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가스펠 프로젝트[9]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으라 (요4:3~14)

다이나마이트2 2020. 8. 3. 16:56

가스펠 프로젝트[9]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으라 (요4:3~14)  말씀: 이재훈 목사님

 

[가스펠 프로젝트]는 코로나 사태로 교회에 오지 못하는 어린 자녀들에게

“부모가 교사가 되어 성경의 말씀을 가르치자“는 가정문화를 바로 세우는 작업입니다.

 

최근에 자녀를 낳지 않아 신생아의 숫자도 29%정도 줄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유년 주일학교의 학생들도 줄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초등학교 다니며 교회에 나오는 숫자가 647명이라면, 고등학교에 가면 270명으로

숫자가 1/3로 줄어드는 현상을 보입니다.

 

이런 원인은 기독교의 사회 신뢰도에서도 문제가 있고, 물질적인 세계관과 유물론적인 세계관이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녀교육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이 168시간인데, ”일주일에 교회를 한번 나온다.”고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교회가 되어, 부모님이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가정에서 부모가 교사가 되어 꾸준히 가르쳐야 하고,

식탁에서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하는 것이 가스펠 프로젝트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가스펠 프로잭트를 시행 이후에 반응을 들어보면, 처음에 가정예배를 드리면 거룩한 모습이 아니고,

성경을 읽다가 단어가 틀리면, 깔깔 대고 웃기도 하지만, 말씀을 나눌 때는 “어떻게 이 아이가 성숙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지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코로나의 어려움 가운데 에서도, “이제는 [가정예배]라는 귀한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들의 건전한 신앙생활과 자녀들의 신앙의 성장을 위하여,

교회가 추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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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요한복음 3장]에서 한 밤중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대화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이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던 도중에, 한 여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우물가의 여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 여인과 나누는 대화 속에, 예수님의 말씀에는 구원받는 내용과 진리의 말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변화된 이 여인처럼, 우리들의 삶도 변화되기 바랍니다.

 

▶두 사람의 대화/ 니고데모와 이름 없는 여인의 대화에서 차이가 무엇일까요?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랍비(선생)이고, 남성의 지도자이지만,

이 여인은 알려지지 않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여인입니다.

 

니고데모는 사람들이 없는 어두운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갔지만,

이 여인은 유대지방의 특성대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한낮]에, 정오 시간에 물을 길으러 우물가를 찾아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물가에 도착하여, 여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일상에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충격을 받게 되고, ”어떻게 하늘나라에 들어가는가?“를 알게 되지만,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직후에 물 항아리를 버려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돌아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맞추어 대화하고,

그 사람에 맞는 ”필요한 말씀“을 하시고, 전달해 주십니다.

 

여기서 착안하여, 우리교회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맞춤전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맞춤전도]는 직업별로, 의사, 간호사, 번조인, iT 전문가,

또는 [20-30]으로, 20대와 30대 전도 집회이거나,

[44-55]으로,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의 중년 가정주부들을 위한 전도 집회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전도할 때, [4영리]로 똑같은 메시지로 전도하지만,

예수님은 동일한 내용으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맞춤전도의 창시자]입니다.

 

요한복음 3장 10절에,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도 이런 일을 이해하지 못하느냐?“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계속해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물을 기르러 온 여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물]로 비유해서 설명하십니다.

 

니고데모는 큰 특권을 가진 권세 있는 사람이지만,

이 여인은 사람들을 만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두 사람은 모두 목마름이 있었으나, 그 목마름의 실체는 서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지식인 이지만, [진리]에 대하여 목이 말랐고,

여인은 [사람과의 관계]에 목이 말랐습니다.

 

여인은 5명의 남편을 만났지만, 지금 같이 살고 있는 6번째의 남편을 남편이라고 떳떳이 부르지 못하는 처지이니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동네 사람들의 눈총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가장 뜨거운 정오에 물을 기르러 나왔던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사람들을 만나며, 예수님의 경험을 전달하고,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지역의 사람들을 경멸했기 때문에, 사마리아 지역을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마리아 지역을 일부러 찾아가서, 이 여인을 만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어요.

이유는 외부의 침략으로, 이방 민족들과 혼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수 유대인들의 혈통을 자랑하던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사마리아는 인정받지 못하는 당이 되었습니다.

 

이 여인과의 대화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먼저 예수님이 “물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남자로써,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무시하고, 그녀와 대화를 시도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냉소적인 대답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온유와 절제로 부드럽게 상대합니다.

 

▶어떻게 상대합니까?

겸손한 말로, 인내하면서, 4장 10절과 같이, 다가갑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물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부탁했을 것이고,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 04-10)

 

▶여기서 온유와 인내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 여인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알았다면, “[물] 대신에 생수를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여인은 [육신의 물]을 생각하지만, [사람의 목마름]은 그런 [물] 말고도,

또 다른 물(=생수)도 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니고데모가 ”모태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에 비유하는 것과 다릅니다.

 

사람들에게 [우물]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물]은 예수님의 구원과 같아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우물]이 필요한 것은 그 땅이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물]이 구원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사야 12장 2-3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는 분이시니, 내가 그를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며, 노래요, 내 구원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으리라.“(사12:2-3)

 

[구원의 우물]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것이 생명의 근원입니다.

예수님이 여인을 만난 장소가 [우물]이니까, [야곱의 우물]도 야곱이 소유권을 가진 ”수가“(이미 지불되었다는 의미로) ”값을 지불한 땅“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우물에서 하나님의 선물을 여인에게 주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지불하신 우물에서 수가성이 된 것과 같이,

다 이루신 보혈의 피 값으로, 우리에게는 은혜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선물]은 무엇입니까?

선물은 값이 지불되었을 때, 선물입니다.

만약에 값이 지불되지 않은 것은 [선물]이 아니고, [뇌물]입니다.

 

13-14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솟아올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4:13-14)

 

야곱의 물을 마셔도 또 목이 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은 [영생하는 물]입니다.

이 말씀을 여인이 듣고, 그때부터 점점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말씀의 내용을 이해하도록, [성령]이 그 여인에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시행하고 있는 [성경 필사] 프로젝트를 하면서 어려운 것은

한 페이지를 모두 다 기록했는데, 잘못해서 한 글자를 잘못 기록했다면, 다시 새로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령의 말씀을 들으며,

이 여인도, ”나도, 그런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딱 한 마디 말을 하십니다.

“네 남편을 데려와라”

 

이 여인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여인은 이 말을 하면서, 매우 분노한 뉴앙스를 보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남편]이라는 단어는, 가장 불편한 단어입니다.

[남편]이라는 말은, 이 여인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이고,

꺼내고 싶지 않은 단어이므로, 가장 찔려오는 단어입니다.

 

이미 5명의 남편이 있었지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사람이고,

지금의 남편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니, 당연한 말이겠지요.

 

예수님은 이 여인의 과거를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았으나, 사람을 구원할 때는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빛]이기 때문에, 어둠을 물러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게 하십니다.

 

영원한 생수를 받기 위해서는 [빛]을 향해서 나가야 합니다.

이때에, 여인에게 [구원]이 임했고, [생수]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을 보면,

“내 백성이 범한 두 가지 죄는 생수의 샘인 나를 버린 것과,

물을 담을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스스로 판 것이다.”(렘 02:13),

 

▶이 말씀에서 [터진 웅덩이]는 무엇입니까?

[터진 웅덩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이라“고 했으니,

우리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웅덩이를 파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스스로 우상을 섬기는 속성이 있으니까,

결코 하나님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죄]입니다.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자기 스스로의 욕구를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만든 웅덩이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나 자신의 갈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목마름]은 물이 필요하니까, 목마른 것이지요.

우리가 “허무하다“는 것은 행복의 실체를 갈망하니까, 허무한 거예요.

 

인간은 누구나 ”의미에 대한 갈망“이 필요해요.

그것은 인간은 의미 있는 존재이니까, 그런 거예요.

 

동물에게는 영광에 대한 갈망이 없지만, 인간은 영광스러워 지고 싶어 해요.

그래서 그 반대의 상황이 되면, [비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모르지만,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벽한 사람일지라도, 몇 %는 부족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혼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그것은 인간이 “영원한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샘물]은 영원한 목마름을 해결하는 “구원의 샘물”입니다.

 

마지막으로 13-14절을 쉬운 현대인의 성경으로 다시 읽으십시오.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절대로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솟구쳐 나오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이 될 것이다.“(요04:13-14)

이 우물의 물을 먹는 자는 또다시 목마를 것입니다.
구약의 종교는 율법이고, 이 율법을 지킬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시 목마를 것입니다.

[물]은 오늘 먹어도, 또 내일 다시 먹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신앙]은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빛이 보여서 너무 놀라게 되고,

감격스러워 져서 “본인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14절에 나오는, 예수님이 주고 싶어 하는 [물]은 그런 물이 아니다.
그 물을 한 번 먹으면,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입니다.

▶[야곱의 우물]과 내가 주는 [생수]라는 물은 어떻게 다릅니까?

[야곱의 물]은 물이로되, “완전히 다른 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는 [생수]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

즉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입니다.

 

이 [물]은 ”예수님을 통해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4절에서, 예수님은 또 유명한 말을 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이 말씀 속에서 이 [생수]는 누가 주시는 것일까요?
그 분은 예수님 입니다.

▶그럼, 이 물을 누가 먹을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누구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이 "건강"하고, "생기"가 돌고, "희망"이 넘치고,

"생명"이 가득찬 이 [물]을 여러분 모두가 먹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이 [물]의 특징은 “값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물은 "공짜"입니다.


▶이 [생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 [생수]는 “솟구치는 물"이고, "영생"을 얻는 [물]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그냥 계속해서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제 말씀을 듣고,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여, 오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달라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