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추적 옛 본성의 잔재 (창20: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때, ”서로 연결되지 않는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하나의 [점]들이 모여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없고, 미래를 모르기 때문이고,
우리는 순간순간을 현실에 부딪치는 문제에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선택과 더불어
하나님이 이루려는 목적을 분명히 이루어 가십니다.
그 초점의 중심에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하면, 우리는 상황에 끌려가지 않는 인생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꼬이는 것은 왜, 그럴까요?
그것은 내 안에 남아있는 “옛 본성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타락한 본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내 영역 안에 내가 갇혀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 타락한 “옛 본성의 잔재”가 하나님의 그림에 합당하지 못하게 작용합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과정에서 결코 [믿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살면서 온전하지 못한 일들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불신앙의 자녀를 낳기도 하고, 때로는 거짓말로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약점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치명적인 약점은 무엇입니까?
그 약점이 반복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옛 본성의 잔재”가 계속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랄]이라는 지역으로 이주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하고, 그 땅의 목초지가 초토화 되었기에,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아브라함이 남부지역으로 내려갑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또 다시 그런 [두려움]이 있었기에, “그녀는 내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애굽에서도 아내로 인하여 ”자신을 죽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또 다시 이번에도 동일한 거짓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나를 죽일 것이다.“라는 생각은 <스스로 만들어 낸 거짓말>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자기 만든 거짓말이며,
상황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생각은 세상이 두려워서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자기가 만든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이 넣어준 생각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생각이고,
그 생각은 죄 때문이고, 상황에 따라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됩니까?
우리 안에 있는 상처는 심각한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더 심해지면, 과대망상증이 되거나, 피해망상증을 변합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사만 가면,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데, 그
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사라가 너무나 예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그럼, 사라에게 나타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비멜렉에게 사라가 눈에 띄었으니, 사라의 문제는 “사람들의 눈에 띤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라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계속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비멜렉 왕이 사라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취하여 드렸으나,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현몽하여,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라고 알려 주었고,
하나님은 “사라를 남편 에게 돌려주도록 경고하도록”, 꿈에서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자기가 속은 것으로 알고, 관대하게 사라를 돌려보내고,
선물로 그 땅에 살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비멜렉은 이방인 이지만, 겸손한 인물입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은 즉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일로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아비멜렉의 집안에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태를 막으셨는데,
아브라함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 아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으로, 사라가 임신하게 되어,
늙은 아브라함이 25년 만에 아들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시점이,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이삭을 낳기 1년 전이기에,
아브라함은 ”그 때에도 옛 본성의 잔재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다시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는 절망 속에 있어도,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보호해 주시고, 감싸주는 모습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계속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흔히 나타나는 것이지만,
[믿음의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이런 [증상]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요?
옛 본성의 잔재는 [십자가] 앞에서 치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불태워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하고, 전능자의 그늘 안에 머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안에 있는 [두려움]을 치료해 주시고, [믿음]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런 모습에서, 계속해서 그를 [믿음의 여정]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으시고, 이제 [큰 일]을 시키고,
그를 [중보기도 자]로 세우십니다.
그가 [애굽]에서 나올 때는 재물을 주었지만,
[그랄]에서 나올 때는 그랄 왕 앞에서 20장 7-8절 같이, 하나님이 그랄 왕에게 꿈에서 얘기해 줍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주어라. 그는 예언자니, 그가 너를 위해 기도해 주면 네가 살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그녀를 돌려주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사람이 다 죽게 될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 자기 신하들을 소집해 그들에게 이 모든 사실을 다 말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두려워했습니다.“(창20:7-8)
그랄 왕은 ”그는 예언자라”고 부르며,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중보기도]의
사역자“로
만드십니다.
오늘의 본문인 17-18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때문에 아비멜렉 집안의 모든 태를 그동안 닫으셨던 것입니다.(창20:17-18)
그 당시에 아비멜렉의 가정에도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아브라함의 기도는 그랄 왕의 가문에 가장 시급한 문제인, “태가 열리도록”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사용합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기도하게 만드셔서, 생명을 씨앗이 잉태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암시”입니다.
실패한 베드로에게 “네 양을 먹이라”고 하셨으며,
자기의 명예욕에 사로잡힌 사도 바울에게 “나에게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알려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중보기도자의 사명”을 주셨고, [중보 기도자]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으니,
너는 생명을 잉태하는 중보자로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왜, 25년이나 걸렸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즉시 이루어 주실 수도 있지만,
“즉시 이루어 주면,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25년을 기다리게 만들면서, 그를 훈련시키고, 그를 이끌면서,
완전하게 성숙한 다음에 자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둔하여, 완전히 절망해야 하나님을 붙들기 때문에, 그런 시간이 필요했고,
그런 다음에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비전과 약속을 주셨는데도,
아브라함의 내면까지도 깊숙이 들어가서, “하나님은 계속 추적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골방]에 있는 쓴 뿌리를 드러내고,
그 [골방] 속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열방]으로 갈 수 없습니다.
25년의 과정에서 아브라함을 훈련시키듯이, [불신앙]을 [믿음의 신앙]으로 바꾸어 주시며,
새로운 [중보기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도 [타락한 본성]에 이끌려 가는 인생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늘아래 머무는 인생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장소가 바뀐다.”고 새로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뿌리 박혀 잇는 “옛 본성의 잔재”를 버릴 때,
“새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 본성]에 사로잡혀 사는 인생이 아니고,
[성령의 힘]으로 불태워서 새로운 인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이 보입니다.
내가 상황에 이끌려서 사는 인생이 아니고, 생명에 충실하게 다가는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나도 비전을 품고, 남을 살리고 도와주는 인생으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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