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작은예수 40일 특새 31 2020.01.15

다이나마이트2 2020. 1. 15. 13:05

스데반의 부르심 (6:1~15)                                   말씀: R.T. Kendall 목사님

 

저는 오늘 [스데반]의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분은 [평신도]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은 [목회자]들에게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평신도]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스데반의 [기름 부으심]도 목회자가 아니고, [평신도]에게 주신 기름 부으심입니다.

 

초대교회에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요? 아니에요. 초대교회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하고 한번 성령을 받았다.”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문제가 없으려면, 우리들은 계속해서 성령 안에 머물러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계속 성령 안에 머물러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우리를 []에 빠지게 하고,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에도 그 안에는 늘 갈등이 존재했는데 밖으로부터는 [핍박]이 있었고,

안에서는 서로 간에 [갈등]이 시작되었어요.

로인해 성도들은 큰 두려움에 빠졌고, 오늘 말씀같이 복잡하게 됩니다.

 

그런 [다툼][질투] 때문에 일어납니다. 오늘 말씀인 61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이 무렵, 제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 때 그들 가운데 그리스파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파 유대 사람들에 대해 불평이 생겼습니다.

매일 음식을 분배받는 일에서 그리스파 유대 사람과 과부들이 빠졌기 때문입니다.”(6:1)

 

여기에 나오는 그리스파와 히브리파라는 것은 실제로 파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디아스포라로 흩어져서 살았기 때문에, 너무나 오래 동안 이방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모국어인 히브리 언어를 잊어버리고, 헬라문화에 익숙했기 때문에,

두 그룹으로 나누어 살다보니, 벌어지는 [갈등]입니다.

 

히브리파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경을 원래 언어인 [히브리어]로 읽지만,

그리스파 사람들은 번역본인 [헬라어]로 읽으니까, 좀 모자란 사람들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에 사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하고,

미국과 카나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또 억양도 서로 다릅니다.

혹시 한국에도 그러지만, 서울에 [표준말]을 쓰는 사람이 다른 지역에서 “[사투리]를 쓴다.“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이 이런 것으로 교회 분쟁이 있어, [7집사]를 내세워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 집사의 첫 번째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갈등의 해결책은 역시 사람입니다. 교회에 긴장이 오면, “사람으로 긴장을 해소해야 합니다.

 

오늘은 스데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에 대한 얘기입니다.

저는 항상 마음속으로 사모하는 것은 [성령과 말씀]인데, 거기에 지혜가 충만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기를 보니까 7집사의 [선정 기준]이 바로 이것입니다.

첫째로, 성령에 충만함이 있어야 하고,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둘째로, “지혜가 충만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평가해서 나오는 의견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성령 충만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에 계신 여러 사람들이 그 분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야라고 증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말씀 사모함], 그리고 [지혜 충만함]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잘 생각해 보면, 성령 충만하면서도, 지혜가 부족하거나 지혜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에게도 이런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헬라어로 소피아라고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과 같이, “특별한 사람에게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에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야고보서]에도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지혜]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깨닫고, 준행하는 자가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는 일에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생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지혜]현실에 대한 판단력입니다.

때로는,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지혜]입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때로는 비현실적인 판단입니다.

그러나 신비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으로, 때로는 이성을 뛰어 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의 잘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계속해서 질문하고, 계속해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혜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잠언서]를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잠언]의 말씀은 지혜의 책이기 때문이지요.

 

[잠언의 말씀]은 평범함 속에서 구하고 얻어야 하는 것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면,

성적인 문란함은 같이 가지 않습니다.”라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데, 사회적으로 중요 인사나 심지어 교회지도자도 성적인 문란으로

망가지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명예][성적 쾌락]은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성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지혜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스데반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둘째로, 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또 한편으로, 스데반은 기적과 표적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을 통하여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어요.

 제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역사를 이루어 가는데, 예수님의 재림하기 전에,

교회를 새롭게 부흥시키실 것이다.“라고 저는 예상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정, 늦은 시간에 [고함]소리가 나고, [깨달음]이 있었던 사건입니다.

한 밤중에 큰 외침과 고함이 들렸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때, 그 가운데서 [큰 외침]이 있고, [깨어남]이 있는 것은

스데반 같이 [평신도]이지만,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교회가 깨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스데반의 [야망][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기적이 있었지만, 여러분에게도 이런 [새로운(New) 기적]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여기서 참, 중요한 것은 스데반이 성경을 깊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6장을 읽고, 7장을 읽지 않았지만, 우리도 스데반의 설교 내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있어요. 당신은 성경을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스데반의 [기름 부으심]을 원한다면, 스데반 같이 [성경]을 알고, 매일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매일 읽는 계획이 있으십니까?

최소한 1년에 한번 정도는 [성경을 통독]하고, 성경을 가까이 두고, 자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었는데 생각이 나지 않으면, 그럴 때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성령께서 오시면, “말씀을 기억나게 하신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말씀을 꾸준히 읽는 습관이 있으면, 필요한 때에 [성령님]께서 기억나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성령]함께 역사한다.”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말씀과 성령]은 언제나 같이 존재해요.

저는 여러 나라를 가 보았는데, [말씀과 성령]이 분리되어 따로 따로 노는 것을 가끔 봅니다.

그것은 부부가 같이 살아야 하는데, 이혼하면 어떤 자녀는 어머니를 따라가고,

어떤 자녀는 아버지를 따라가는 것과 같아서, 서로 분리되면 안 됩니다. 같이 가야 해요.

 

어떤 교회에는 [말씀]만 추구하고, 어떤 교회는 [성령]만 강조해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먼저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복음]을 붙잡고, 말씀의 진리를 배우고,

신학적인 이해를 구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 것도 잘 압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것도 말씀 속에 깊이 뿌리박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확실하지만, 그러나 이렇게 [말씀]만 강조하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쪽으로만 치우치는 분도 많이 계십니다.

여기서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것이 ”[사도행전적]으로만 생각을 해요.

그래도 기적이 삶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니, ”성령의 은사가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쳐요.

기도모임이 성령의 역사이고, 베드로의 그림자를 밟아도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고,

성령께 거짓말하면 죽음을 경험한다.”고 하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모두 다 잘못된 게 아니지만, 문제는 한 쪽으로 치우친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서로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스데반은 삶속에서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말씀]에 깊이가 있었지만,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았고, ”성령의 역사에 쓰임 받은 인물입니다.

이런 스데반의 [기름 부으심]말씀과 성령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스데반을 귀하게 사용했으나, 또 한 편으로는 큰 핍박도 견디게 하셨습니다.

스데반에게 거짓증거가 있었는데, 말씀에 대한 거짓 증거는 잘못된 거짓말 입니다.

 

혹시 다른 분이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이 두렵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받는 핍박이 두렵습니까?

그런 것은 모두 다 감수하시고, 스데반의 [기름 부으심]이 여러분에게 임한다면,

그것을 좋아하고, 박수만 칠 일은 아닙니다.

 

스데반을 잡아서, 지도자들 앞에 데리고 나가서, 법정에 세웁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지혜와 성령]이 충만해서 변론하는데 망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더 문제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된 것은 또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더 깊은 고난입니다.

 

[기름 부으심]이 크면 클수록, 고난도 더 커집니다.

여러분도 [기름 부으심]을 원하지만, [핍박과 고난]은 같은 종합 선물세트와 같이 따라 다닙니다.

그러나 강력한 [능력]이 함께 하면,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모습]은 마치 [예수님의 고난]과 너무나 같은 모습입니다.

그의 얼굴을 보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기록 되었고, 그래도 스데반에게 방어하는 말을 하라.”고 해서 엄중한 산헤드린공의회 앞에서도 영광의 하나님이 우리의 조상에게 나타났다.”

첫 번째로 [영광의 하나님]을 꺼내며, 말씀을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이 광경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의 하나님]영광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드리고,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면, [기름 부으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스데반에게는 [성령의 강한 증거]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는 [산헤드린공의회]에 불려 들어가서 [증언]하는데,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성경]인간에게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했어요.

여러분은 사람에게 두려움을 갖지 말고, 사람들의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스데반은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함]을 보였어요.

그의 [증언]에 따르면, “목이 곧은 사람이라고 야단치는 데도, “당신들이 메시아를 죽였다.”

당당하게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산헤드린공의회에서 이를 갈며, 분노하고, 크게 화를 냈지만,

스데반에게는 더 큰 능력이 그에게 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입니까? 어떤 사람은 그걸 모르고 망설이는 사람도 있지만,

스데반의 하나님은 확실히 [영광스런 하나님]입니다.

 

스데반은 내가 영광의 하나님을 보았다.”고 확실하게 주장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수치스런 하나님으로 보면, 안 됩니다.

 

그 분은 진짜, 진짜로 그분은 영광스런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스데반에게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게하셨고, 더 능력이 임하게 하셨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예수님이 서 계신다.”고 고백했어요. , 스데반이 착각을 했을까요?

게 아니고 그 때는 예수님이 순교하신 분을 환영하느라, 잠시 서서 맞이한 것은 아닐까요?

 

제가 미국에서 들은 얘기인데, 12살 먹은 음악의 천재 소년이 카네기 홀에서 콘서트를 하는데,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큰 소리로 [앵콜]을 요청하는데, 그 소년이 나가지 않았다.“고 해요.

매니저가 답답해서 커튼을 열어서 보여주며 나가라고 하니까,

그 소년은 그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 보다, 2층 세 번째 자리에 앉자계신 분이 나의 [선생님]인데,

그분이 앉자계시는 것을 보면, 나의 연주는 완벽한 연주가 아니었다. “고 스스로 평가했습니다.

 

그 신동은 나의 선생님이 서서 환호하면, 나가겠다.“고 하니, 얼마나 감동적인 얘기입니까?

그 신동은 많은 사람의 감동보다도, 오직 한 사람인, [자기 스승]을 위해 연주한 것입니다.

 

[스데반]이 그런 사람입니다.

오직, 한 사람, [예수님]을 위해 사신 분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봅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주님, 나를 핍박하는 이 사람들에게 죄를 돌리지 마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이 갖고 있는 [비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선포되는 말씀이 성령님이 도우셔서,

우리가 흘려듣지 않게 하시고, [말씀]을 듣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