대로 그 자체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인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하늘을 날아야 할 때, 자유로운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물고기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 물고기는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는 것이 자유입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지 못하는 무서운 죄에 바빠지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죄에 빠진 우리를 자유케 해 주는 것이니까,
우리는 예수를 잘 믿으면, 자유케 됩니다.
“내 안에 자유함이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배의 자유함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시는 분은
[영혼에 자유함]이 있어 행복한 분이고, 그 사람은 기쁨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런 소중한 자유를 얻게 되어 기쁨이 옵니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4장 21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자리에서 이루어 졌다.“(눅4:21)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제 읽은 성경 말씀이 오늘날 너희에게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읽은 말씀이 ”듣는 자리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①첫째로, 언제 이루어 졌습니까?--- 오늘
②둘째로, 어디에서 이루어졌습니까?--- 바로 이 자리에서
③셋째로, 누구에게----- 듣는 자에게
▶[예수님의 사명]은 언제 이루어 졌습니까?
사명이 선언되는 순간에, 즉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능력이고, [말씀]의 능력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듣고 계시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듣는 자에게/ [말씀]을 듣는 순간에/ 즉시 이루어집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바로 그렇게 행동하면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명]이
①첫째, [온누리교회의 사명]이 되고,
②둘째, 교회의 사명이 [나 자신의 사명]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오늘]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 시간], [오늘 이 자리]인 것입니다.
다만 멈출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우리는 [죄의 종]이 된 것이므로,
우리는 과거에 죄로 말미암아 “육신의 소욕”을 띄고 살았지만,
이제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종이 된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므로, 억눌린 우리를 해방시키고,
자유인으로 살 수 있게 만드셨으니, 우리가 자유인으로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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