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 (요4:3~14) 2020.02.12

다이나마이트2 2020. 1. 12. 19:28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  (요4:3~14)                         말씀: 이상준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선교적인 관점에서 수가성의 여인을 살펴보겠습니다.

3절 말씀에, 예수께서는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4:3)

 

예수님은 그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유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그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두려워서 견제가 더욱 커졌기 때문입니다.

 

유대지방에서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데,

팔레스타인의 낮 12시에는 햇빛이 너무나 강렬하여,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시간대 입니다.

 

7절 말씀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내게 물을 좀 주겠느냐?”(4:7)

 

예수님은 그 시간에 우물가에서 혼자 앉아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 오라12명을 모두 다 보냈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요?

우물가에 남자들이 많이 있으면, 여인이 두려워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졌고, 혼혈정책으로 정통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적대국가로 지내므로, 남북 간에 서로 상종하지 않는 사이입니다.

 

그때 이름 없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먼저 물을 달라고 요청했는데,

여인은 까칠하게 대하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10절말씀에서, 예수께서 진지하게 여인에게 다시 말을 걸었어요.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물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부탁했을 것이고,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4:10)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합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눈높이로 접근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물을 달라" 고 부탁하면서 농담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정중하게 말을 건넵니다.

여기서 "유대인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할 수 있나?"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은 사마리아 여인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니까,

해 묵은 편견으로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말도 걸지 않는 풍습이 있었어요.

둘째로, 예수님은 어려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너를 위해 선물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 쉽게 말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이 여인은 상황판단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거칠게 반응합니다.

그러면서 11절 말씀에서, “선생님은 물을 길을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에서 생수를 구한단 말입니까?”(4:11)라고 쏘아 붙였어요.

 

▶여인이 화가 난 표정으로 까칠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요?

거기에 있는 남자 한 사람 쯤이야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여겼을 것이고,

여인은 이미 6명의 남자를 상대해 보았으니까, 아주 착해 보이는 이 사람을 가볍게 보았을 것입니다.

주도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우물은 깊고 내가 물을 주지 않으면, 물을 먹을 수 없으니까, 상대 남자를 깐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여기는 엄연히 사마리아 자기 땅이니까, 상대를 무시하게 되니까,

답답한 예수님이 세 번째로 다시 말을 걸었어요.

 

예수님은 그 여인의 과거와 상관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대합니다.

이 여인이 예수를 만나는 것은 아주 [우연]입니다.

예수가 거기 계실 줄 모르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제일 한가한 낮 12시에,

우물가로 갔는데 거기서 예수님을 [우연히] 만납니다.

 

여기 12절 말씀에서부터, 이 여인이 눈이 떠지고,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이 가시고, 살아서 반응하게 되었고, 예수님과 좀 친해져서 질문도 합니다.

이 여인 생각으로는 야곱 보다 큰 사람인 것 같아 보였습니다. 야곱도 이 물을 먹고 살았는데

당신이 얘기하는 모양새로 보아 야곱보다는 큰 인물 같아 보인다.“는 판단했습니다.

 

13-14절 말씀에서,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솟아올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4:13-14)

 

여인은 화를 내고 있는데, 예수님은 더 안타까운 심정으로 여인에게 심각한 말을 던집니다.

이 우물의 물보다, “내가 주는 물이 영원한 [샘물]이라고 이상한 말을 하니까,

그때에 여인이 화들짝 놀라서 이상한 반응을 보입니다.

 

구약의 종교는 [율법]이고, [율법]을 지킬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다시 목마르는 것입니다. 오늘 먹어도 또 내일 먹어야 합니다.

 

14절 말씀에 나오는 내가 주고 싶은 물은 일반적인 []이 아니고,

그 물을 한 번 먹으면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은 유명한 말을 전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말씀]에 여인도 너무 이상해서, 방금 전까지 짜증내면서 까칠하게 대하던 모습을 감추고,

예수님이 말하는 그 샘물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여인은 원래 남의 말을 잘 듣는 여인이고, 여러 남자들의 말에 홀딱 빠져서 쉽게 넘어가서

여러 남자들과 섞인 경험이 많았지만, 이방인이 제안한 말을 금방 받아드린 것은

너무나 그 말을 [믿고 싶은 마음]이 속으로 있었던 것이지요.

 

지금까지 진정한 사랑이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동안 그것을 찾아서 여러 남자들과 인연을 맺었지만,

그에게는 여러 번 실패하고 있던 차제에, 이제는 [세속적인 방법]이 아니고,

누군가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방법]을 찾으려고 했던 거예요.

 

우리는 이 여인을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예수님은 이 여인을 찾아 갔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또 누가복음에는 [탕자의 비유]에서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동전과 잃어버린 아들이 나오는데,

[제목]을 우리는 잃어버린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탕자의 비유]라고 하는 것은

, 그럴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의 의문은?

이 여인도 남자를 6명이나 만났다면, 혹시 이 여인은 부정한 여인은 아닐까?

학생이 대입준비를 하면서 3수와 4수를 했다면, 그 학생이 공부하지 않은 학생인가?

개척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다.“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러나 그것은 잘못 판단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먼저,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고, 예배에 대한 깊은 목마름이 있었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는데,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선뜻 다가가지 못한 겨에요.

 

[메시아]에 대한 얘기를 누군가한테 들었는데, 자신이 없어 가지는 못했는데,

[기대감][갈망]을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너무 거리감을 느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되었던 거예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은 있는데, 선뜻 나서지 못하고, 너무 멀어진 현실을 안타까워했는지도 모릅니다.

한번 이 여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이 여인을 단정을 짓고 비난하지만, 그 여인이라고 그동안 울며 기도하지 않았겠어요?

수없이 기도를 했지만, 어쩔 수 없어서 그냥 그렇게 지낸 거예요.

 

그런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예요.

건강이 나쁜 사람은 하나님, 제가 간구하는 건강은 왜, 저에게 주지 않습니까?“

물질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저에게 왜, 물질을 주지 않나요?“라고 하소연 합니다.

 

이 여인도 예배에 대한 갈망은 있었는데,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너무나 멀리 왔기에,

어쩔 수 없이 주저하며, 한탄만 하고 있다가, 25절 말씀에서, ”여인이 말했습니다.

저도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압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4:25)

 

저는 이 [대사]에서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 날 알게 되겠지만, 내 인생에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나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지내 왔는데, 먼 훗날에 그게 가능하겠지요?

나에게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희망을 갖고 있어요?”라는 말이

내 귓가에 마구 요동치며 들려 왔어요.

 

26절 말씀에서, “그러자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메시아다.”(4:26)

 

~ 여기서 갑자기 예수님은 엄청난 [복음]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 [ I am He ! ]

그날이 바로, [오늘]이고, 그 사람이 바로 [].“라고 밝히십니다.

 

스스로 물 달라하는 이가 [예수님]이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네가 그리던 [메시아][]라고 말하는 예수님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네가 찾고 있는 이가 바로 []“라는 말에 여인은 깜짝 놀라서, 물동이를 내 던지고, 뛰쳐나갑니다.

 

나는 이 상황을 묵상하다가 생각을 해 보니까, 예수님은 그때까지 물을 먹지 못했어요.

그것은 그 여인이 놀라서 물동이를 던져 버리고, 뛰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정신을 차리고, 물 한 바가지를 떠 주고 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좋아서 그런 생각을 못하고, 그냥 방방 뜨면서 사라졌어요.

 

그런 때에 맞추어 마을로 갔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서로 수군거리며 누가 벌써 예수님에게 드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라고 말을 하니까,

예수님은 35절 말씀에서,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4:35)라고 대답하십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제자들이 양식을 구해 와서 이제, 드십시오.”라고 말을 하자,

예수님은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하님의 뜻을 알고, 그렇게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니까 나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입니다.

방금, 내가 여인에게 한 []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이니,

나는 너무 기뻐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예수님이 나를 찾아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정사]를 얘기하면서, 한 마디도 비난하지 않았어요.

이 여인에게 부도덕한 여인이라고 말하거나, [탕녀]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 짧은 시간 동안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여인에게

정성을 다해 접근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 주어서 여인으로 하여금 놀라운 반응을 얻어내신 주님과 같이, 우리도 땅 끝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들을 생각하고, 생명을 살리는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카메룬 타운센드라] 선교사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1917년에 [타운센드] 젊은이가 과테말라를 향해 떠나는데, 그의 계획은 대학 수업을 받는데

모자란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스페인어 성경을 판매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몇 달 후에 수억의 사람들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이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되리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판매원]은 힘들었지만, 판매하는 과정에서, 그는 몇 가지 다른 언어와의 장벽에 부딪쳤고,

무엇보다도 그는 60 퍼센트 인구가 [인디안 말]을 사용하는 과테말라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로 된

성경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계속하면서 그는 [카치켈]이라는 인디언 언어로 말하는 인디언들을 만났습니다.

그가 스페인어 성경을 판매하려 하자, 그 인디언은 만약 당신의 하나님이 그토록 전능하시다면,

왜 우리말로는 말할 수 없는 거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의 말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이 상황은 그로 하여금 이 문제에 관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

결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12년간 그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어, 그 언어로 [신약]을 번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타운센드는 하나님께서 인디언 언어로도 말씀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문자로 기록하여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도록 한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들을 향한 [비전]을 보여 주셨고,

인디언어 성경번역은 보다 더 위대한 것을 위한 촉매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과테말라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 타운센드는 타 문화권의 언어를 어떻게 터득해 가는지에 대해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 후에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가 창설되었고,

세계 곳곳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언어들로 성경을 번역해 오고 있습니다.

 

그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세상의 모든 언어로 [성경번역]이 완성되기를 바랐고,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으로 이해하는 모국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갖게 하는

비전을 본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것을 압니다.

그러나 아직도 38천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한 구절이라도 기록된 성경을 갖지 못한 채 있습니다.

그들이 생명의 소식을 그들의 언어로 듣지 못하는 한, “그들은 결코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사랑하신다.“

사실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 분은 중남미에서 인디언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첫째는, 무당이고, 둘째는, 술집 주인이고, 셋째는 종교를 강요하는 성직자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은 스페인어로 선교하지,

인디언 어로 선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가 그 말에 감동하여, ”인디언 축제에서 [인디언 어]로 설교하니까 감동되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고, 인간의 언어로 살다가,

인간을 구원하려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놀라운 성경 번역의 사역을 시작한 것은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런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한 영혼의 눈물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기적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수가성의 여인처럼, 무례하게 반응해도 주님은 거기에 계셨고,

그 여인을 만나려고, 거기서 기다린 것입니다. 선교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가 풍토병에 걸려 죽어도, 그 분들은 거기를 떠나지 못하고, 거기서 사역하는 분입니다.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을 거창하게 하지 않고, 이름 없는 여인을 만나 [생명의 말씀]으로

그 사람을 변화 시키려고 하는 분입니다.

 

지금도 땅 끝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들은 한 영혼을 구하려고 헌신하십니다.

우리도 그런 마음을 품고,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