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내가 나를 용서하는 이유 (빌3:14) 2020.01.12

다이나마이트2 2020. 1. 20. 14:03

내가 나를 용서하는 이유  (3:14)                    말씀: R.T. Kendall 목사님

 

오늘은 [진정한 용서]를 하기 위해, “자신을 용서하는 이유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어제 새벽기도에서 [진정한 용서]에 대한 말씀을 드렸는데,

늘은 그 후속 편으로 우리 자신이 왜, 용서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용서에 대해서는 알겠는데, 자신을 용서한다.”는 말은 이해가 안 된다.”는 분도 계십니다. 얼마 전에 어떤 여자 분이 선생님이 쓴 [완전한 용서]라는 책을 잘 읽었는데,

 후속 편으로, 자신을 용서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써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나를 용서한 것은 믿는데, “내가 나 자신을 용서했다.“는 말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책으로 써야 하나?”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다가 런던 옥스퍼드 대학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그 때 만난 교수님이 저를 처음 만났을 때,

하시는 말씀이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데, 가정을 소홀히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사역에 전념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을 소홀히 하면, 그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고,

그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신경을 쓰라는 충고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도 가정에 소홀했고, 가족을 챙기지 못했어요.

공부를 마치자 마자 런던의 유명한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예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짐들을 먼저 미국으로 보내고, 가족들은 빨리 떠나기를 바랐는데,

저는 6개월 동안 [임시목사]로 있다가 그 후에 [담임]으로 청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런던]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때 아들이 아버지, 미국에 간다고 했잖아요.“라고

나를 채근하기에, 나는 그 아이와 눈을 맞추고 쳐다 볼 수 없었어요.

 

제가 거기서 25년간 사역을 마치고 빌리그레헴 전도단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해서 응했는데,

59분 동안 여러 가지를 얘기하고, 1분이 남았을 때, ”가족에게는 어떤 아버지 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제발 그 얘기는 묻지 않기를 바랐는데, 마지막으로 그 질문을 받았어요.

그때 저는 아버지로써는 실패작이었다.“고 솔직히 털어 놓았어요.

저는 가족보다 교회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족보다는 [하나님]이 먼저였기 때문에 그 시점에 가족은 머리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항상 ”[하나님]이 먼저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어요.

가족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사역]이 먼저 이기 때문에,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25년의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그때 제가 가족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죄책감]으로 항상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용서]의 책을 쓴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때, ”용서하는 과정을 깊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내용을 기쁘게 말씀드리는 것은 제 자신이 저를 용서했고, 그 일로 인해 나를 극복했고,

나는 거기서 승리했고,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7절의 말씀에,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다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3:7)는 말씀처럼,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을 용서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자기 자신을 용서한 흔적이 여기에 나옵니까?

그 앞에 보면, “바울이 교회를 핍박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교회를 가장 큰 적으로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어렵게 하고, 가두고,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손에 피를 묻히는 일까지 하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예수를 핍박했던 사람인데, “예전 것은 모두 다 잊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바울이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고 싶습니다.

그 엄청난 일을 그렇게 쉽게 잊으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얘기입니다.

 

[본인]은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데, “모두 다 잊었다.”는 말로 끝내려고 합니다.

그냥 슬며시 잊어버리고 은근슬쩍 지나가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조금 있다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혹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죄책감을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혹시 동료에게 실망을 시켰다든지, 혹시 성적인 죄 때문에 무거운 마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잉태된 아이를 낙태했거나, 자신이 외도를 했거나, 잘못된 일로 감옥에 갔거나, 자녀를 학대하고,

또는 친구를 속인 일이거나, 어떤 사람의 장래를 망치게 했거나, 함부로 막 살았거나,

건강을 망가뜨린 사람이나, 좋지 않은 친구에 빠져서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하나님을 멀리 했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제가 [정의]를 내린다면, “내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갈고리]에 걸려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듯이,

우리를 항상 옥죄고 있는 모양이니, 우리는 그런 [갈고리]를 풀어야 합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라도, [갈고리]는 풀어야 합니다.

만약에 본인이 풀 수 없다면,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이 도와줘서 라도 풀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못을 하면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듯이, 내 자신의 잘못도 눈감아 주어야 합니다.

[온전한 용서]는 내가 저지른 [][아픈 기억]을 잊고, [해방시켜] 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것부터 자신이 풀어야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용서해야 합니까?

지금부터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것을 빨리 잊고, [자유함]을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제게 원하던 것이고,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저는 [자유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창피하지만 그런 [죄책감] 속에 있으면서 설교를 했다는 것이 매우 부적절하고, 죄송합니다.

 

둘째로, 사탄과 마귀는 용서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책감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쇠사슬]을 묶어 놓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분별력을 높이려면 사탄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마귀는 믿고 있는 크리스천들이 자기에게 소속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만, 마귀는 그와 반대되는 생각을 갖고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는 방법 중에 하나는 마귀의 생각과 반대로 행동하면해결됩니다.


당신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힘드십니까? 그러면 마귀를 기쁘게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시고, 마귀와 반대로 자신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또 다른 방법은 자신을 용서하면 마음에 평화가 오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까 그분이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시면, 마음에 평화가 오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됩니다.

 

넷째로, 우리 마음의 건강과 정서적인 안정이 오는데, 성령님의 작용이 큰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림으로, 자유를 얻었으니, 우리의 삶에도 그것이 필요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 의로운 삶을 살고, 그 분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보고,

하나님이 이제 됐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다른 각도로 이야기 하면, 저희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목사님의 이름이 [R.T. 윌린즈]인데,

그 이름을 따서, ”제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때 목사님이 하신 말씀은 두 가지 인데,

하나는 보혈을 중요하게 여기고, 귀중하게 생각하라.

또 다른 것은 ”[성령님의 역사]를 귀하게 생각하라는 얘기입니다.

 

제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보혈]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수님의 보혈]을 귀하게 여기던가, 아니면 그렇게 여기지 않던가?“ 둘 중에 하나인데,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보혈]이 더 귀하게 느껴졌어요.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창피하지만, 그때 나는 내 자신의 []”를 내세우는 사람이었어요.

정말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데...”라고 으쓱대며, 나를 내 앞세우고, 내 자신의 []를 내세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혹시 여러분은 당신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혹시 당신이, 혹시 여러분이, [예수님의 보혈]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이것을 마음 속에 넣고 다니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똑바로 가야 합니다.

 

[말씀]을 짧은 시간에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진정한 죄책감][거짓 죄책감]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거짓된 죄책감]은 마귀의 장난이고, 진짜가 아니고 가짜입니다.

그러나 [진짜 죄책감]은 우리의 삶 속에 현실적으로 나타나는데, 죄가 있을 때만 나타납니다.

 

[거짓 죄책감]은 죄와 연관되지 않기 때문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더 이상 설명 드리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거짓 죄책감][]로 든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말하기를, ”R.T는 내 앞을 지나가면서도 인사도 없이 지나갔다.“고 불평을 했다면,

제가 막상 못 보았으니까, ”미안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제 맘속에는 죄책감이 들어가 있어요.

 

내가 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으니까, 나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헛된 죄책감]입니다. 왜냐하면, []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가 아니지만, ”자기는 죄책감에 쌓여 있다는 것은 마귀에 말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아이러니] 한 것인데, [진짜 죄책감]이 있으면, 하나님께 용서를 빌면 해결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십니다.

 

, 죄를 고백하는 것이 힘들까요? 두 가지 인데,

첫째는, [자기 연민]이고,

둘째는, 자기 []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쌍둥이 죄]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같이 [예수님의 보혈]이 깨끗이 해 주는데도 자기가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보혈]을 받아 드리고 높이면,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을 해롭게 하는 마귀가 항상 여러분을 살피고 있다.“[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살피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복시키려고 다른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말씀]이 로마서 828절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줄을 압니다.“(8:28)

 

이것은 [가족의 비밀]에 대한 말씀인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고 했는데,

이것이 왜, [가족의 비밀] 입니까?

바울이 우리는 안다고 했는데, 세상은 모르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이니까, 그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이 [구절]을 주신 것은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하니까, 실제로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과 실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사랑]이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우리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죄책감] 속에 살지 않게 하시려고, []을 얘기하는 겁니다.

 

요엘서 225절에 내가 너희를 치려고 보낸 내 큰 군대인 메뚜기, 풀무치가 먹어 삼킨 그 햇수대로,

내가 너희에게 보상을 주겠다.”(2:25)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뚜기 떼가 먹었던 것을 보상해 주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데, 다윗은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는 [간음]을 했고, 자기 []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 장군을 죽였어요.

 

그런데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재미없고 지루한 [족보 이야기]가 나오는데,

6절에 보면,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고, 다윗은 원래 우리아 장군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왜 이런 [족보] 얘기가 나오며, 다윗이 간음한 이야기를 성경에 넣었을까요?

우리아의 아내 이야기가 왜, 들어갔습니까?

사람들은 스쳐 지나갈 수 있지만, 다윗이 한 짓은 너무나 큰 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이 지은 죄도 모든 것을 []으로 바꿔주시는 분이니까,

[예수님의 족보]에 사실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메뚜기가 먹었던 것을 바꾸어 주신 하나님입니다.

저는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아들과 동행하며, 언제나 같이 움직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세월동안 잊어버리고 지냈던 시간 속에서 아들에게 보상이라도 해야 한다.“

심정으로 데리고 다닙니다.

 

하나님이 보상해 주듯이, 그와 동행하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동안 오랜 시간동안 제 말씀을 들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