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온전한 소원 (열왕: 4~15) 2020.02.09

다이나마이트2 2020. 2. 9. 22:34

온전한 소원 (열왕: 4~15) 말씀: 이재훈 목사님

 

소원은 삶을 변화시킨다.“[비전]을 가지고,

난치병 아동에게 소망을 주는 [Make-A-Wish]라는 재단이 있습니다 

난치병 아동의 소원을 풀어주는 천사 같은 일을 하는 단체입니다.

 

미국에서 1980년에 시작하였지만, 우리나라에는 2002년에 시작하여 매년 300여명을 아동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 주며, 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그 재단의 홈 페이지에는 소아암은 아이들에게 [아이다움]을 잃게 하지만,

소원은 아이들을 [아이답게] 만들어 줍니다.“는 문구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저는 이 [문구]를 보면서 우리 크리스천에게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소원]은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의 삶을 변질 시킬 수도 있습니다.

 

빌립보서 213절 말씀에,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결단하게 하시고,

행동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2:1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사람을 변화 시킬 수도 있고, [소원]을 통해 결단하게 하시고, 행동하게 만드시는 분이니까,

하나님은 기쁜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소원]을 심어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각자 [자유의지]를 갖고 있어서, 하나님이 억지로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자유의지]의 핵심은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소원]을 갖고 있으며,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소원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사랑하고, 자기 아버지 [다윗의 규례]를 따라 살긴 했지만,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소원]을 물으시고, [소원]을 들어 주신 것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인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나빠지게 되어, 우리가 기도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어머니들은 우리 아들에게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후반기의 삶은 그러지 못했으므로, “솔로몬과 같이라는 말은 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인 열왕기상 34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왕은 제물을 드리러 기브온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큰 산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그 제단에서 1,000마리의 짐승을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밤중에 기브온에서 솔로몬의 꿈속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구하여라.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하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3:4~5)

 

솔로몬이 드린 제사는 일천 마리의 짐승을 제물로 드린 제사입니다.

이것은 국가적인 차원으로 드려진 제사입니다.

규모 면에서도 엄청난 일이지만, 그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경을 잘못 적용하여 천 번을 기도하며 드리면, 들어 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해석입니다.

 

솔로몬은 무엇을 기대하고, 번제를 드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타난 것은 천 번의 번제에 감동하여 나타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끌어 가는 다윗과 솔로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알고 찾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먼저] 찾아오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둔감하여 그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5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라고 원하는 것을 먼저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냥 주는 분이 아니고,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아, 네가 아디 있느냐?”고 물으시며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묻는 게 아니고, 아담의 대답을 기다리십니다.

우리에게 소원을 묻는 것은 정말 원하는 것을 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1)첫 번째로, 솔로몬의 응답하는 모습은 온 맘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마태복은 633절에, “오직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너희에게 더해 주실 것이다.”(6:3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오직]이라는 단어는 훌륭한 번역입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뿐만 아니라,

[오직]이라는 단어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솔로몬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솔로몬이 대답했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큰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가 주께 충성스러우며 의롭고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또 계속해서 이 큰 [은총]을 베풀어

오늘같이 그 왕위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습니다.“(왕상3:6)

 

6절 말씀을 보면, 반복되는 단어가 [큰 은총]입니다.

히브리어로 [은총][헷세드]라는 단어로 은혜와 사랑을 뜻하는 말입니다.

자기 백성들이 끊임없이 반역을 해도, 그 약속을 한결 같이 지키시는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신 하나님입니다.

 

번역의 한계가 있지만, 견고한 사랑 = 무너지지 않는 사랑 =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

[헷세드의 사랑]입니다.

 

솔로몬은 [자기 소원]을 먼저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을 먼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소원을 말하라고 하는데, “헷세드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왕이 된 것이 헷세드의 연장선이라는 것에 감사를 표한 것입니다.

자기 조상님들에 대한 감사함의 연속이고, 조상들의 기도 덕분으로 인정하고,

헷세드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먼저 드렸습니다.

 

(2) 두 번째로, 솔로몬이 소원을 구하는 태도가 아주 겸손했습니다.

7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내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주께서 제 아버지 다윗을 대신해, 주의 종을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는 나이가 어리고, 어떻게 제 임무를 수행해야 할지 모릅니다,”(왕상3:7)

 

솔로몬은 왕으로써 아직 온전하지 못한 것을 알고, “어리다고 고백합니다.

그때 솔로몬의 나이는 20대 이니까, “왕의 리더십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상황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고, 하나님의 소원을 혼동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주 겸손한 태도를 보입니다.

 

(3) 셋째로, 솔로몬의 소원은 자기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분별력]을 원하고있습니다.

8-9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주의 종이 여기 주께서 선택하신 백성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큰 백성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니 주의 종에게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을 주셔서 주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선악을 분별하게 해 주십시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왕상3:8~9)

 

솔로몬이 간구한 [소원]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분별력]을 주시고,

둘째로, 선악을 구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소원했어요.

이렇게 판단하는 마음이 듣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는 마음이니, 이것은 경험으로 얻는 지식이 아니고,

“[성령의 은사]로 받는 지혜를 구하는 [소원]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요셉의 지혜이고, 다니엘의 지혜와 같은 [거룩한 지혜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지혜가 아니고,

온전히 하나님을 알기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딱 한 가지를 요구하라.”고 하지 않았으나, 솔로몬은 오직 한 가지만 구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올해 표어가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라라고 정했는데,

그 말 중에서 마음에 걸린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 하나님[] 사랑하라는 것이냐?

---> ”하나님[] 사랑하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계십니다.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에게 참된 지혜가 오는 것입니다.

 

10-14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므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며, ’너는 오래 살게 해 달라거나,

부를 얻게 해 달라거나 아니면, ’원수를 죽여 달라는 요구를 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나 네가 자신을 위해서 이런 짓을 구하지 않고, 다만 내 백성을 바르게 다스릴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요구대로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너에게 주어, 역사상에 너와 같은 자가 없도록 하겠다.

그리고 나는 또 네가 요구하지 않은 부귀와 명예도 너에게 주어 네 평생에 너와 같은 왕이 없도록 하겠다.

만일 네가 네 아버지 다윗처럼 나에게 순종하고, 내 법과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를 오래 오래 살도록 하겠다.”(왕상3:10~14)

 

솔로몬은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왕이 된 것을 겸손하게 받아드리고, “분별력이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수]를 요구하거나 [재물]을 요구하는데,

오로지 한 가지,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분별력이 있는 지혜를 간구했습니다.

 

분별력이 있는 지혜[머리]의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마음의 문제라는 것은 [영성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나이는 어리지만, 욕심을 내지 않고, 그가 분별력이 있는 지혜를 구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머리가 숙여집니다.

여기에 근거하여 잠언 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분을 아는 것이 슬기의 근본이다.”(9:10)

 

쉬운 말로 하면,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첫 걸음이요,

거룩한 분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는 말입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큰 소리로 주장하지만,

말을 많이 한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솔직히 시인하고,

겸손한 사람이 더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2020년 우리는 온 맘 다해 하나님만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그에게 분별력이 있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신다고 확신합니다.

우리 모두 분별력이 있는 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