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작은예수 40일 특새14 2019.12.24

다이나마이트2 2019. 12. 26. 18:59

하나님의 은혜 주의 영광 (출33:17-23)                   말씀: 박종길 목사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에 긴 고통을 당하며, 하나님을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신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출애굽]의 역사를 단행하십니다.

 

그들은 홍해에 도달했을 때 진퇴양난이었으나,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홍해가 열려서 무사히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자원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과 감격은 잠깐이었고, 그들의 또 다시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로 들어섰고, 물이 없어 아우성을 칠 때,

하나님은 [쓴물][단물]로 바꾸어 주셨고, [엘림]의 오아시스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시내 산에 도착하였고, 모세는 40일 금식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가 산에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엉뚱하게 아론을 시켜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기는 짓을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쉽게 죄에 빠지는 [죄의 습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에게 화가 나게 만듭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 백성을 싹 쓸어버리겠다.“고 분노하십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서 [하나님의 분노]를 가라앉게 하려고, 레위 사람을 3,000명이나 죽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다시 기도합니다, 그제 서야 하나님은 너희 민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그러나 가나안 까지는 이끌어 주지만, “나는 너희와 동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모세는 이 엄중하고, 무서운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였고,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느냐?”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모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고,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엎드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두 가지를 나누겠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은 이름으로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17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네가 말한 그대로 내가 하겠다.

네가 내 은총을 입었고,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알기 때문이다.”(33:17)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너는 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니, 내가 너의 이름으로 알겠다.“고 대답하십니다.

 

모세의 이름은 물에서 건져냈다.“는 의미인데, 하나님은 그 이름을 알아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40년의 왕궁생활을 끝내고,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갔을 때,

하나님은 ”80세의 나이에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너를 잘 알고 있으니, “내가 다 들어 주겠다.”는 대답입니다.

우리의 [이름]을 아시는 주님이 [모세의 기도] 때문에, 그 공동체의 요구를 들어 주십니다..

 

[이름]자기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우리의 존재를 드려내 줍니다.

 

제가 중국에 갔을 때, 본명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예명]으로 어릴 적에 태명인 명태를 사용했습니다.

여러분은 안 믿으시겠지만, 거기서 한때는 명태 선생으로 유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03절 말씀에,

문지기는 목자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10:3)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우리의 이름]도 목사는 기억을 못해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2) 두 번째는, “손으로 덮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화가 나서 자기 백성들을 다 죽이겠다.“고 말씀했지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말씀을 걷으시고, ”너희와 함께 하겠다.“로 바뀌면서, 그들을 덮어 주셨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생명을 걸고“ [중보기도 자]로 기도를 했습니다.

모세는 사람으로써는 할 수 없는 말,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모세는 이미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인데, 하나님도 모세를 친구라고 했는데,

하나님을 가까이 에서 본 것은 아니고, 영적으로 [하나님의 영광] 만을 느낀 사람인데도,

모세는 이번에, “내가 죽더라도 얼굴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을 보고 싶으면, “내가 죽더라도, 보여 달라.“고 했을까요?

이것이 간절한 [모세의 마음]입니다.

 

20-21절 말씀에서 어떻게 보면, 모세는 하지 말아야 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만 뵐 수 있다면“---그런 상상을 하면서,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만, 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단호히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습니다. 나를 보고 살아남은 사람은 없습니다.

 

18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자 모세는 그러면 부탁입니다만,

내게 주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33:18)

 

모세는 자신감을 얻고, “주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여 주세요.”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이시라,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감을 얻어서, 공동체에 대해 확실한 요구를 합니다.

이런 부탁에 하나님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19절 말씀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19절 말씀에, “그러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함을 네 앞에 지나가게 하겠고,

내가 네 앞에 내 이름 여호와를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길 것이다. 그분께서 이어 그러나 네가 내 얼굴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33:19-20)

 

하나님은내가 너희 앞에 선한 것을 보여주겠다.

그러나 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단언하여 대답합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나를 보고 살아남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본 자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태양을 보더라도 단 3초를 직시하여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의 권세]를 직접 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22-23절에 나온 말씀과 같이,

내 영광의 광채가 지나갈 때, 내가 너를 바위틈에 넣었다가, 다시 지나갈 때까지 내 손으로 너를 덮을 것이다. 네가 내 등만 보고,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다.”(33:22-23)

 

성경에서 [바위]하나님의 얼굴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반석에서 생명수가 터지는 모습을 보고, 영원한 생명수 되신 하나님으로 소개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3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들은 모두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었고, 모두 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한 신령한 반석에서 나는 것을 마셨는데,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습니다.(고전10:3-4)

 

이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이 지나갈 때,

살아난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반석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얼굴을 대면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모세를 살려주기 위해, ”그의 손으로 덮어 주었다.”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것은 []이 남편이 죽은 후에 어렵게 살았을 때, []여인이 보아스에게 사랑을 구하면서,

잠자고 있는 발아래에 누워있었는데, 그 여인이 깨어보니,“보아스 옆에 누워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보아스가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니까, 룻은 보아스에게 나는 당신의 여종, 룻입니다.

나와 결혼해 주세요. 나는 당신이 돌볼 책임이 있는 가까운 친척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가난하고, 힘든 []이 보아스를 향하여 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어 달라.”고 얘기합니다.

이와 같이, 죽음 앞에 있는 모세의 마음을 담아주고 덮어 준 것 같이,

고통 속에 있는 여인을 옷자락으로 덮어주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옷자락]하나님의 날개를 상징하고, []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그의 손으로 덮어 주는 것과 같이, 우리도 덮어주실 것입니다.

 

[날개]보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미 닭]병아리를 품는 것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이 [주의 날개]로 덮어 주실 것입니다.

 

그 영광이 지나가는 속에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덮어 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등”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등]”이라는 것은 우리와 같은 몸의 등짝을 보여 주신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한 자신]하나님의 영광의 흔적이라도 보여 준다.“는 말입니다.

 

시편 178-9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나를 주의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숨기셔서,

나를 공격하는 악인들에게서 나를 둘러싸고 죽이려는 내 적들에게서 지켜 주소서.“(17:8-9)

 

[말씀]은 하나님은 나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라는 [모세의 기도][우리의 기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없을 때, 우리의 이름을 아시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살리실 것입니다.

 

[신앙]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덮어주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그늘아래 머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