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 (느2:1~10) 2020.08.30

다이나마이트2 2020. 8. 30. 10:40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  (느2:1~1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요즘같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수치를 다 알고 계시며,

우리에게 느헤미야와 같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안전을 지키는 것은 불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크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이유를 생각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더 어려운 분들을 생각하는 믿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이러스를 통하여,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고,

또 한편으로는 바벨탑을 쌓으려는 것을 흩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욕망과 거짓과 부정, 그리고 온갖 탐심을 가진 우리에게 회개하게 만드시고,

한국 교회를 올바로 서도록,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중국 선교를 이끄신 [허드슨 테일러]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이 어려운 상황인데,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저는 [기도]로 사람을 움직였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사람의 마음은 물론이고, 하나님도 움직이게 만듭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수차례에 걸쳐 귀환했지만, 방치되던 것을 다시 세우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리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여러 번 시도하여 실패한 일을 “다시 시도한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 가운데, 첫째로 어려운 장벽은 ”왕의 마음을 돌리는 일”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돌리는 일은 그린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혹시 잘못하여, 왕의 면전에서 왕의 심기를 건드려서, 불편하게 한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짧은 대화에서, [느헤미야]는 오랫동안 기도하며 준비를 철저히 하였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나타나도록“ 기대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지금 당장에“ 모든 것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지만,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며칠 째 금식하며 기도하지만, 겉으로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간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도의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이사야 62장 6-7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예루살렘아, 내가 네 성벽에 파수꾼을 세워 두었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잠잠해서는 안 된다.

여호와를 일깨워 드려야 할 너희는 가만히 있지 말고,

그분이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세상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실 때까지,

여호와께서 쉬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사62:6~7)

 

여기서 ”밤이나 낮이나 잠자지 않고, 쉬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느헤미야 2장 1절 말씀을 보면,

“아닥사스다 왕 20년 니산 월에 나는 왕에게 술을 따르는 일을 맡았기에,

술을 가져와 왕에게 따라 드렸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내가 왕 앞에서 슬픈 기색이 있는 것을 보고,

왕이 내게 물었습니다. ‘네가 아프지도 않은데, 네 안색이 왜 그리 슬퍼 보이느냐?

마음에 근심이 있는 게 분명하다”(느2:1)

 

여기에 나오는 [니산 월]은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1장 1절에 나오는 [기술르 월]은 11월 중순에서 12월 중순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 기간에, “4개월 정도를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느헤미야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4개월 동안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놀랍게도 기도를 한지, 4개월이 지나서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기도의 응답]은 일시적으로 갑자기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이 움직인 것이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움직이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말이 쉽지만,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들은 [일]이 안 되면, 얼마나 조바심이 나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조바심을 내며, 은행을 방문하여 대출부터 상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자기가 먼저 움직이지 않았어요.

느헤미야는 왕의 바로 곁에서 기다리고, 왕이 말하기 전에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느헤미야는 지혜롭고, 용기 있고, “준비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진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하며, 철저하게 준비했지만,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꾸준히 기도를 했고, “하나님을 쉬지 못하도록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 [증거]로 왕을 대면하는 자리에서도, 그의 얼굴에는 슬픈 표정이 남아 있었고,

그의 표정에는 마음이 아파서 ”슬픔이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지내던 왕이 그것을 눈치 채고, “어디 아프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슬픔이 마음에 있으면, 그 슬픔은 겉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왜, 그런 슬픔이 나타납니까?

매일 드리는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이 슬픔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이것은 철없는 아이가 “부모에게 장난감을 사 달라“고 조르는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계속해서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기다림]이 요구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바로 그런 ”기다림의 시간”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만들고,

적당한 시간에 맞추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어느 날, 아닥시스다 왕은 연회의 자리에서, 느헤미야의 안색에 관심이 있어서,

그에 표정을 살피게 되었고, 그것은 [은혜의 손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일부러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은 아니지만,

그 표정을 보고, ”근심이 있다“는 것을 왕이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에, 느헤미야는 자신의 표정을 감추지 못해서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것은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말한 것과 같이,

그 기회가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알고, 정직하게 [슬픔의 이유]를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다 얼굴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을 보면 아주 환하고 영성이 높아 보이지만,

또 어떤 사람은 전혀 기도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얼굴 표정에는 모두 다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참으면,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움직이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그는 세속적인 왕이었지만, [술 관원]이라는 위치에서, ”슬프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왕이 잘못 생각을 한다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고, 조상들을 앞세워 민족의 슬픔을,

왕에게 진정성 있게 말했습니다.

 

4-5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왕이 내게 물었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때 내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왕께서 기뻐하시고, 종이 왕께 은총을 입었다면 왕께서는 저를 조상들이 묻혀있는 유다 땅으로 보내,

그 성을 다시 건축하게 하소서.“(느2:4~5)

 

이것이 느헤미야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위기의 순간]을 [기회의 순간]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왕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이때, 느헤미야는 잠깐 짧게 기도를 했습니다.

 

4개월 동안 기도를 했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아주 [짧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기도]를 어떤 사람은 [화살기도]라고 하는데, 이런 습관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저에게 부끄러운 [과거 얘기]가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입학 할 때에 구두시험을 보았는데,

바구니에서 꺼내 짧은 메시지에 대답하는 형식인데, 제가 뽑은 질문은 정치적인 메시지로,

제가 답을 하지 못하자, 한 교수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시 기도했다가 뽑았는데.

자네만 자신 있게 그냥 뽑기에, 이상하다“고 생각 했는데, 그 질문이 어려우면,

“다시 뽑으라.“고 다시 기회를 주셔서, 다시 기도하고, 뽑았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인생에도, 어느 순간에 짧은 시간이지만,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주 효과적일 때가 있습니다.

 

이어서 6절 말씀에서, ”그때 왕 옆에 왕비도 앉아 있었는데 왕이 내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다녀오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느냐? 언제쯤 돌아 오겠는냐?

왕의 나를 보내기를 허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왕에게 기한을 정해 말했습니다.(느2:6)

 

드디어 왕이 느헤미야의 요청을 수락한 것입니다.

여기서 “언제 돌아오겠느냐?”라는 말은 “신임하고, 축복한다“는 의미합니다.

 

잠언 21장 1절 말씀을 보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어, 강물과 같이,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대로 돌리신 것입니다.“(잠2: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왕의 마음을 다스리기 때문에,

그가 생각하는 방향을 도랑물을 바꾸시듯이, 마음대로 바꾸십니다.

 

▶느헤미야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무너진 성전을 ”재건축 하는 일“입니다.

느헤미야는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고, 무너진 성전을 고치려는 마음뿐입니다.

 

그러면서 8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 그 지방의 총독에게 무사히 통행할 수 있도록 통행을 보장하는 공문과

성벽 쌓을 재료와 목재를 준비하고, 병력을 보내 주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계획을 했고,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계획했고, 준비했기에,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계획]은 쉽게 나오지 않고,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야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계획]을 세울 때는 “계획에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느냐?“가 중요하고,

그 [계획]을 제대로 실행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야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안전하게 통행 할 수 있는 [통행증]까지 말했고,

그는 갑자가 생각해서 말하지 않고, 오랫동안 철저하게 준비하여 말했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가 준비한 [증거]입니다.

 

(2) 하나님의 [의로운 손길]은 그가 구한 것보다도, 넘치도록 들어 주었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의 말씀 읽으십시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에 따라,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 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에게---“(엡3:20)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고,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가 움직이고, 일하는데, 불편함이 없이, 그가 요청한 것 이상으로,

군대의 장관이나 군대의 마병까지 주셨습니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그가 하려는 일을 달성했습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어떤 의도나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분명히 느헤미야는 8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왕은 네게 모든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내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내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느2:8)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우리를 만질 때, 놀라운 일들이 나타납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손길“이 임할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손길“이 있을 때, 상황이 바뀌어 집니다.

 

[느헤미야]처럼, 수개월 동안 기도했듯이, 준비하고, 계획해야,

그런 일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기도를 하긴 하는데,

“응답이 내 마음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도할 때,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내가 기도하는 대로 하나님이 움직여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즉, “하나님을 내가 조정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조정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요즘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운 시기에,

우리들도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며,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