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가스펠 프로젝트[7] 니고데모를 깨우신 예수 (요3:1~16) 2020.07.19

다이나마이트2 2020. 7. 19. 20:58

가스펠 프로젝트[7] 니고데모를 깨우신 예수 (요3:1~16)   말씀: 이기훈 목사님

 

요한복음 3장은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밤에 찾아와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복음의 핵심 내용“이 나옵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이 ”예수를 믿고 싶다”고 얘기를 한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대화하는 가운데 그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의 말씀인, 1-2절에 해답이 나옵니다.

①첫째로, 그는 바리새파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은 [율법 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②둘째로, 그는 공의회(지금의 국회) 의원의 신분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담당하지만, 나머지는 공의회에서 결정합니다.

③셋째로, 그는 모든 인격을 갖춘 교양 있는 인물입니다.

 

또 3-4절에서 또 알 수 있는 정보는

④니고데모는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율법적으로 판단하니까, 율법에 갇혀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능통하지만, [영적]으로는 무지하여,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지식은 전문가 수준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영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건강한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이 알고, 이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행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행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산다면, 그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건강한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며,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영적인 사람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묵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5장 12-14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여러분은 지금쯤 선생이 돼 있어야 마땅한데, 누군가 다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 원리를 가르쳐야 할 형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젖만 먹고, 단단한 음식은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젖을 먹는 사람은 모두 의의 말씀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사람의 것입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훈련으로 연단된 분별력을 지니고 있어,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히5:12-14)

 

▶[신앙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신앙인]으로 나이 먹는다는 것은

삶의 여정에서 자기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고난을 당하면, 처음에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율법의 한계에 갇혀서 살고 있으니까 잘 모릅니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신의 한계]를 깨우쳐 알게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안다”고 하지만, 자기가 아는 것이 다 아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근거하여 자기의 한계를 깨우쳐 나가야 합니다.

그 한계를 극복하고, 넘어서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무지한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듭남]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5-7절에서 그 설명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육체에서 난 것은 육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여기서 ‘다시 태어난다’고 라고 말한 것을 너희는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3:5~7)

 

이 말씀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물]은 ”물세례“를 의미하고, [성령]은 ”성령세례“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먼저, 물은 [침례의 물]입니다.

옛 창조는 물로 끝내고, 성령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새로 싹트는 새로운 출생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선포했습니다.

 

[물과 성령]이 여기서 해당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거듭나게 되고, 거듭난 사람은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우리가 [죄사함]을 받는 것은 [성령님]에 의해, 가능합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아야 가능해 집니다.

 

▶“물로 거듭 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씻는다" 또는 "깨끗해 진다"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도 “말씀으로 거듭 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인격과 나의 삶을 변화 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각과 철학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 말씀이 나의 마음속에 [콕] 박혀야 하고, 말씀이 나를 찾아 와야 합니다.

▶[물세례]는 알겠는데, [성령세례]는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2장 3절의 말씀에,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는 주시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다시 쉽게 풀어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저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개입되지 않으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성령세례]입니다.

 

니고데모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예수님이 다시 쉽게 설명해 줍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거듭남]은 무엇입니까?

[거듭남]은 ‘born again’입니다. 즉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거듭남]은 ”나의 선택“이 아니고,

”성령님이 나로 하여금 믿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왜 예수를 믿을 때, 우리가 거듭나고 변하는가?

내가 교훈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 생명의 물이 새로 내 속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교육이 아니라, 예수 믿고 [새 생명]을 얻었기에 변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생명이 우리를 조절하고 통제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 믿게 되면, 옛날에 좋던 것이 싫어지게 됩니다.

 

그런 것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예전에는 싸워서 지고 나면, 반드시 복수하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속성]은 되로 받았다면, 말로 줘야 속이 시원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퍼부어주어야 속이 시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후에는 그렇게 하려고 할 때마다, 속에서 끌어당기는 것이 있어요.

[악한 말]을 많이 듣고도 입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심지어 그런 말을 들어도 그냥 맘이 기쁘고, 이상하게 속이 편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이 [생명]입니다.

 

[새 생명]이 내 안에[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기에, [성령님]이 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이것을 아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주체]가 ”내가“ 아니고, ”성령님“이십니다.

[자기]의 수고가 아니고, [성령님]의 영향력으로, 내가 믿게 된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은 내가 아니고,

성령님의 능력이 나에게 작용해야, 내가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뭔가를 많이 배우는 종교가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종교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오늘날 유감스러운 것은 ‘많은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이 비밀을 모르고 다닙니다.

그저 많이 알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지 못하면, 새 생명을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해도 겉돌기 하는 것입니다.

성전의 뜰만 밟고,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성령님]의 돌보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의 돌보심“을 아는 사람은 일상 가운데 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며,

항상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님]이 자기 생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니고데모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예수님이 13-15절에서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줍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곧 인자 외에는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3:13~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쳐든 것같이, 나도 높이 들려야 한다.

이것은 나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3절에서 다시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①13절에서, 하늘에서 내려 온 사람—->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고,

②14절에서, 모세가 뱀을 들어 올린 것 같이---> 과거의 사건을 통해, 십자가 사건을 설명해 줍니다.

 

불 뱀에게 물린 자가 죽으니까, 장대 높이 불 뱀을 만들어서,

그걸 보는 사람은 살아남듯이, [십자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설명들을 종합해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요3:16)

 

이 말씀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어떤 의미에서 [해방]입니다.

억압 받는데서 풀려 나오는 것이 [구원]입니다.


[죄의 값]으로 사망할 수 밖에 없는 내가, 예수 안에서 [생명의 접붙임]을 받아서,
내가 깨어지고, 내 속에 새 생명이 자라난다면, 그것은 분명히 [구원]입니다.


▶구원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 주셨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내가 그를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나를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사실을 고백해야 구원을 받습니다.

 

①첫째, 우리 자신이 그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믿음으로 받아 드리고,

②둘째, 우리 자신의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구원]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내가 마음속으로 받아드리고,

입술로 고백해야,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모두 다 구원 받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예수를 마음에 품고, 받아드려야 하고, 그 사실을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니고데모에게 설명하는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내 마음 속으로 이해하고, 받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에게는 “이런 고난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첫째로, 불안하고 근심은 되지만, 크리스천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②둘째로, [소망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불안하지만,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③셋째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천국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구원의 확신, 소망의 확신, 천국의 확신을 품으십시오.

어느 곳에 계시든, 어렵게 살지만, 이런 3가지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그 후에 어떻게 살았습니까?

요한복음 7장에 보면, ①예수를 위해 살면서 변화시키는 삶을 살았고,

②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하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니고데모처럼 예수를 모르던 사람도 변화되고,

거듭나서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소망을 품고, 보람되게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