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아버지의 손 (요10:28~30) 2020.05.09(토)

다이나마이트2 2020. 5. 9. 20:24

아버지의 손 (요10:28~30)     말씀: 이재훈 목사님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의 어떤 조사에 의하면,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을 “Fatherless”라고 말하고,

그런 가정에서 나온 사람이 “이천 만 명이다.“라고 하니,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런 현상을 “아버지 없는 전염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Fatherless 현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말은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영향력이 없었다.“는 얘기이거나,

”아버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즉,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관계 속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마더](어머니)이고,

그 다음으로는 [패션], [스마일]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단어는 10위 안에도 없고, 20위, 30위 안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육신의 아버지와 [잘못된 관계]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적용”하는 사례가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있었고,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살펴보면,

“아버지와의 잘못된 관계”에서 비롯하여, “[무신론]이 만들어 졌다“는 주장입니다.

 

[폴비치]가 쓴 무신론에 대한 책에서, ”아버지의 잘못된 영향력으로 무신론을 전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니체]가 5살의 나이가 되었을 때, 36세의 아버지가 병으로 인해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니체]는 하나님과 연관지어, “신은 죽었다”고 말했으며,

 

[볼테르]는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으로, 아버지가 바라는 법조계로 가지 않고,

문학계로 나가는 갈등으로 인하여, “인격적인 하나님을 부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나는 젊은 날 매우 우울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악마가 만든 것이다.”라고 그의 [회고록]에 기록했습니다.

 

정신 분석학자인 [푸로이트]도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 인해,

“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위해 꾸며낸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 [무신론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신은 인간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 졌고,

아버지의 상처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외곡 된 시각을 만들어 낸 것이다.“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믿음의 사람들”은 대부분 [유신론자]입니다.

유명한 수학자이며, 과학자인 [파스칼]은 어머니가 3살에 돌아가셨는데도

그 아버지는 “그가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여러 가지로 배려하여 양육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수학 이론과 과학의 법칙”을 발표하게 되었고, 그것을 체계화 시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유대인이 말하는 [아바]는 우리말로, [아빠]인데, ”사랑스런 아버지“라는 아람어의 표현입니다.

 

이런 충격적인 표현에, 유대인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까지” 하고,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습니까?

 

[빌립]이 예수님에게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말하니까,

예수님은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 계시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도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하나님을 알게 되면 나를 알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힘“입니다.

 

로마서 8장 15-16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여러분은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영으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성령은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합니다.“(롬8:15~16)

 

여러분은 [종의 영]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주인의 영]을 받았습니다.

[주인의 영]은 [성령]이고, 그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성령님]이 ”우리의 영“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 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우리는 육신의 아버지한테 상처를 받지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때,

그분께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균형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도 마지막에, “아바 아버지”를 부르시고,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에게 맡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제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눅 23:46)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아바, 아버지여,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라는 절규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아버지의 손]에 맡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참된 예배]란 무엇입니까?

[참된 예배]란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을 아버지에게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에게 맡기는 것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마지막에도아버지에게 맡기고 떠나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의 말씀인 요한복음 10장 28-30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다.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더 크신 분이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다.”(요10:28~3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은 결코 빼앗길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 “아버지의 손”을 경험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사울]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말년에는 아들에게도 공격을 받았으나,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지켜 주셨습니다.

 

시편 3편 5-6절 말씀에도, “내가 누워 잠들었다 깨어나는 것은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는 것이니,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거슬러 둘러싼다 해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시3:5~6)라고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을 붙들어 주는 [아버지의 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매일 [만나]로 먹여 주었더니, “이제는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메추라기]를 보내주셔서, 실컷 먹여 주십니다.

 

그러면서 민수기 11장 23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그렇게 짧으냐? 내가 말한 대로 되는지? 안 되는지?

네가 보게 될 것이다.”(민 11:23)

 

우리를 붙들어 주는 [아버지의 손]은 그렇게 짧지 않습니다.

그 분의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우리를 돌보시기에 충분한 [능력의 손]입니다.

 

그러면서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에서, “그러니 두려워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네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강하게 하고, 너를 도와주겠다.

내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사41:10)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른 의로운 손으로 우리의 삶을 붙들어 주십니다.

때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그림자가 드려 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이사야 49장 2절 말씀에는 “그분이 내 입을 예리한 칼처럼 만드셨고, 주의 손 그림자 아래에 나를 숨기셨다.

그분이 나를 날카로운 화살로 만드셨고, 그분의 화살 통에 나를 숨기셨다.”(사49:2)

 

그가 내 입술을 예리한 칼처럼 만드시고, 그 손으로 나를 보호하시며, 주님의 손 그림자에 나를 숨기시고,

나를 갈고 닦은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고, 화살 통에 나를 감추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은 “능력의 손”이지만, 때로는 [그림자]로 감추어 주십니다.

 

▶왜, 하나님의 징벌을 [손의 그림자]라고 표현했을까요?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입니다.

그때, [아버지의 손]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아버지의 손]에 그림자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 [아버지의 손]의 그림자는 위험에서 숨기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에는 감싸 안으시고, 그림자로 숨겨 주시는 분입니다.

 

▶왜, 그림자가 생길까요?

우리를 더 보호하기 위하여 [그림자]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을 돌보시는 손이지만, 혹시 그림자가 지더라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코로나 재난이 일어나기 직전에, 미국에서 “억울하게 사업을 정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더 많은 손실이 발생할 것인데, “미리 정리하게 하셔서, 감사했다“고 전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보호하심이고,

[아버지의 손]의 그림자였다고 ”회상했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