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다윗의 장막[1] 다윗처럼 예배하라 (대상29:10~20)

다이나마이트2 2020. 8. 17. 22:09

다윗의 장막[1] 다윗처럼 예배하라 (대상29:10~2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전 교인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하므로,

예배회복을 위해 [다윗의 장막]이라는 주제로, 5일간 새벽기도회 갖습니다.

 

요즘 우리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므로 [예배자]로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한 목적은 ”하나님께 찬송하며 예배자로 살라”고 하셨는데,

함께 모이지 못하여, 예배의 영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다시 그 영성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6개월 동안 사회적인 거리두기와 손 씻기 등 방역 수칙을 배웠고,

우리에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으니, 이제는 [코로나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역대기]는 왕권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내용으로, 정치적인 번영보다

이스라엘 왕국을 예배 공동체로 세우는 것을 다루고 있으며,

 

[열왕기]는 왕들의 즉위와 통치 그리고 성전 건축을 설명하고,

솔로몬 이후에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되는 모습과, 이스라엘 왕국의 몰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5일간 [역대기]를 중심으로, 5명의 왕들을 통해 [예배의 영성]을 배우려합니다.

오늘은 역대기에 나오는 [다윗의 영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윗은 왕이기 이전부터 “참된 예배 자”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합한 자”라는 별명은 그에게는 늘 예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왜, [다윗의 성전]이라고 하지 않고, [다윗의 장막]이라고 했을까요?

다윗은 성전 건축을 염원했으나,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거절했습니다.

다윗은 준비만하고, 결국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모세 시대부터 전해 오는 [장막]이 너무나 낡았으므로,

[장막]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려는 [다윗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자기 집보다도 예배의 처소인 [장막]이 더 낡았으니,

더 좋은 성전을 짓고자하는 마음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어느 날, [언약궤]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법궤]를 광야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장막]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했어요.

 

▶[장막]이 어떤 곳입니까?

[장막]은 “이동식 텐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환경을 좋게 [하나님의 집]을 지어,

“성전에 모셔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윗]은 그런 어려운 마음을 상의하려고,

선지자 [나단]에게 찾아 갔지만,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 할 [일]을 찾고 있었어요.

[다윗]의 마음은 ”온전하고, 영구적인 하나님의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나단]은 “[다윗]의 말”에 감동을 처음에는 받았으나, [나단]이 큰 실수를 저질렀어요.

그것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인간적인 마음을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올바른 대답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할지, 우리 기도해 봅시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중”을 먼저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급하게 찾아와서, [나단]이 밤에 홀로 있을 때에, [나단]을 책망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나단의 생각”과 달랐어요.

 

하나님은 [다윗]이 생각하는 뜻은 받아드렸지만,

그러나 그가 하고자 하는 제안은 거절했어요.

 

▶왜,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거절했을까요?

하나님은 갇혀있는 공간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옮겨 다닐 적마다, 그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신전에 머무르는 신이 아니다.”

“나는 백성들과 함께 거하고, 어느 곳이나 존재하는 하나님이기에,

”신전에 머물러 있는 하나님이 아니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말로는 말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때가 많이 있어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주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돕고 있는 분이고,

[하나님]도 받는 자가 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주어가 바뀌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내가 “주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섬김에 [주어]가 바뀌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우는 집은 “보이는 집”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지어지는 집이고,

그것은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당]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집”이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는 것을 [하나님]은 마음 만 받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이 세우겠다.”는 집은 눈으로 보이는 [집]이 아닙니다.

그 [집]은 바로 “우리들, 자신”을 의미 합니다.

 

[다윗]이 생각하는 집은 물리적인 집이지만,

[하나님]은 “너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네가 짓는 집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으려는 집은 어떤 집입니까?

①첫째로, “예수님을 통해서 지어지는 집”입니다.

②둘째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지는 집”입니다.

 

▶그런 [집]은 누구를 얘기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옮겨 다닐 대 마다 옮겨 다녔지만,

하나님은 ”내가 언제 불평을 했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언약궤]는 ”어께에 메고 땀을 흘리며 운반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다윗은 그 [언약궤]를 바라보며 기뻐하고, 흥분하고, 열정적으로 춤을 추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언약궤가 들어올 때, 역대상 16장 8절에서 12절 말씀과 같이 기뻐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드리라. 그분의 이름을 부르라. 그분이 하실 일을 모든 민족들에게 알리라.

그분을 노래하라. 그분을 찬양하라. 그분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말하라.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영광이 있기를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이 있으라.

여호와를 바라보고 그분의 힘을 바라보라. 그분의 얼굴을 항상 찾으라.

그분이 하신 놀라운 일과 그분이 베푸신 기적과 그분이 하신 판단을 기억하라.“(대상16:8-12)

 

그러니까 16장 전체가 ”감사와 감격의 예배”라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30세 이상의 레위인들 4,000명이 악기를 가지고, 24,000명이 모여서 예배드립니다.

 

▶[다윗의 영성]에서 놀라운 것은 무엇입니까?

비록 성전 건축을 하지 못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윗이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전은 짓지 못했지만, 백향목을 재료로 준비한 것에 만족했습니다.

 

▶[다윗의 영성]은 무엇입니까?

①첫째로,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②둘째로, 우리는 나그네 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이 땅에서의 삶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아무리 좋은 여행지를 돌아다닌다고 해도, 나그네의 돌아갈 곳은 [자기 집]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며, [순례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례자의 노래”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① 1절,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 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 밤을 세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리.

 

② 2절, 아득한 나의 갈길 다 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빈들에서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지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 주시리.

 

다윗은 마지막 기도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주신 것을 즐겁게 드립니다.

역대상 29장 16-19절의 말씀 같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성전을 드리려고 준비한 이 모든 풍족한 것은

다 주의 손에서 나온 것이며,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마음을 살피시고, 정직함을 기뻐하시는 줄 압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정직한 마음으로 즐겁게 드린 것입니다.

이제 여기 있는 주의 백성들이 즐겁게 주께 드리는 모습을 보니, 매우 기쁩니다.

 

여호와여,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들이 마음속에 영원히 주를 섬기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그 마음을 주께로 돌이켜,

계속 충성하게 지켜 주십시오.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는 온 마음을 바쳐 주의 명령과 법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하고, 제가 성전을 짓기 위해 준비한 모든 것으로 성전을 짓게 해 주십시오.“라고

다윗은 정직한 마음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절정입니다.

모든 것을 다 드릴 때, 기쁨이 옵니다.

 

①기쁜 마음, ②즐거운 마음, ②정직한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순간에, 우리는 무너집니다.

 

[다윗의 영성]은 영원히 자손들에게 이어 나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성전]이라는 말은 없지만,

[다윗의 장막]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믿음의 열정을 잊지 말고, [다윗의 장막]에서 드리던 열정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예배]이고, 우리가 회복해야할 [다윗의 영성]입니다.

 

우리는 천막에서 예배를 드리더라도, 빈들에서 예배를 드리더라도,

가장 소중한 것은 ”예배의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과거와 같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는 없지만,

빈들에서나, 전쟁의 피난길에서나,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윗의 열정]을 본받아서 ”참된 예배자의 모습“으로 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