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가스펠 프로젝트[6] 어둠의 세력에 대해 승리하시다. (마4:1~11)

다이나마이트2 2020. 7. 12. 17:47

가스펠 프로젝트[6] 어둠의 세력에 대해 승리하시다. (마4:1~1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세상에는 분명히 [어둠의 세력]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공격하는 [악의 실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세력을 느끼지 못할 때, 그들에게 공격을 당하여 고통을 받게 됩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머무를 때,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도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고,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어떤 공격을 받았습니까?

(1) 예수님의 첫 번째 공격은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4:3)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아담]은 [어둠의 공격]으로부터 패배했지만,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마귀의 공격에 승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1-2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40일 밤낮을 금식하신 후에, 예수께서 배가 고프셨습니다.”(마4:1~2)

 

여기서 [유혹]은 공격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좀 이상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이끌림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째서 [마귀의 유혹]에 빠진 것입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미리 알고, 대처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셨기에, 당연히 배가 고프고, 먹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마귀는 그걸 이용하여, 첫 번째 시험은 “돌을 빵으로 만들라”고 제안합니다.

 

마귀가 노리는 것은 ”신이면, 신답게 능력을 발휘하라”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 요구를 거절하고, 능력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런 일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돌]을 [떡]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바꾸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바꾸는 일은 [악]이고, 그건 [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안]은 “단순한 기적을 일으키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당신은 고통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제안이니, 예수의 실체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겉으로는 예수를 돕는 말 같지만, 간사한 공격이 숨어 있는 말입니다.

 

이 말 속에는, “왜, [십자가]와 같은 극심한 고통을 자신이 담당하려고 하느냐?”는 마귀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40일까지 금식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10일 정도 금식해 보면,

몸 전체가 다운되고, 온통 “힘들어서 먹고 싶다“는 본능이 작동합니다.

 

”먹고 싶다”는 본능이 [죄]는 아니지만, “그 본능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둠의 세력]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와 배가 고플 때, [야곱]의 말에 속아서 장자를 넘겨줍니다.

 

CS 루이스가 말하기를,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짓은 자신의 본성에 있는 본능 중

하나를 골라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따라야 할 사항으로 절대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적 지침이 된 후에도, 우리를 마귀로 만들지 않을 본능은 없습니다.“ - 루이스 -

 

이 말을 거꾸로 표현하면, 본능을 절대시하면, 마귀의 계략에 넘어 집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 본능을 해결하기 위해 본능을 일으킨다면, 끔찍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군가의 고통을 해결하고, 배고프고 먹을 것을 해결해 준 것은 예수님 자신의 본능을 만족한 것이 아니고,

병든 자를 위해,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 것입니다.

 

그럴 때, 자신의 본능을 위해 능력을 사용한다면, [은사]는 떠나갑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이단]이고, [사이비]입니다.

 

꼭 이런 기적적인 능력이 없어도 [인간의 본능]을 절대화 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것을 이용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2가지를 같이 창조하셨습니다.

①첫째는, [자연의 법칙]을 활용하셨습니다.

 

[자연의 법칙]에 역행하면, 엄청난 재앙이 따릅니다.

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리는 순간에 엄청난 재앙이 동반됩니다.

 

②둘째로,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과 함께 인간이 만든 [법칙, 규범]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도덕]이고, [윤리]인 [자연법]입니다.

 

인간은 가르치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선과 악]을 구별하는 기준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존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도 그것을 다 알고 있으니까,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일고 있는 기준이 있는데,

루이스가 규정하는 것이 [도덕]이고, [인간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종교]가 달라도 그 기준은 비슷비슷합니다.

인간이 창조된 법칙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의 법칙]과 인간이 만든 [법규]를 어기면, 엄청난 고통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십계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루이스는 ”[도덕]을 수학의 세계와 같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수학에서 공식을 무시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1+1=2”는 맞는 말이지만, “왜, [3]이면 안 되느냐?”라고 우기면, 세상은 흔들립니다.

물론 [3]일 수도 있지만, 무너지지 않는 [수학의 법칙]이 이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입니다.

모든 것에 근간에는 [자연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동성애]에 관한 논란도 그렇습니다.

[동성애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고 틀린 것입니다.

 

모든 것의 근간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는 것이고, 인간의 염색체는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염색체]는 남자면 남자이고, 여자면 여자입니다.

 

그러나 “반반의 성이 있다”는 것은 틀린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틀린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일에 “틀린 것을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수학의 법칙]을 무시하거나,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것]은 받아들여도, [틀린 것]은 받아 드릴 수 없습니다.

 

보편적인 인간은 누구나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태어납니다.

세상에 남자와 여자가 아닌, 기타 다른 유전자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유전자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또 다른 염색체가 존재한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면, 세상은 혼란해 지고, 엄청난 대가를 치루 게 됩니다.

 

마태복음 4장 4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됐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4:4)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고, 우리의 양식이 되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항상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는 것과 같이,

줄기는 가지에 붙어 있어야 하고, 떨어지면 관계가 멀어지고, 하나님의 돌보심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적에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기적은 없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빵의 원료를 가지고 빵을 여러 개 만드셨고,

[홍해의 기적]도 바다를 잠시 멈춘 것이지, 영원히 멈추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질서를 지키면서 기적을 행하셨듯이, 만일에 [돌]을 [떡]으로 만들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광야에서 [만나]가 내리워져 먹게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차라리 굶주려서 죽을지언정, 마귀의 속셈에 넘어가지 않을 의지이므로,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피력하시며,

이 말씀으로 마귀의 첫 번째 공격을 이겨 내셨습니다.

 

(2)두 번째 공격은 “예루살렘 성전의 꼭대기”로 데려 갑니다.

 

5-6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자 마귀는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마귀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 내려 보시오.

성경에 기록 됐소. ’하나님이 너를 위해, 천사들에게 명령하실 것이다.

그러면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붙잡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다.”(마4:5~6)

 

▶왜, 성전 꼭대기로 옮겨 왔을까요?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과 가까이 가는 것이니까,

자신의 생명을 의탁하러 와서, 하나님의 믿음을 시험해 보려는 마귀의 의도입니다.

 

이것은 시편 91편 4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너를 그 깃털로 감싸 주시니, 네가 그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며,

그 진리가 네 방패와 성벽이 되리라”는 말씀에 기초하여, 마귀가 인용한 것입니다.

 

장 칼벵은 이것을 “사탄은 예수님이 불필요하게 위험한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켜서 어리석고 헛된 확신을 갖도록 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의 의미를 왜곡하도록 권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위험스러운 태도로, 자신의 신성을 시험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라고 기술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의도를 벗어나거나, 앞서가지 않았고, 그 말씀에 따라 움직이니까,

마귀는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은 것은 일체 따르지 않으셨고, 혼자의 생각으로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날마다 시험하는 것입니다.

 

[죠지 맥도날드]씨는 “[믿음]은 감추어진 미래 속으로 성급히 달려드는 게 아니라,

행할 길을 열어 주시는 지식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죠지 맥도날드-

 

다시 바꾸어 말하면, “[믿음]은 ①깨닫는 만큼 머무는 것이고,

②모르면 그 자리에 정지시켜 머물면서, ③하나님의 말씀을 음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3) 세 번째로, 마귀는 시험장소를 바꿔서 ”높은 산으로“ 올라갑니다.

 

8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자 마귀는 다시 아주 높은 산꼭대기로 예수를 데리고 가 세상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만약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4:8~9)

 

이것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과 비슷합니다.
"네 영혼을 나에게 주면, 너에게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이것은 “사탄 숭배사상”입니다.

이런 “사탄 숭배사상”이 온 세상에 만연해 있습니다.

 

▶[사탄]은 무엇입니까?
천사이던 사탄이 자신이 경배를 받고자 해서 타락한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은 창조질서를 어기는 자신이 만만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일을 합니다.

 

▶그럼 [사탄]은 어떤 존재인가요?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입니다.

마귀는 변장을 잘 합니다. [악한 영]은 거짓말을 잘합니다.

사탄과 마귀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지배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은 모든 권세를 가진 것으로 착각하고,

나에게 절을 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합니다.

 

마귀는 장소가 중요하지만, 예수님은 장소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자기가 하는 말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 굴림하고,

바로 그런 사람만 골라서 찾아가고 덮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10절 말씀에서 단호하게 소리칩니다.

“예수께서 마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네게서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됐다.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라.”(마4:10)

 

마귀는 삼킬 자를 찾고 있으니, 우리는 그에 속한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온누리교회의 영적 표어인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는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즘 창궐하는 바이러스도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에, 인간에게 어려움을 주는 일이므로,

말씀으로 창조한 것들을 무너뜨리는 일은 [악한 일]에 해당됩니다.

 

신명기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8:2)는

신명기의 말씀같이, 광야에 길을 걷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광야는 축복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 속에 독이 있어서 먹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곧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되게 하시는지?”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고하게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북미와 같은 [차별금지법]을 통과 시키려고 하니,

우리는 하나같이 이런 [어둠의 세력]을 극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