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작은예수 40일 특새12 2019.12.21

다이나마이트2 2019. 12. 21. 22:22

하나님의 시험   여호와 이레 (창22:11-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삭]을 아들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약속하신 아들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복의 근원이 되는 [아들]이 태어나고,

" 그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사건은 [성탄]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12]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창세기 22]에 나오는 모리아 산의 사건은 대조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말씀] 속에 우리가 믿는 [신앙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창세기 22]에 나오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25년 동안 기다려서 태어난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 순종합니다.

 

[사건]은 앞으로 다가오는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과 직결되는 깊은 관계가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풀어야 하는 숙제, [딜렘마]가 두 가지가 나옵니다.

① ▶먼저 ”왜, 하나님은 아들을 바치라.”고 하시는가?

, 하나님은 그런 비윤리적인 말씀을 하셨을까요?“라는 의문이 듭니다.

 

성경을 읽으며 느끼는 것이,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구약의 하나님]은 심판과 진노하는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니, “신은 진화한다.“

엉뚱한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귀한 아들을 번제물로 받치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은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하나님이 아닌데,

그 당시에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가운데,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기에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그랬을 것으로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명령][하나님의 성품]을 동일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모의 체벌]부모가 벌을 준다.”고 오해하면 안 되듯이,

그런 부모는 못된 부모이기 보다 자녀가 잘 되라.”고 체벌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것은 [사랑]이고, 하나님의 명령도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받치라.”고 하는 것을 기뻐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그런 명령을 주셨을까요?

[대답]은 하나님의 약속과 소명을 토대로 해석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시는데, “아들을 받치라.”하신 것은 이상한 명령이고,

서로 충돌되는 말이지만,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하나의 생명이 죽어야 한다.”[계시하는 말씀]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려면, 물질적으로 부유해 지는 것도 있지만, “

[]은 번제물이 되는 희생을 통해서,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려면, [죽음]이라는 엄청난 댓가가 요구 되는데,

그렇게 [복의 근원]이 되려면, 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

생명을 희생하는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말씀입니다.

 

결국 여기서 죽임을 당하는 대상은 [이삭]이 아니라, 실제로는 [예수님] 자신을 예표 하는 말씀입니다.

[이삭]이 번제물이 되는 것과 같이, [예수님]도 번제물이 되셨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 제도가 확립되기 이전에, 시내 산에서 주어지는 율법을 주기 훨씬 이전에,

하나님은 이런 [번제물]을 말씀하셨어요.

 

이것은 이런 [계시]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사제도]를 말씀하신 것이고,

[제사]예수님의 죽음을 계시하는 것이고, 그렇게 ”[번제물]로 받치라.”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미리 계시로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상황]아들을 죽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25년 동안 [시험]이 주어졌습니다.

[시험]은 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 시험이었지만, 이번 시험은 아주 어려운 시험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모리아 산으로 출발했어요.

 

두 번째 딜렘마는 신학적인 관점에서, “생명이 죽어야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이삭이 번제물로 받쳐지면,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어떻게 되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들이 죽으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많은 자손은 사라지는 것이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이번 명령은 서로 어긋나는 [상충 되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는 것약속하신 분을 믿는 것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성적으로 보면, 두 말이 상충되는 말이기에, 그럴 때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분을 믿기로 작정합니다.

 

이렇게 헷갈릴 때에는 “[약속]을 믿지 말고, ”약속하신 분을 믿어야 하고,

그 명령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약속하신 분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것을 구별했다는 것은 아주 현명한 결정입니다.

우리도 약속의 내용보다, “약속하신 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 나옵니다.

첫째로, 5절의 말씀에서, “그가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나귀를 데리고 여기 있으라.

나와 아이는 저기 가서 경배한 다음에 너희에게 함께 돌아오겠다.”(22:5)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함께 돌아오겠다.”고 말했어요.

여기서 [함께]라는 말의 의미가 중요해요.

아브라함은 [약속]보다약속하신 분을 믿었기에, [그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약속하신 분을 믿었다는 증거는 하나님이 준비한다.“고 대답하는 아브라함의 대답은

아주 믿음 있는 대답입니다.

 

7-8절 말씀에서, ”이삭이 자기 아버지에게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양은 어디 있나요?

라고 물으니까, 아브라함은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물로 드릴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계속 길을 갔습니다.“(22:7-8)

 

아들이 아버지?“라고 말을 부르며,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양은 어디 있나요?“라고 물으니까,

아브라함이 제물은 너다라고 대답하지 않고, ”제물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고 대답합니다.

 

우리도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 여호와께서 준비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여호와 이레]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나를 보고 계시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준비하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면, [하나님의 명령]이 무너지는 일이 되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준비하신다.“고 생각하는 아브라함은 아주 믿음 있는 대답입니다.

 

히브리서 1119절 말씀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비유로 말하자면 그는 이삭을 죽은 사람으로부터 돌려받은 것입니다.“(11:19)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과 충돌되는 지시에도, ”말씀대로 순종하면,

이삭이 죽었다가도 살아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아들을 죽여야 하니까, 이삭을 살리는 방법은

죽은 사람도 살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제 설명이 어렵습니까?, 정리하면, 하나님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분이니까,

아들을 죽여도, 그 아들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계시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예수님의 생명을 받치는 것이니, 십자가를 계시하는 [말씀]이었고,

또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이 없어지는 일이니까,

죽더라도 다시 살릴 수 있다[부활]을 의미하는 계시의 말씀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들에게 칼을 들었을 때, 그 때는 완전한 순종인데,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마라.

" 네가 네 아들 곧 내 외 아들까지도 내게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내가 알았노라.”(22: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서 합격하였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하나님의 계시[예언]한 것인데, 이삭의 질문 앞에서

하나님은 진짜로 [숫양]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고 보니, 숫양 한 마리가 덤불에 뿔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양을 잡아, 자기 아들 대신 번제물로 드렸습니다.”(12:13)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아들 대신에이고, “하나님은 번제물로 숫양을 준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했기에, [이삭] 대신에, [어린 양]미리 번제물이 되었다.” 것이

오늘 말씀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어린 양]으로 [예수님]이 죽은 것과 같이,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는 [십자가 사건]을 에고하며,

[사건]이삭 대신에 어린 양이 제물이 되었다.“ 것은 [제물이 바뀐] 사건입니다.


 

이삭 대신에 어린 양이 죽게 되므로,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예표 하는 말씀이고,

이런 [제물의 교체][구원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 분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여주는 [십자가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십자가]는 관념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만약 그분의 부활이 관념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내 신앙도 내 구원도 관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숫양 한 마리가 덤불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양을 잡아 자기 아들 대신에 번제물로 드렸습니다."(22:13)


그때, 숫양이 수풀에 뿔이 걸려, 낑낑 거리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먼 훗날 [메시아]가 이 땅에 태어나고,

순종을 통하여 구원받는 사람들에게 큰 [그림]을 보여 주려고, 대신 [숫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13절 말씀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죽이지 말라. 네 죄가 사하여졌다"라고 말씀하시면,

되는 것인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번제]를 받으셨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번제]가 없이는, 죄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번제]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는 제사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아들을 죽여서 번제물로 바치라.“는 말이니까,

이삭을 죽이지 않으려면, 이삭 대신에 죽어야 할 [대상](= 번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은 잘못한 일이 없지만,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속]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도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소나 양을 잡아서 피를 흘리게 했고,

그 양과 소를 잡아서 태우고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이루어졌고,

예수를 믿는 우리 인간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활이 되는 것이니까,


오늘의 이 [사건]을 통해서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준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고,

영원한 언약의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축복]은 시험에 합격하고 순종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여러분도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영원한 문이 되신, 예수님이 오심을 기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늘아래 머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